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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곱 살과 일흔한 살 - 추사약전 秋史略傳 / 윤제림

작성자섬초롱| 작성시간26.06.22| 조회수0|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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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섬초롱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26.06.22 new 어느 입춘날, 일곱 살 아이가 대문에 붙일 입춘첩을 썼는데, 그 글이 아주 훌륭해서 사람들이 놀랍니다. 지나가던 채제공도 “크게 될 아이”라고 칭찬하지요.
    그렇게 시간이 아주 많이 흘러, 그 일곱 살 아이는 칠십이 넘은 노인이 됩니다. 그리고 한 절에서 편액 글씨를 부탁해 ‘판전’이라고 써 주었는데, 이번에는 사람들이 그 글씨를 보고 “마치 일곱 살 아이 글씨 같다”고 말합니다.

    겉으로 보면 앞부분과 뒷부분이 비슷해 보여요.
    처음에는 “일곱 살인데도 대단하다”는 감탄이고,
    나중에는 “너무 어린애 글씨 같다”는 평가처럼 들립니다.

    그런데 시인은 여기서 단순히 사람들의 평가를 옮기는 데서 끝나지 않아요.
    오히려 진짜 뛰어난 경지에 이른 예술은 화려한 기교를 넘어 다시 천진하고 자연스러운 자리로 돌아간다고 말하는 것에 가깝습니다.
    즉, 노년의 추사 글씨가 어린아이 글씨 같다는 말은 부족하다는 뜻이 아니라, 오랜 세월과 고통을 지나 가장 본질적이고 순한 자리로 돌아간 글씨라는 뜻으로 읽을 수 있어요.

    마지막 연은 특히 중요합니다.
    시인은 편액 뒤에 이런 보이지 않는 말이 적혀 있을 것 같다고 상상합니다.

  • 작성자 섬초롱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26.06.22 new 늙고 병든 몸이라 힘겹게 썼고,
    저녁 무렵 집으로 돌아가는 사람처럼 마음도 여려져서,
    겨우 일곱 살 아이 같은 기운을 모아 급히 썼으니,
    나중에 다시 와서 새로 써 주겠노라고요.

    이 상상 속 말은 추사의 겸손함, 늙음의 쓸쓸함, 몸의 쇠약함, 그리고 그럼에도 남아 있는 순수한 생명의 기운을 함께 보여줍니다.

    이 시의 핵심 뜻을 한 문장으로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사람은 늙어가면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긴 시간을 지나 다시 어린아이 같은 순수하고 본질적인 자리로 돌아가며, 위대한 예술도 결국 그런 자리에서 나온다.

    조금 더 풀어서 말하면, 이 시는
    “일곱 살의 천재성”과 “일흔한 살의 원숙함”이 서로 반대가 아니라 한 원처럼 이어져 있다는 것을 말하고 있어요.
    처음의 ‘아이 같음’은 미숙함일 수 있지만, 마지막의 ‘아이 같음’은 수많은 시간을 통과한 뒤 얻은 가장 깊은 경지인 셈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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