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리조나에서 온 소년 / 고은강

작성자바라보기|작성시간26.06.13|조회수957 목록 댓글 5

에리조나에서 온 소년 / 고은강

추워요,
소냔을 자꾸만 옷깃을 여몄다
재채기를 할 때마다
검은 눈동자에서는 탁탁
불씨가 튀어올랐다
나는 소년의 눈동자가 꺼질까 봐
자꾸만 입김을 불어주었다
소년의 머리 위로
벙어리장갑 같은 구름들이 피어올랐다 사라졌다
형들이 아버지를 속기하는 동인
생선이 늘고
언니들이 어머니를 표절하는 동안
고양이는 코끼리처럼 뚱뚱해져
추워요, 소년은 자꾸만
검은 병病 속으로 파고들었다
보고 싶어
병을 흔들면 발기하는 욕처럼
음악들이 쏟아져 나와
귀의 예언대로
눈에도 해발고도가 그어지고
춥다,
밤사이 서리가 유골처럼 쌓여
나도 모르게
너를 꼬옥 끌어안고 잠이 들었지

- 계산 『시인시각』2009년 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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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빗새 | 작성시간 26.06.13 병(病)이라는 우주, 사랑이라는 체온

    ― 고은강 「에리조나에서 온 소년」론

    고은강의 「에리조나에서 온 소년」은 하나의 서사라기보다 병든 존재를 둘러싼 환각적 풍경의 연쇄다. 이 시는 현실의 논리보다 무의식의 논리를 따른다. 독자는 시를 읽는 동안 명확한 의미를 해독하기보다 차가운 병실과 꿈의 내부를 동시에 걷는 듯한 경험을 하게 된다. 시 전체를 지배하는 것은 ‘추위’와 ‘체온’, 그리고 ‘병’과 ‘사랑’의 긴장 관계이다.

    시는 단순한 진술로 시작된다.

    "추워요,"

    이 한마디는 단순한 감각의 표현이 아니다. 시 전체를 움직이는 존재론적 신호다. 여기서 추위는 계절적 현상이 아니라 삶의 근원적 결핍을 상징한다. 소년은 계속해서 추위를 느끼고, 화자는 그 추위를 막아주려 한다.

    "나는 소년의 눈동자가 꺼질까 봐
    자꾸만 입김을 불어주었다"

    이 장면은 매우 인상적이다. 눈동자에서 "불씨"가 튀어 오른다는 이미지와 화자의 "입김"이 만나는 순간, 시는 생명의 은유를 획득한다. 불씨는 생명력이며 의지이고, 입김은 사랑이다. 결국 이 시에서 사랑은 거창한 선언이 아니라 꺼져가는 불을 살려내기 위해 내미는 따뜻한 숨결이다.

    특히 눈여겨볼 것은 시의 제목이다.
  • 작성자빗새 | 작성시간 26.06.13 "에리조나에서 온 소년"

    에리조나는 미국에서도 가장 뜨거운 사막 지역이다. 그런데 그곳에서 온 소년이 "추워요"를 반복한다. 이 역설은 시를 읽는 중요한 열쇠가 된다.

    가장 뜨거운 곳에서 온 존재가 가장 추워한다.

    이것은 물리적 추위가 아니라 영혼의 추위다. 외부 환경이 아무리 뜨거워도 내면이 얼어붙어 있다면 인간은 추위를 느낀다. 따라서 에리조나는 현실의 지명이 아니라 소년이 잃어버린 원형적 고향, 혹은 상실된 생명의 원천으로 읽힌다.

    시의 중반부는 급격히 초현실주의적 상상력으로 이동한다.

    "형들이 아버지를 속기하는 동안
    생선이 늘고
    언니들이 어머니를 표절하는 동안"

    가족 관계가 모두 기괴하게 변형된다. "속기"와 "표절"이라는 언어는 원본과 복제의 문제를 환기한다. 가족 구성원들이 서로를 재현하고 모방하는 동안 정작 진짜 존재는 사라지고 있다. 이 장면은 현대 가족의 공허한 재생산 구조를 비판하는 은유처럼 보인다.

    더욱 놀라운 것은 이어지는 구절이다.

  • 작성자빗새 | 작성시간 26.06.13 "고양이는 코끼리처럼 뚱뚱해져"

    이 이미지는 카프카적 변형을 연상시킨다. 현실의 비례와 질서가 무너지고 모든 존재가 비정상적으로 팽창한다. 병든 의식 속에서 세계는 정확한 크기를 유지하지 못한다. 병은 육체만이 아니라 세계 인식 자체를 변형시키는 것이다.

    시의 핵심 상징은 단연 "검은 병(病)"이다.

    "소년은 자꾸만
    검은 병病 속으로 파고들었다"

    흥미로운 것은 시인이 병(病)을 한자와 함께 표기했다는 점이다. 이는 단순한 질병이 아니라 하나의 독립된 세계로 병을 제시하려는 의도로 보인다. 소년은 병에 걸린 것이 아니라 병 속으로 들어간다. 병은 상태가 아니라 공간이 된다.

    이때 병은 죽음의 은유인 동시에 자궁의 은유가 된다. 소년은 병 속으로 숨어들어 자신을 보호하려 하지만, 동시에 그 공간은 그를 점점 더 고립시킨다.

    후반부에 이르면 시는 더욱 신비로운 차원으로 이동한다.

    "병을 흔들면 발기하는 욕처럼
    음악들이 쏟아져 나와"

  • 작성자빗새 | 작성시간 26.06.13 병 속에는 욕망과 음악이 갇혀 있다. 여기서 음악은 억압된 생명의 진동이다. 병을 흔드는 순간 그것들은 분출한다. 병은 죽음의 공간이지만 동시에 창조의 공간이다. 고은강은 질병과 예술이 서로 맞닿아 있다는 오래된 낭만주의적 통찰을 현대적으로 변주하고 있다.

    특히

    "귀의 예언대로
    눈에도 해발고도가 그어지고"

    라는 구절은 이 시의 백미다.

    보통 해발고도는 산에 존재한다. 그런데 시인은 눈에도 해발고도를 그린다. 이는 눈물이 쌓인 높이일 수도 있고, 고통의 축적일 수도 있다. 감정이 지형이 되는 순간이다. 인간의 내면이 하나의 산맥처럼 솟아오르는 장면이라고 할 수 있다.

    시의 결말은 놀랍도록 따뜻하다.
  • 작성자빗새 | 작성시간 26.06.13 "나도 모르게
    너를 꼬옥 끌어안고 잠이 들었지"

    앞선 모든 환각과 병적 이미지들이 결국 이 한 장면을 향해 흘러왔다. 화자는 소년을 치료하지 못한다. 병을 없애지도 못한다. 다만 끌어안는다.

    이것은 현대시가 도달할 수 있는 가장 인간적인 윤리일지 모른다.

    고은강의 「에리조나에서 온 소년」은 질병과 상실, 가족과 욕망, 죽음과 사랑을 초현실주의적 이미지의 그물망 속에 배치한 작품이다. 이 시의 미덕은 의미를 설명하지 않는 데 있다. 대신 이미지들이 서로 충돌하며 독자의 무의식을 흔든다.

    결국 이 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병"이 아니다.

    병 속으로 들어가 버린 존재를 끝내 포기하지 않고 품어주는 체온이다.

    그래서 이 시는 병의 시가 아니라 사랑의 시다. 추위의 시가 아니라, 추위 속에서 끝내 서로를 끌어안는 인간의 체온에 대한 시다. 고은강은 그 체온을 설명하지 않고, 단지 한 편의 몽환적인 겨울 풍경으로 우리 앞에 펼쳐 보인다. 그리고 독자는 시를 덮은 뒤에도 오래도록 그 소년의 차가운 손과 화자의 따뜻한 입김을 기억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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