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개의 허영虛榮 / 마종기

작성자강건너그집|작성시간26.06.15|조회수647 목록 댓글 0

몇 개의 허영虛榮 / 마종기

外國에 십년도 넘게 살면서

향기도 방향도 없는 바람만 만나다 보면

헐값의 虛榮은 몇 개쯤 생길 수 있지.

호박잎 쌈을 싸 먹고 싶다.

익은 호박잎 잔털 끝에

목구멍이 칼칼해지도록.

목포 앞바다의 생낙지도

동해의 팔팔한 오징어도.

배가 부르면 마라톤도 뛰고 싶다.

6.25 전이었기는 하지만 매일 저녁 맨발로 뛰던

우물집 세천이와 생선 가게 광수랑 같이

창경원, 돈화문, 종로 삼가, 사가, 오가

숨이 차서 돌아오던 혜화동 로터리쯤.

이젠 그런 세월이 아니라면

산보라도 하고 싶다.

유난히 이쁜 계집애 많던 명륜동 뒷골목을

아침이나 저녁이나 비슷하게 끓던 골목.

팍팍한 그 된장찌개고 먹고 싶다.

이제 알 듯도 하다.

돌아가신 先親이 다 던지고 귀국하신 뒤

아쉬움 속에서도 즐기시던 당신의 가난을,

가난 속에서 알뜰히 즐기시던 몇 개의 허영을.

- 마종기 시집 <안 보이는 사랑의 나라> 19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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