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진강
장희한
들판도 남실남실 강물도 남실남실 흐르는 섬진강
물길 건너 전라도 땅
자불자불 인심도 좋아라
닷새 건너 찾아드는 화개장터
물신한 사투리에 들리는 귀는
사돈에 팔촌도 그리 가깝다네
산마루 피는 노을은
어진 님 가슴에 피는 맘일까
구름일 듯 구름일 듯 피는 매화꽃
내마음 가지에 피는 꽃이라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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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빗새 작성시간 26.06.21 강물에 실린 인심과 그리움의 미학
― 장희한의 「섬진강」 평론
장희한의 「섬진강」은 남도의 대표적 공간인 섬진강을 배경으로 자연과 사람, 정서와 풍속이 하나로 어우러진 세계를 담아낸 서정시다. 이 작품은 거창한 수사나 복잡한 상징을 사용하지 않으면서도 섬진강 유역의 넉넉한 인심과 아름다운 풍광, 그리고 그 속에 스민 인간적 그리움을 담담하게 그려낸다. 무엇보다도 이 시는 자연 풍경의 묘사에 머물지 않고, 그 풍경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과 정서를 함께 노래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깊다.
시의 첫 연은 섬진강의 풍경을 부드러운 리듬으로 펼쳐 보인다.
들판도 남실남실 강물도 남실남실 흐르는 섬진강
물길 건너 전라도 땅
자불자불 인심도 좋아라
여기서 "남실남실"과 "자불자불"이라는 토속적 의성·의태어는 시 전체의 정서를 결정한다. 강물의 흐름만이 아니라 사람들의 인심까지도 물결처럼 부드럽고 넉넉하게 흐른다. 자연과 인간의 정서가 하나의 결로 연결되는 것이다. 특히 "인심도 좋아라"라는 표현은 단순한 풍경 묘사를 넘어 남도 사람들의 삶의 태도를 드러낸다. -
작성자빗새 작성시간 26.06.21 둘째 연에서는 공간적 배경이 더욱 구체화된다.
닷새 건너 찾아드는 화개장터
물신한 사투리에 들리는 귀는
사돈에 팔촌도 그리 가깝다네
여기서 등장하는 화개장터는 단순한 시장이 아니다. 오랫동안 영호남 사람들이 만나고 물자를 나누며 정을 쌓아온 문화적 공간이다. "물신한 사투리"라는 표현은 지역 언어의 정겨움을 잘 살려낸다. 서로 다른 고장에서 온 사람들이지만, 장터에서는 모두 한 식구처럼 가까워진다. 이는 섬진강이 단순한 경계가 아니라 사람들을 이어주는 통로임을 보여준다. -
작성자빗새 작성시간 26.06.21 셋째 연에 이르면 시는 풍경에서 정서로 이동한다.
산마루 피는 노을은
어진 님 가슴에 피는 맘일까
노을은 더 이상 자연현상이 아니다. 화자의 마음속 그리움과 사랑의 정서가 투영된 이미지로 변한다. "어진 님"이라는 표현에는 존경과 애정이 함께 담겨 있다. 노을빛으로 물드는 산마루는 결국 사랑하는 이를 향한 마음의 색깔이 된다. -
작성자빗새 작성시간 26.06.21 마지막 연은 이 시의 절정이다.
구름일 듯 구름일 듯 피는 매화꽃
내마음 가지에 피는 꽃이라네
매화는 예부터 절개와 기다림, 순수한 사랑을 상징해 왔다. 그런데 시인은 매화를 단순히 바라보지 않는다. 그것을 "내마음 가지에 피는 꽃"이라고 말한다. 자연의 꽃이 곧 마음의 꽃이 되는 순간이다. 외부 풍경과 내면 풍경이 완전히 하나로 합쳐지는 장면이라 할 수 있다.
이 작품의 가장 큰 미덕은 꾸밈없는 언어다. "남실남실", "자불자불", "물신한"과 같은 토속어들은 섬진강 유역 특유의 정서를 생생하게 전달한다. 이러한 언어들은 시를 단순한 자연예찬이 아니라 삶의 체온이 살아 있는 시로 만든다. -
작성자빗새 작성시간 26.06.21 또한 이 시는 공간의 시이면서도 관계의 시다. 강물은 흐르고, 장터는 사람들을 이어주며, 노을과 매화는 사랑과 그리움을 불러낸다. 결국 섬진강은 단순한 강이 아니라 사람과 사람, 자연과 인간, 현재와 추억을 연결하는 정서의 강으로 형상화된다.
장희한의 「섬진강」은 화려한 기교보다 삶의 온기를 선택한 작품이다. 강물처럼 유장하게 흐르는 언어 속에서 독자는 남도의 풍경뿐 아니라 그 풍경을 닮은 사람들의 넉넉한 마음을 만나게 된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매화꽃 한 송이가 피어나듯, 독자의 마음에도 잔잔한 그리움과 따뜻한 정감이 피어난다.
이 시는 결국 섬진강을 노래하는 시인 동시에, 사람 냄새 나는 세상을 그리워하는 마음의 노래라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