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만의 시대 - 최서림

작성자솔바람|작성시간26.06.18|조회수1,242 목록 댓글 0

야만의 시대 - 최서림

 

 

공납금 밀리면 수업도 못하고 집으로 쫓겨갔었다.
식목일 앞산에서 뽑은 소나무를 뒷산에다 옮겨 심었다.
죄다 말라죽어버렸다. 앞다퉈
유신만이 살 길이라고 떠들어댈 때
국기에 대한 경례를 안 한다고 따귀를 맞았다.

 

가발 쓴 낯선 얼굴들이 강의실에서 꾸벅꾸벅 졸았다.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할 땐 목소리를 낮추었다.
자기 글을 자기가 알아서 검열했다.
삼청교육대가 잘하는 짓이라고 나발 불던 사람들.
데모하다 잡히면 콘크리트 바닥에
죽은 개 끌고 가듯 질질 끌고 갔다.

 

용산 참사가 그저 뉴스 속의 참사일 뿐,
철도 파업이 내 밥그릇과는 상관없는 일일 뿐,
키르키즈 이반에 걸려 뒈지고 변해버린
오디세우스 부하들이 마냥 행복하기만 하다.
99프로의 분노에 동조하면서도
홈쇼핑으로 일상의 구멍을 메워보는
망가진 안락의자 같은 삶.

 

어제의 야만은 오늘의 야만을 낳고
보이는 야만은 보이지 않는 야만을 낳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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