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사지 / 김명기

작성자강건너그집|작성시간26.06.12|조회수234 목록 댓글 0

폐사지 / 김명기

요사채도 없는 절 마당에

일찍 핀 꽃이 진다

한 줌 재가 되어 왕생한

어느 비구의 생을 품고

용맹정진 중인 깨진 부도 위로

한 잎 두 잎, 사바로 흩어지는

보시의 공덕 앞에

홀로 장자와불에 든 당간지주는

깨달음을 얻고도 남았겠다

멀리 두고 떠나온 곳은

한 치 앞도 모른 채 흐트러질 대로

흐트러진 폐허 같고 모두 비워 버린

절터가 살아 있는 세상 같다

마음도 닳고 닳으면 비워질 수 있을까

어둠이 겨우내 묵은 밭둑 아래로

질러 내리는 데 한 치 같은 천년이

또 지나가도 꽃은 지고 있을까

- 김명기 시집 <돌아갈 곳 없는 사람처럼 서 있었다>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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