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다섯 살을 반성함 / 윤제림
1
스물다섯살, 카피라이터 일할 때 농약 광고 많이 만들었지.
아직도 잊히지 않는 상표 - 고올, 키타진...배추 한 포기
키워보지 못한 사람이 흰소리를 막 했다네. 잡초와 해충을
말끔히 없애준다고, 일등품 수확을 약속한다고.
'밝아오는 농어촌' 그런 프로에 날마다 광고를 했네.
박수를 받았네, 카피 잘 쓴다고.
2
농부들 곧이듣고 콩밭에 파밭에 마늘밭에 고추밭에
배밭에 사과밭에...... 흘리지 말고 먹어라
흠씬 뿜고 뿌리고 듬뿍 쏟고 부으며
풍년을 그렸을 거야
이 나라 순박한 흙과 나무들, 순순히
들이켜고 마셨겠지,풀도 나무도
저 죽는 약이란 걸 알면서도
가만히 머금고 삼켰겠지
농사가 딱해서
농부가 가여워서
"우리에게 약 먹인 자가 저기 간다"
저무는 국도 변 저수지 둑길
늙은 전답, 검버섯 들판이
목덜미를 잡네
여전히 농약병 구르고 검은 비닐 날리는
농수로 다리 위에 차를 세우고
나, 참회의 문장을
땅에다 묻네
용서하십시오, 죽는 약인 줄 몰랐습니다
나도 죽는 줄 몰랐습니다
- 윤제림 시집 <스물다섯살을 반성함> 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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