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잠 / 강성은

작성자섬초롱|작성시간26.06.17|조회수624 목록 댓글 0

낮잠 / 강성은

아직도 여기가 익숙치 않아서

잠에서 깨어나면

나는 울음을 터트리기 직전의 기분

 

말없는 창백한 사물들이

나를 알아볼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낮잠에서 깬 아이가

느닷없이 서럽게 우는 건

세상이 아직 익숙치 않아서라는데

 

잠들기 전의 세계와

눈을 뜨고 난 후의 세계가

서로 다른 방향으로 천천히 미끄려져 간다

 

황급히 눈을 비빈 사람들이

머리를 감고 가방을 들고 어디론가 간다

 

그곳도 어제와는 다른데

따뜻한 음식을 먹다가

고장 난 기계처럼

뼈만 남은 채로

맞은 편 거리를 본다

 

약국 앞 줄지어 서 있는

파리한 사람들

모두 울음이 쏟아지기 직전의 뒷모습

 

아직도 여기

있습니까

 

- 강성은 시집 <슬로우 슬로우>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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