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원의 왕 / 문성해

작성자섬초롱|작성시간26.06.09|조회수694 목록 댓글 0

공원의 왕 / 문성해

한 사람이

공원 벤치 위에 앉아 있다는 건

그에게도 귀속할 세계가 생겼다는 거

그의 발치 아래 모여드는 비둘기들이 있다는 거

그의 정수리 위로 뾰족한 주둥이를 들이대는 별과

그의 그림자로 섞이는 그늘이 생겼다는 거

이 소읍

한 사람이 오래된 공원 벤치에 앉아 있다는 건

호수 위로 고개를 쳐드는 자라와

비늘 뜯겨진 물고기들과

엷은 빛깔의 옷감을 준비하는 수련들이

누군가의 홍채 안에 수런거리며들어선다는 거

한 사람이 공원 벤치 위에 길고 지루하게 앉아 있다는 건

그의 사정거리가 하루가 다르게 길어지고 있다는 거

아무도 찾지 않는 이 쓸쓸하고 오래된 공원에서

오직 한 사람의 관객인 그를 위해

조연이 되어 주는 것들이 있다는 거,

총칼이 아니라도 매일매일 넓어지는 영토가 있다는 것

한 사람이 공원 벤치 위에 진종일 앉아 있다는 건

어떤 오후가 전쟁도 없이 평화롭다는 거

계절은 오고 가고

오래된 대관식에서 입었던

단벌의 외투와

물푸레나무 지팡이를 짚고

응시와 사색의 제왕인 그가 앉아 있다

- 문성해 시집 <너를 다시 물고기로 만들고 싶어서>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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