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명과 시 / 김종수

작성자강건너그집|작성시간26.06.17|조회수633 목록 댓글 0

혁명과 시 / 김종수

“한 여자의 육체, 흰 언덕들, 흰 넓적다리,

네가 내맡길 때, 너는 세계와 같다.”*

체 게바라는 전선에서 수많은 시를 필사했고**

군장에 넣고 다니며 전투 없는 날마다 읽었다

호치민은 중국 옥중에서 100편이 넘는 시를 썼고

민족해방 혁명 철학의 바탕이 됐다

레닌은, 마오쩌둥은, 무수한 혁명가들은 어떠했을까?

나는 알지 못한다

다만, 인민의 해방을 위하여!

백만의 혁명군들이 도열해 있다

끝이 가물가물하다

만 번째 줄, 눈빛 형형한 그대

그대의 손수첩에는

눈물로 헤어진

언제 다시 만날지 기약 없는 사랑에 대해

혁명의 과정에서 야기되는 수많은 비극에 대해

역사에 기록되지 않을 수많은 야사野史에 대해

핏빛으로

깨알처럼 쓰여지리라

서슬 퍼런 결기만을 선동하지 말라

도구화되었다 한들 연정戀情조차 없으랴

고즈넉한 그리움이 없으랴

혁명의 전장이라고 향기로운 풀꽃 아니 피랴

혁명의 궁극은 무엇이더냐

이념과 체제가 그 무엇이든 모두 잘 먹고 잘 사는 것 아니더냐

자유 평등 평화 인간해방 아니더냐

한바탕 폭풍을 위해 풀꽃의 향기를 꺾는다면

아름답고 슬프고 서럽고도 고독한

시 한 줄의 낭만조차 허락할 수 없다면

그것이 대의를 위해 어쩔 수 없는 일이라면

정말 그것을 혁명이라 말할 수 있겠느냐

정녕 그것도 해방이라 말할 수 있겠느냐

별똥별 비처럼 쏟아지는 벌판에 선

만 번째 줄, 눈빛 형형한 그대

백만의 혁명군들이 도열해 있다

* 파블로 네루다의 시, <한 여자의 육체> - 스무 편의 사랑의 시와

한 편의 절망의 노래

* 체게바라는 볼리비아 혁명 중 체포되고, 1967년 10월 9일 재판도 없이

처형당했다. 그의 군장 속에 있던 녹색 노트에는 파블로 네루다의 시

17편 세사르 바예호의 시 18편 니콜라스 기엔의 시 25편 레온 펠리뻬의

시 9편 등 총 69편의 시가 필사되어 있었다.

엄니와 데모꾼 / 김종수

고분고분하지 말고 일부러라도 틱틱거려야

데모꾼 자식 둔 엄니들은 가끔 그게 익숙할 때가 있어야

그래야 아이구 저늠 승깔 하곤 딱 지애비 닮아서리

하믄서 먼저 죽은 남편 생각하는 거라야

헌디 이늠아 제발 이늠아 넘 앞장서다 다치지 말구 중간만 해라잉 그라시지

그라믄 아구 아구 알았다닝께 또 그라시네 허지

참 그 소리 들을 날도 얼마 안 남았제

그케 생각하믄 눈물 나야

- 김종수 시집 <엄니와 데모꾼>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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