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원의 왕 / 문성해
한 사람이
공원 벤치 위에 앉아 있다는 건
그에게도 귀속할 세계가 생겼다는 거
그의 발치 아래 모여드는 비둘기들이 있다는 거
그의 정수리 위로 뾰족한 주둥이를 들이대는 별과
그의 그림자로 섞이는 그늘이 생겼다는 거
이 소읍
한 사람이 오래된 공원 벤치에 앉아 있다는 건
호수 위로 고개를 쳐드는 자라와
비늘 뜯겨진 물고기들과
엷은 빛깔의 옷감을 준비하는 수련들이
누군가의 홍채 안에 수런거리며들어선다는 거
한 사람이 공원 벤치 위에 길고 지루하게 앉아 있다는 건
그의 사정거리가 하루가 다르게 길어지고 있다는 거
아무도 찾지 않는 이 쓸쓸하고 오래된 공원에서
오직 한 사람의 관객인 그를 위해
조연이 되어 주는 것들이 있다는 거,
총칼이 아니라도 매일매일 넓어지는 영토가 있다는 것
한 사람이 공원 벤치 위에 진종일 앉아 있다는 건
어떤 오후가 전쟁도 없이 평화롭다는 거
계절은 오고 가고
오래된 대관식에서 입었던
단벌의 외투와
물푸레나무 지팡이를 짚고
응시와 사색의 제왕인 그가 앉아 있다
- 문성해 시집 <너를 다시 물고기로 만들고 싶어서>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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