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페트를 짜는 밤 / 이경교
거미가 예술가로 등재된 건 중세 훨씬 전이다
수메르인들의 쐐기문자나 페르시안 카페트 역사 이전부터
거미는 온몸으로 글자를 쓰고 문양을 찍어 왔으니
아름다운 건 왜 두려운지, 치명적인 것일수록 눈이 부신
까닭을 설명할 순 없지만
저 거미집이 제 살을 헐어 짠 카페트라면
허공에 매달린 글씨라면, 누군가 그걸 읽어줄 때까지
거미의 죽음도 그만큼 미루어졌으리라
아랍어 문자 속에선 이따금 거미가 꿈틀거린다
별과 달이 떴다가 지고, 은실의 카페트가 펼쳐진다
어느 신비주의자는 거미가 자신이라고 우긴 적 있지만
내 몸에서도 은실 타래 술술 풀리거나
까닭없이 툭툭 끊어질 때 있으니, 보아라
저문 바다, 안개 낀 부두를 지나가는 나귀
나귀는 등이 휘고, 거미는 지금 몸이 결린다
내가 늦은 밤 글씨를 쓰는 동안
거미는 꽝꽝, 허공에 인장을 찍고 있다
달무리를 건너와 종이 카페트 위에 그 무늬 박힌다
펜을 쥔 내 손마디 아라비아해 쪽으로 휘어지고
왼쪽 어깨가 몹시 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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