빈처貧妻 - 성선경

작성자솔바람|작성시간26.06.07|조회수757 목록 댓글 0

빈처貧妻 - 성선경

 

 

아내는 내내 눈치를 힐끔힐끔 살피며

옷장서랍 칸칸을 뒤집어 먼지를 풀풀 날리고

나는 못 본 척 조간신문을 뒤척거리며

현진건을 생각한다

그때도 그랬을까 슬금슬금

해거름과 함께 저녁 안개가 몰려들면

아내는 더욱 궁상스러워지고

남편은 더욱 음흉스러워져서

토요일 좋은 날의 한나절을

힐끔힐끔, 못 본 척 그랬을까

그러나 다시 눈길을 돌려 아내를 보면

변변한 옷가지 하나 마련해 주지 못한 죄책감보다

저놈의 여편네가 왜 저래

공휴일을 맞아 아버지의 농번기

한철 농사일을 거들겠다고 고향 가는 길

무슨 수선을 저리 떠나 싶어

죄책감보다 아내의 행위가 더 미워져

망할, 빌어먹을, 나쁜, 못된, 따위의

수식어를 옹알거리다 신문을 덮으며 고개를 돌리면

문득 마주치는 아내의 눈빛이 슬프다

제철마다 화려하진 못해도

한 가지씩 표나게 해 뒀더라면

이런 날, 가을 벌판의 들꽃처럼 한들거리며

혹은, 가을의 단풍잎처럼 화사하게 꾸미고서

빠각빠각 구두코를 반짝이며 다녀올 수 있었을 텐데

현진건, 생각하면 그래도 그때가 좋았지

전당포의 옥양목 저고리라도 찾을 게 있었지

중절모라도 삐딱하게 쓸 수 있있지

아내는 내내 힐끔힐끔, 나는 못 본 척

마주치는 아내의 눈빛이 문득 슬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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