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매기의 기도 / 이은심
내게 공중에 흠집 내지 않을 만큼의 연한 깃털을 주소서
남의 머리를 짓밟지 않을 조그마한 발과
새의 이름에 부끄럽지 않을 만큼의 날개로 공중을 저어가게 하소서
갓 태어난 벌레를 숨기시고 나 때문에 아침먹이를 구하지 못한
다른 새를 위하여 기도하게 하소서
내 배설물이 착한 이의 비석에 떨어져 꿈을 더럽히지 말게 하시며
두 개의 날개가 어느 쪽으로도 치우치지 않으므로 평등의 수평선을
날게 하소서
너무 오래 한 곳에 머물다가 추락하지 말기를
새 이상의 아무것도 아님을 아름다운 높이에서 바라보게 하소서
목소리를 높이다가 고기잡이에서 돌아온 어부의 단잠을 깨우게 마시고
행여 상처 입은 몸으로 파도에 휩쓸려 보는 이의 마음을 아프게 마소서
내 죽은 모습 눈에 띄지 않게 풍장시켜 주소서
- 이은심 시집 <오얏나무 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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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일몰의 시간, 해가 꼴각 넘어갔다.
아니 지구가 자전 중이다. 여전히 나는 지동설과 천동설에
혼란을 느끼지만 천체가 운행하는 굉음을 우리가 들을 수
없다는 것은 다행한 일이다. 조물주의 깊은 배려다.
해거름 유년의 기억 중엔, 얼핏 선잠에서 깨어나면 그때 왜
엉뚱하게도 서러움이 몰려왔는지? 아마 엄마가 집에 없어서
그랬는지 몰라, 光速의 세월이 흐른 오늘 저녁 나는
스멀스멀 어둠 속으로 가라앉는 창 밖의 풍경을 보고 있다.
깊은 바다 속이 꼭 이럴 거라는 상상을 하며. 오늘밤
이 외국인은 어느 쪽으로 머리를 둘까,
어젯 밤 집에 안부전화한 것을 빼고는 며칠째 한국말을
한 마디도 쓰지 못하고 오늘은 종일 어느 시인의 시집에 빠져
그 시인과 놀았다. 수목원 같은 시집에서 그 시인과 내가
네 개의 말을 같이 사용하고 있는 것을 발견하고 더 친근해졌다.
문자는 살아있다! 작용을 한다. 시인에겐 무생물이 없다.
살아있는 모든 것에 마음을 빼앗긴다.
낮에 일면식도 없는 그 시인에게 용기를 내어 메일을 보내고,
그 시인이 들려준 <갈매기의 기도>를 여럿이 보겠다고
말해 두었다. 그 맑은 시인을 보고 싶은 저녁, 시향에 취해
모처럼 쓸쓸하지 않을 밤이다. 이번에 집에 가면 아담한
한글사전과 질좋은 샤프펜슬을 하나 마련해야지...
/ 동산 (산문, Cebu 通信 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