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다섯 살을 반성함 / 윤제림

작성자섬초롱|작성시간26.06.21|조회수374 목록 댓글 0

스물다섯 살을 반성함 / 윤제림

1

스물다섯살, 카피라이터 일할 때 농약 광고 많이 만들었지.

아직도 잊히지 않는 상표 - 고올, 키타진...배추 한 포기

키워보지 못한 사람이 흰소리를 막 했다네. 잡초와 해충을

말끔히 없애준다고, 일등품 수확을 약속한다고.

'밝아오는 농어촌' 그런 프로에 날마다 광고를 했네.

박수를 받았네, 카피 잘 쓴다고.

 

2

농부들 곧이듣고 콩밭에 파밭에 마늘밭에 고추밭에

배밭에 사과밭에...... 흘리지 말고 먹어라

흠씬 뿜고 뿌리고 듬뿍 쏟고 부으며

풍년을 그렸을 거야

 

이 나라 순박한 흙과 나무들, 순순히

들이켜고 마셨겠지,풀도 나무도

저 죽는 약이란 걸 알면서도

가만히 머금고 삼켰겠지

농사가 딱해서

농부가 가여워서

 

"우리에게 약 먹인 자가 저기 간다"

저무는 국도 변 저수지 둑길

늙은 전답, 검버섯 들판이

목덜미를 잡네

 

여전히 농약병 구르고 검은 비닐 날리는

농수로 다리 위에 차를 세우고

나, 참회의 문장을

땅에다 묻네

 

용서하십시오, 죽는 약인 줄 몰랐습니다

나도 죽는 줄 몰랐습니다

- 윤제림 시집 <스물다섯살을 반성함> 2026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 북마크
  • 신고 센터로 신고

댓글

댓글 리스트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