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장난 것들 / 이용한

작성자섬초롱|작성시간26.06.09|조회수587 목록 댓글 0

고장난 것들 / 이용한

아침에 나간 추억이 돌아오지 않는다

70년대 라디오 잡음처럼 비가 내리는 밤,

버려진 남자의 폐허 위로

몇 그루의 나무가 시간을 펄럭이며 서 있다

내가 키운 나무들은 아무래도 그리움이 지나쳤다

조금만 비가 와도 와락 눈물에 젖는다

창밖에는 이미 캄캄한 공기가 모든 길을 삼켜버렸다

너무 오래 나는 뒤엉킨 길을 헤매고 있다

비가 그친 뒤에도 내 몸 밖에선

치지직거리는 잡음이 계속된다

어린 시절의 '그'가 마루에 앉아

저녁내 비가 그치지 않는 라디오 탁탁 두들기다가

누런 공책 뒷장을 뜯어 '고장'이라고 쓴다

고장난 것들,

집 나간 추억을 기다리다가 나는 또 지친다.

- 이용한 시집 <안녕, 후두둑 씨>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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