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자를 사랑하는 사람들 / 최금진

작성자섬초롱|작성시간26.06.12|조회수266 목록 댓글 0

모자를 사랑하는 사람들 / 최금진

모자 값이 오르면 증시가 오르고 덩달아 농산물 값도 오르고

밭에다 채소를 기르듯 모자를 자식들 머리에 심어줍니다

왜 처음부터 인생을 잘 벗어서 선반 위에 올려놓지 않았느냐고요

그건 모자의 흑백논리입니다

울타리를 넘어 모자 한송이를 몰래 꺾었다고 칩시다

그것이 살인죄는 아니지만 어머니는

모자를 벗어 예를 표하는 일이 익숙합니다

모자의 무게 때문에 척추가 휘어진 농부들도 있습니다

우린 장자에게 모자를 물려줍니다

과일을 파는 사람들이 향긋한 꿈을 언제나 뒤집어쓰고 다니듯

모든 모자는 반드시 불행해야만 한다, 건국 오천년을 맞는

우리의 모자 보호법입니다

시집올 때 쓰고 온 모자 안에 어머니가 몰래 텃밭을 늘려 가는 것처럼

무덤 같은 하늘을 쓰고 비를 피하는 모자들은 쓸쓸합니다

초립을 쓰고 일생 떠돌며 모자에 대한 시를 쓴 사람도 있습니다

산사의 범종 밑엔 새들이 모자를 벗고 앉아 떨고 있습니다

우리 어머니가 시장에서 비싼 모자 앞을 오래 서성일 때

부디 모자를 벗고 서로 인사를 나무며 웃어주세요

우린 모자 앞에서 기하학적인 어떤 사랑의 형상을 배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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