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거울 / 이경교

작성자강건너그집|작성시간26.06.09|조회수443 목록 댓글 0

물거울 / 이경교

이곳에 물은 얼마나 많은 알을 깐 걸까

질펀한 저 밑바닥까지 따뜻하다

어지러운 파문을 만들어 깊은 숨을 내쉬는

물의 어느 빛나던 과거

물굽이 눈부신 한나절, 물이끼 속으로 스며들면

무거운 잠의 수면 아래, 몸이 불어버린

물이 알을 슨다

이따금 꽃잎총을 쏘는 별빛과 눈이 맞아

연초록 산 하나 배고 싶었던 걸까

물은 또 배가 무거워 알을 낳고 싶은지

몸을 낮춘다

내가 저 흘러간 날들의 물거울에

추운 얼굴 비출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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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련을 읽는 순서>, 시인의 말

나는 언어의 극한점을 꿈꾼다.

의미의 끝까지 밀고 나가 아슬한 벼랑과 마주하길 원한다.

그 언어의 꼭대기에서 내가 염원하는 건 문화어로서의 모국어다.

오브제와 한몸이 되는 것, 내가 대상 속으로 틈입하는 것,

나와 너의 사이가 사라지는 것!

물론, 그것이 얼마나 무모한 꿈인지 나는 알고 있다.

가끔 그 언저리에서 몸을 떨기도 하지만, 나의 절망 또한

거기서 시작된다는 것도.

그곳에 이르기까지 시간이 넉넉지 않다.

내가 여전히 `혼자 ' `곁길'을 서성이고 있는 이유다.

2016년 2월 이경교

고구려 건국 신화에는 유화부인이 웅심연(熊心淵-물) 출신으로

나와 있다. 이는 신라 박혁거세의 비(妃)인 알영이 알영정(閼英井

-물) 출신이라는 것과 같다. 유화와 알영은 하늘의 남신이었던

해모수와 박혁거세의 여성이 됨으로써 풍요와 생명이라는

신화적 상상력을 지닌다. 물은 죽은 사람을 되살아나게도 하는데

바리데기 신화에서 공주가 죽은 부모를 구하기 위해 서천서역국

(西天西域國)에서 생명수를 가져오는 것이 그 한 예.

목욕재계나 정화수 역시 성심(誠心)이 비치기를 기원하는

믿음이 서려 있는데 이는 윤동주의 ‘자화상’이라는 시에서처럼

자기 성찰적 시선을 담고 있는 것과 같은 맥락. ‘물이 알을 까고’

‘별빛과 눈이 맞아’ ‘산(山) 하나를 배고 싶었던’ 물은, 화려했던

그 옛날 ‘어느 빛나던 과거’. 그러나 지금은 ‘추운 얼굴’.

그럼에도 불구하고 “물은 또 배가 무거워 알을 낳고 싶은지

몸을 낮춘다”. 물을 통해 자기 자신과 만나 더 깊은 곳에 이르려는

일상의 신화적 재생 의식!

/ 박주택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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