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스트로포비치의 첼로 / 고정희 (1948~1991)
나직히 그러나 힘차게
소우주의 붕괴가 시작되고
그 붕괴의 갈기를 날리며
우람하게 우람하게 첼로는 울었다
미증유의 혼돈이 결을 내며 쓰러졌다
아 억겹의 자웅도 열시에 열렸다
백 미터 전방으로 물러앉은 산맥들이
다섯 개의 선처럼 떠올라 울고
불 번쩍하는 정신의 섬광
슬픔의 급소마다 찬란하게 꽃혔지
해방이다 해방이다 해-방-이-다
무서운 피돌기가 시작되면서
점차 붕괴는 붕괴가 아니었어
점차 음악은 음악이 아니었어
드디어 첼로는 첼로가 아니었어
그것은 하느님의 바른손이 되어
우주의 덜미를 흔들고 흔들고 흔들고
그것은 하느님의 왼손이 되어
숯이 된 가슴팍에 햇불을 박았어
오 정신에 의한 정신을 위한 정신의 르네상스,
그때 나는 결연히 마주쳤지
어지러운 정신의 광휘를 보았지
그 이후 나는 믿게 되었어
한 사람의 정신이 첼로가 되는 날
한 사람의 슬픔이 첫눈 같은 詩가 되는 날
우주는 새로이 탄생된다는 것을
나는 간절히 꿈꾸게 되었네
- 고정희 시집 <이 時代의 아벨> 19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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