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사지에서 1 / 박영근 (1958~2006)
내가 여기서 보는 건 사금파리가 된 나의 문자(文字)들이다
절벽에 서 있던 시간들이 붙잡고 있던
그리움 하나
반쪼가리 몸뚱이로 비에 젖고
그리고 웬 주검이 저를 보내지 못하고 옛길에서 저렇게 완강하다
나는 탑과 부도를 돌아 먼 데 마을을 바라본다
길을 끌어당기고 있는
오래 묵은 풍경들과
마음이 끝내 허물지 못한 낡은 집 한 채
돌아가고 싶었다
이 폐사지를 건너
뜨거운 해와 바람과 물소리마저 사라진 뒤
밝아올 어둠의 자리
거기 내가 두고 온 바다에 종소리가 떨어지고 있을 게다
막 태어나 젖먹이 울음을 머금고
별자리 하나 눈 푸르게 돋아나고 있을 게다
늙은 산수유 한 그루 나를 보다가 빗속으로 가뭇 사라진다
- 박영근 시집 <별자리에 누워 흘러가다> 2007
폐사지에서 2 / 박영근 (1958~2006)
늙은 산수유 몇그루
제 몸도 잊은 채
노란 꽃 한무더기 저질러놓고
햇살에 취해가는구나
한낮 허공에 떠흐르는 저 빛덩어리
천년쯤 묵은 바람이 피워낸 아기부처 숨결 아니냐
- 박영근 시집 <별자리에 누워 흘러가다>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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