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스크들 / 이영광

작성자섬초롱|작성시간26.06.14|조회수430 목록 댓글 0

마스크들 / 이영광

어쩌다 서울 가면 버스나 지하철에서

모이 쪼는 양계장 닭처럼 승객들이 예외 없이

스마트폰 액정화면에 목을 빠뜨린 걸 보고

신은 과연 계시는구나, 싶었다

팬데믹 땐 단 하나 예외도 없이

다들 마스크 속에 얼굴을 묻은 채로 또

그걸 들여다보고 있어서

신은 한층 분명히 계시는구나, 싶었고

꼭 신이 있어서가 아니더라도

대단해 보이던 이들, 셀렙들은 물론 톱스타들,

재벌 총수에 대통령에 해외의 왕들까지도 마스크 속에서

코맹맹이 소리로 옹알대는 걸 들으면 어쩐지

세상이 공편해진 것 같더라고

예외가 없다는 것...... 이를테면, 중국인들이 모두 제자리에서

일제히 뛰었다 내리면 지구가 궤도 이탈한다는

농담 속의 그 모두나 일제히 같은 말을 떠올리다보면,

계급은 죽고 평등 세상이 온 것 같더라고

하지만 갔다 왔는지 왔다 갔는지 모르겠던 조상귀신들처럼

팬데믹 지나간 시절, 볕 좋은 서울 거리,

그새 부음 몇줄 달랑 남기고 떠나버린 이들 생각나고

좋은 것가지고는 그런 예외 없는 천국이란 게

올 리가 없지 않나 싶어지는 것이다, 아니

그러다가도 북적대는 인파에 떠밀리며

일제히 사라져버린 마스크들 생각을 하다보면 또

꼭 신이 있어서가 아니더라도,

이 지구는 궤도를 잘만 이탈할 뻔하지 않았던가

모두를 괴롭혔지만 모두에게 정말 좋은 어떤 것이

단 한번 예외처럼,

우리 곁에 와 몇년씩이나 머물다가 그만

지쳐 떠나버린 건 아닌가 싶기도 한 것이다

- 이영광 시집 <살 것만 같던 마음>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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