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사지에서 1,2 / 박영근 (1958~2006)

작성자강건너그집|작성시간26.06.11|조회수313 목록 댓글 0

폐사지에서 1 / 박영근 (1958~2006)

내가 여기서 보는 건 사금파리가 된 나의 문자(文字)들이다

절벽에 서 있던 시간들이 붙잡고 있던

그리움 하나

반쪼가리 몸뚱이로 비에 젖고

그리고 웬 주검이 저를 보내지 못하고 옛길에서 저렇게 완강하다

나는 탑과 부도를 돌아 먼 데 마을을 바라본다

길을 끌어당기고 있는

오래 묵은 풍경들과

마음이 끝내 허물지 못한 낡은 집 한 채

돌아가고 싶었다

이 폐사지를 건너

뜨거운 해와 바람과 물소리마저 사라진 뒤

밝아올 어둠의 자리

거기 내가 두고 온 바다에 종소리가 떨어지고 있을 게다

막 태어나 젖먹이 울음을 머금고

별자리 하나 눈 푸르게 돋아나고 있을 게다

늙은 산수유 한 그루 나를 보다가 빗속으로 가뭇 사라진다

- 박영근 시집 <별자리에 누워 흘러가다> 2007

폐사지에서 2 / 박영근 (1958~2006)

늙은 산수유 몇그루

제 몸도 잊은 채

노란 꽃 한무더기 저질러놓고

햇살에 취해가는구나

한낮 허공에 떠흐르는 저 빛덩어리

천년쯤 묵은 바람이 피워낸 아기부처 숨결 아니냐

- 박영근 시집 <별자리에 누워 흘러가다>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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