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사지에서 / 이건청
거기, 아마 대웅전이 있었나보다. 대웅전 복판에서 부처님을
받들고 있었던 대석이 질경이 풀밭에 놓여 있다. 반쯤은
깨어져 있다. 연꽃무늬를 가로지르며 금이 가 있다. 돌이끼가
푸릇푸릇 피어 있다. 이따금 직박구리 몇 마리 끼익 끼익 울면서
부도 쪽으로 스쳐간다. 부도탑 옆 뽕나무 가지엔 오디 열매가
까아맣게 익고 있다. 오디 열매를 따 먹은 직박구리 푸른똥이
구름무늬 탑신에 붙어 있다.
- 이건청 시집 <소금창고에서 날아가는 노고지리>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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