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스크들 / 이영광
어쩌다 서울 가면 버스나 지하철에서
모이 쪼는 양계장 닭처럼 승객들이 예외 없이
스마트폰 액정화면에 목을 빠뜨린 걸 보고
신은 과연 계시는구나, 싶었다
팬데믹 땐 단 하나 예외도 없이
다들 마스크 속에 얼굴을 묻은 채로 또
그걸 들여다보고 있어서
신은 한층 분명히 계시는구나, 싶었고
꼭 신이 있어서가 아니더라도
대단해 보이던 이들, 셀렙들은 물론 톱스타들,
재벌 총수에 대통령에 해외의 왕들까지도 마스크 속에서
코맹맹이 소리로 옹알대는 걸 들으면 어쩐지
세상이 공편해진 것 같더라고
예외가 없다는 것...... 이를테면, 중국인들이 모두 제자리에서
일제히 뛰었다 내리면 지구가 궤도 이탈한다는
농담 속의 그 모두나 일제히 같은 말을 떠올리다보면,
계급은 죽고 평등 세상이 온 것 같더라고
하지만 갔다 왔는지 왔다 갔는지 모르겠던 조상귀신들처럼
팬데믹 지나간 시절, 볕 좋은 서울 거리,
그새 부음 몇줄 달랑 남기고 떠나버린 이들 생각나고
좋은 것가지고는 그런 예외 없는 천국이란 게
올 리가 없지 않나 싶어지는 것이다, 아니
그러다가도 북적대는 인파에 떠밀리며
일제히 사라져버린 마스크들 생각을 하다보면 또
꼭 신이 있어서가 아니더라도,
이 지구는 궤도를 잘만 이탈할 뻔하지 않았던가
모두를 괴롭혔지만 모두에게 정말 좋은 어떤 것이
단 한번 예외처럼,
우리 곁에 와 몇년씩이나 머물다가 그만
지쳐 떠나버린 건 아닌가 싶기도 한 것이다
- 이영광 시집 <살 것만 같던 마음>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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