움직이는 허수아비 / 임보
고속도로 작업 구간 전방에서
붉은 깃발을 들었다 내렸다 하며
속도를 통제하는 노란 헬멧의 사내가 있다
500미터 전방 작업 중!
절대 서행!
의 푯말 곁에 종일
한 가지 동작만을 되풀이하고 서 있는
저 황색 플라스틱 로봇!
우리는 차창 너머 그를 내다보며
참 따분한 녀석이라고 웃지만
따분한 것은 그놈만이 아니다
보라,
톨게이트의 좁은 창틀에 끼여
밀려오는 차들의 티켓을 받아
통행료를 계산하는 저 분주한 손들
아니,
은행의 창구며 회사의 데스크에서
온종일 자판기를 두드리는 저 손들
미싱대 위에서 바삐 움직이는 여공들의 손
뜨거운 화덕 앞에서 해머를 쥔 근육질의 손
배의 삿대를 잡은 사공의 손도 그렇고
때마다 끼니를 준비하는 주부의 손도 그렇다
저 무료한 반복의 동작들
생각하면
매일 집과 직장을 오르내리는 우리의 일상이
다 그렇고 그렇다
오직 동가숙東街宿 서가식西街食*하며
떠도는 저 노숙자들만이
'따분'의 굴레를 벗어난 자유인이다
*東街宿 西街食: 東家宿 西家食의 패러디.
- 임보 시집 <아내의 전성시대>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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