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의정거장 / 강연호
이 정거장에는 푯말과 이정표가 없고
레일은 방향을 가리키지 않는다
그저 바람의 뒤를 따를 뿐
이 정거장에서 바람은 사방에서 팔방으로 분다
세상의 모든방향에 눈길을 두면
결국 아무데도 갈 곳이 없다는 말이기도 하지만
얼마든 도착하든 이 정거장은
영혼인지 잠시인지 머문 바람의 다른 이름이다
이름이란,일체의 수식을 무정차 통과시킨
앙금 아닌가, 문장과 구절과 행간과
행간의 여백마저, 여백의 침묵조차
스르르 모래알처럼 손가락 사이로 흘려보낸 뒤
겨우 남은 지시어나 구구점 같은 것
그나마 문지르면 깨끗이 지워질 거다
그러니 눈으로 보려하지 말고
귀를 기울여라, 바람의 언어는 고요인가 소요인가
이정거장은 지금
종착이자 시발이며 경유이기도 한데
다만 바람의 처분에 맡기려 대죄하고 있다
-계간『시와 사람』2008년 봄호 발표
☺️ 강연호
1962년 대전에서 출생
1992년 《문예중앙》으로 등단
시집으로『비단길』등이있음
1995년제1회현대시 동인상 수상
다음검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