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각화 / 길상호

작성자섬초롱|작성시간26.06.13|조회수970 목록 댓글 0

암각화 / 길상호

소주 한 잔 같이 기울이자고

바위 속 남자를 불러냈어요

옷걸이에 활과 화살집을 걸어놓고

앉는데 그의 발목 복사뼈에서

돌조각이 몇 개 떨어지네요

마지막 사냥 늑대에게 물린 자국이라며

딱딱한 입술로 술잔 비우고

아무렇지 않게 말해요, 오히려

사슴들 내달리는 푸른 초원과

물고기 가득한 강이 옆에 있으니

세상 부러울 게 하나 없대요

그것보다 나의 가슴에서 지워진

암각화 사연이 더 궁금하다고,

어젯밤 눌러 꺼버린 별에 대하여

차마 털어놓을 수가 없어서

나는 또 쓰디쓴 술을 넘겨요

금이 가기 시작한 눈동자에

미지근한 소주가 한 방울 맺혀요

날이 밝자 그는 그림 속으로 들어가고

술에 취한 나만 혼자 남아서

부스러진 가슴을 긁어내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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