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 / 박경리 (1926~2008)
늙어도 봄은 못 견디게 하는 계절이다
생각은 모두 다 달아나고
육신이 밖으로 향해 줄달음치는 계절이다
두릅은 엄지손가락만큼 자랐고
골짜기에 달래는 무더기로 솟아나
가늘고 보드라운 잎이 바람 따라 드러눕고
미역취 곰치는 퉁겁게 땅 헤치며
아아 산수유 개나리 진달래 이름 모를 꽃들
산과 들에는 생명으로 가득 차니
어떻게 엉덩이 붙이고 가만히 있겠는가
다만 서글픈 것은 날듯이 달리고
온종일 일하여도 꿈은 달콤하기만 했는데
한 걸음 한 걸음 나가기가 힘들게 된 늙은 몸
아아 생명의 찬란한 빛이여
씨 뿌리는 봄의 정령들이여
온통 세상은 축복이며 축제이다
- 박경리 유고 시집 <산다는 슬픔> 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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