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 / 박경리 (1926~2008)

작성자섬초롱|작성시간26.06.20|조회수514 목록 댓글 0

봄 / 박경리 (1926~2008)

늙어도 봄은 못 견디게 하는 계절이다

생각은 모두 다 달아나고

육신이 밖으로 향해 줄달음치는 계절이다

두릅은 엄지손가락만큼 자랐고

골짜기에 달래는 무더기로 솟아나

가늘고 보드라운 잎이 바람 따라 드러눕고

미역취 곰치는 퉁겁게 땅 헤치며

아아 산수유 개나리 진달래 이름 모를 꽃들

산과 들에는 생명으로 가득 차니

어떻게 엉덩이 붙이고 가만히 있겠는가

다만 서글픈 것은 날듯이 달리고

온종일 일하여도 꿈은 달콤하기만 했는데

한 걸음 한 걸음 나가기가 힘들게 된 늙은 몸

아아 생명의 찬란한 빛이여

씨 뿌리는 봄의 정령들이여

온통 세상은 축복이며 축제이다

 

- 박경리 유고 시집 <산다는 슬픔> 2026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 북마크
  • 신고 센터로 신고

댓글

댓글 리스트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