곰팡이꽃 / 김수우
꽃무늬 벽지 위에 곰팡이가 피었습니다 몰래몰래 스민
습기를 벽지는 가리다가리다 못 견디고 게워냅니다
겁 많은 혼이 숨어 살아온 듯 착한 도깨비 형상입니다
머리뿔 사이로 둥근 눈을 봅니다 존재마다 눈이 있듯
저도 존재라고 말합니다 시멘트 틈에서 자란 눈빛이
새털구름을 닮았습니다 모든 슬픔에는 맑은 눈이 있어
세상이 따뜻한 데 깊이에서 자란 곰팡내에서 비로소
사람 냄새, 살아있음의 냄새를 맡습니다 꽃무늬를
다 지우는 몸짓 아마도 벽은 저 혼자 오래도록 몰래,
슬펐던 모양입니다
- 김수우 시집 <당신의 옹이에 옷을 건다> 2002
다음검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