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수아비 / 고진하
위대한 조물주인
인간은
자기의 형상을 따라
짚으로 허수아비를 만들어
새 떼를 쫓게 했으나
조물주의 실수로
자유의지를 갖게 된
허수아비는
바람을 다스리다
마침내
새가 되어 어디론가 날아가고
허수아비 섰던 자리에는
그의 형상을 따라
플라스틱으로 빚어진
눈 · 코 · 귀 · 입도 없는 인간이
두 팔을 휘저어
펄펄 종이새만 날리고 있다
- 고진하 시집 <지금 남은 자들의 골짜기엔> 19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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