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잠 / 강성은
아직도 여기가 익숙치 않아서
잠에서 깨어나면
나는 울음을 터트리기 직전의 기분
말없는 창백한 사물들이
나를 알아볼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낮잠에서 깬 아이가
느닷없이 서럽게 우는 건
세상이 아직 익숙치 않아서라는데
잠들기 전의 세계와
눈을 뜨고 난 후의 세계가
서로 다른 방향으로 천천히 미끄려져 간다
황급히 눈을 비빈 사람들이
머리를 감고 가방을 들고 어디론가 간다
그곳도 어제와는 다른데
따뜻한 음식을 먹다가
고장 난 기계처럼
뼈만 남은 채로
맞은 편 거리를 본다
약국 앞 줄지어 서 있는
파리한 사람들
모두 울음이 쏟아지기 직전의 뒷모습
아직도 여기
있습니까
- 강성은 시집 <슬로우 슬로우>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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