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거도可居島 / 박제영
흑산도 너머 서남쪽 먼 바다에
검은 가마솥 하나 섬처럼 떠 있지
바다와 바람과 바위가
더불어 한솥밥이 되어주고
짐승과 나무와 사람이
더불어 한솥밥을 먹여주고
마침내 모두 한솥이 되어버린
살아서도 죽어서도
가히 살 만한 섬이 있지
가거도에 가거든
후박나무를 보지 말고
섬과 바다를 보지 말고
모진 겨울에도 절절 끓고 있는
우리가 오래 전에 잃어버린
가마솥을 보고 오시게
수평선 너머 가마득히
멀어도 아주 먼 바다에
커다란 가마솥이 절절 끓고 있지
- 박제영 시집 <식구>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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