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상의 스핑크스 / 김수우
쓸쓸한 분노도 그예 쭉정이고 말 때 옥상으로 간다
깃발이 걸레만 할 때 슬리퍼를 끌고 옥상으로 간다
마침내 당도한 듯
항해, 나침반, 자유 등의 단어가 새로울 때
단어들이 낯설 때도 녹슨 난간 붙들고 옥상으로 간다
마침내 출발한 듯
늙은 세발자전거가 신전의 마차처럼 놓인
옥상에선 모든 광장이 밥그릇만 해진다 밀실도 밥솥이 된다
북두칠성과 상추 화분이 함께 논다
부산 산복도로엔 무럭무럭 옥상이 자란다
옥상은 밥풀 묻은 피라밋, 눈물 넘치는 스핑크스가 바다를 기른다
동해와 남해를 새 푸르게 풀어 놓는다
사랑이 천천히 저물 때 옥상으로 간다
철학사전도 예언서도 거품이 될 때 옥상으로 간다
마침내 잊혀진 듯
거기서 빨래를 넌다 상추잎을 뜯는다
- 김수우 시집 <몰락 경전>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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