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쌉쌀한 어둠 / 곽은영

작성자바라보기|작성시간26.06.14|조회수590 목록 댓글 0

달콤쌉쌀한 어둠

곽은영

어둡고 축축한 물 같은 나의 짝패
춥지 않으면 겨울이 아니듯
나는 나의 웃음을 의심했다

당신을 위해 그렸던 워킹셔츠의 밤
갓 태어난 이파리 같은 싱싱하고 비밀스런 눈의 언어
치장할 줄 모르는 혀가 당신,
이라고 불렀을 때 입을 벌려 혀끝으로 음미하게 하는
당신의 파동,

우리는 세상에서 더러운 관계가 되었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그냥 정직하게, 더러운 관계

나는 당신의 엄마이고 누이이고 연인이자 친구
당신은 그러므로 나의 사랑스러운 검정
보라와 핑크와 블루의 벽을 핥아 뱉어낸 순도 높은 감정
그러나 엉망인 관계, 항문 속까지 알만큼 우리는 정직했으나

잔혹하고 슬픈 나의 짝패
어둡지 않으면 옷을 벗지 않듯
나는 나의 침묵을 의심했다

넓은 잎에 두껍게 포개진 먼지 같은 감정
당신이 콧수염을 붙이고 아버지 놀이를 했다면
이마를 깨는 돌멩이 같은 비웃음을 받진 않았겠지
그러나 깨끗한 관계, 그런 것이 있기나 할까

오래된 법전을 뒤적여도 페이지를 넘기는 것은 우리의 손
우리의 그림자는 한 덩어리 절름발이
같은 피를 발자국 도장으로 찍으며 걸어가는 중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그냥 정직하게

- 시집 「검은 고양이 흰개』 (랜덤하우스코리아, 2008)

▶ 곽은영(1975년 전남 광주에서 출생)
2006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개기월식>으로 등단. 시집으로 검은 고양이 횐개가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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