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도를 빌린다 / 윤성택

작성자섬초롱|작성시간26.06.15|조회수710 목록 댓글 0

지도를 빌린다 / 윤성택

삶에서 너무 멀리 와 버려서

꿈은 자주 길을 잃는다

어디 좀 갔다 왔다고 말하는 것처럼

운명은 앞뒤가 잘린 티켓이고

짐은 처음부터 내 것이 아니었다

기억에 남는 게 없으면 여행이 아니라고들 하지만

기억이 너무 많아 어디든 눌러앉을 수 있지 않을까

떠나고 싶다는 말은

엽서가 먼저 도착해 꿈에게 답장하는 거겠다

싶다.

이 그리운 발신이

기차를 달리게 하고 비행기를 날짜 경계선에 묶어 둔다

먼 길 떠나기 전 감각이 먼저 멀미를 느끼면

꿈은 몸이 집이었다는 사실에

망연해진다

사실, 여행에서 가장 설레는 것은

전날의 가방이라서

잠은 넌지시 여행에게 지도를 내민다

거기로 가라

가서 거기서

몸이 다하지 못한 꿈을 대신 살아라

- 시와 사상 2025년 겨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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