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덤 사이에서
박형준
내가 들판의 꽃을 찾으러 나갔을 때는
첫서리가 내렸고, 아직 인간의 언어를 몰랐을 때였다.
추수 끝난 들녘의 목울음이
하늘에서 먼 기러기의 항해로 이어지고 있었고
서리에 얼어붙은 이삭들 그늘 밑에서
별 가득한 하늘 풍경보다 더 반짝이는 경이가
상처에 찔리며 부드러운 잠을 자고 있었다.
나는 거기서 내가 날려 보낸 생의 화살들을 줍곤 했었다.
내가 인간의 언어를 몰랐을 때
영혼의 풍경들은 심연조차도 푸르게 살아서
우물의 지하수에 떠 있는 별빛 같았다.
청춘의 불빛들로 이루어진 은하수를 건지러
자주 우물 밑바닥으로 내려가곤 하였다.
겨울이 되면, 얼어붙은 우물의 얼음 속으로 내려갈수록 피는 뜨거워졌다.
땅 속 깊은 어둠 속에서 뿌리들이
잠에서 깨어나듯이, 얼음 속의 피는
신성함의 꽃다발을 엮을 정신의 꽃씨들로 실핏줄과 같이 흘렀다.
지금 나는 그 징표를 찾기 위해
벌거벗은 들판을 걷고 있다.
논과 밭 사이에 있는 우리나라 무덤들은 매혹적이다.
죽음을 격리시키고 싶지 않고 삶을 껴안고 있기에,
둥글고 따스하게 노동에 지친 사람들의 영혼을 껴안고 있다.
그렇기에 우리니라 봉분들은 밥그릇을 닮았다.
조상들은 죽어서 산사람들은 먹여 살립 밥을 한상 차려놓은 것인가.
내가 찾아 헤매다니는 꽃과 같이 무덤이 있는 들녘,
산 자와 죽은 자가 연결되어 있는
밥공기와 같은 삶의 정신,
푸르고 푸른 무덤이 저 들판에 나 있다.
찬 서리가 내릴수록 그 속에서 잎사귀들이 더 푸르듯이,
내가 아직 인간의 언어를 몰랐을 때 나를 감싸던 신성함이
밭 가운데 숨 쉬고 있다.
어린아이들 부산을 떨며 물가와 같은 기슭에서 놀고
농부들이 밭에서 일하다가 새참을 먹으며
죽은 조상들과 후손의 이야기를 나누던 저 무덤,
그들과 같이 노래하고 탄식하던 그 자취를 따라
내 생이 제 스스로를 삼키는 이 심연 속으로 천천히 걸어 내려간다.
겨울이 되면, 저 밭가의 무덤 사이에 누워
봉분들 사이로 얼마나 밝은 잠이 흘러가는지
아늑한 그 추위들을 엮어 정신의 꽃다발을
무한한 죽음에 바치리라.
나는 심연들을 환하게 밝히는 한순간의; 정적 속에서
수많은 아직 어린아이였을 때 내려다보던 지하수의 푸른빛을,
추위 속에서 딴딴해진 그 꽃을 캐서
나는 집으로 돌아가리라.
- 월간 『문학사상』 2009년 2월호
2009년 제2회 ‘웹진 시인광장’ 선정 ‘올해의 좋은 시’ 賞 수상시
박형준
1966년 전북 정읍에서 출생. 1991년 〈한국일보〉 신춘문예로 등단. 시집으로 『물속싸지 잎사귀가 피어 있다』 외 다수 있음. 2009년 소월시문학상 대상 등을 수상
죽음의 밥그릇과 신성의 원형성
― 박형준 「무덤 사이에서」론
박형준의 「무덤 사이에서」는 죽음을 삶의 반대편에 놓지 않는다. 오히려 죽음은 삶의 가장 깊은 근원이며, 인간 존재를 떠받치는 보이지 않는 토양으로 제시된다. 이 시는 현대 도시문명이 잃어버린 원형적 세계관을 복원하려는 시인의 의지가 강하게 드러나는 작품이다. 특히 ‘무덤’을 단순한 매장 공간이 아니라 삶을 지속시키는 생명의 저장고로 재해석한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시는 “내가 인간의 언어를 몰랐을 때”라는 반복적 진술로 시작된다. 여기서 인간의 언어란 단순한 의사소통 수단이 아니라 사회적 규범과 관습이 만들어낸 세계 인식 체계를 의미한다. 따라서 언어 이전의 상태는 문명 이전의 원초적 감각, 존재의 근원적 직관이 살아 있는 상태라고 볼 수 있다. 화자는 그 시절의 기억을 통해 들판과 우물, 별빛과 서리 속에서 신성한 기운을 발견한다.
흥미로운 점은 시 속의 공간 구조이다. 일반적으로 상승의 이미지는 하늘과 별에 부여되지만, 이 시에서는 오히려 하강의 운동이 중요하게 작동한다. 화자는 “우물 밑바닥으로 내려가곤 하였다”고 말한다. 별빛은 하늘이 아니라 우물 속에 떠 있으며, 신성은 초월적 공간이 아니라 땅속 깊은 심연에 존재한다. 이는 박형준 시의 특징적인 역전 구조라 할 수 있다. 시인은 인간 정신의 본질이 위가 아니라 아래에 있다고 믿는다. 심연으로의 하강은 곧 자기 존재의 근원을 향한 탐색이 된다.
이러한 하강의 상상력은 무덤의 이미지에서 절정에 이른다. 특히 다음 구절은 이 시의 핵심적 성취라 할 만하다.
“그렇기에 우리나라 봉분들은 밥그릇을 닮았다.”
한국 현대시에서 무덤은 대개 상실과 애도의 공간으로 등장해 왔다. 그러나 박형준은 무덤을 ‘밥그릇’으로 바라본다. 죽은 조상들이 땅속에서 후손을 먹여 살리는 존재라는 인식은 매우 한국적인 농경문화의 정신세계를 반영한다. 봉분의 둥근 형태를 밥공기에 비유하는 순간, 죽음은 두려움의 대상이 아니라 생명을 공급하는 어머니의 자궁처럼 변모한다. 이 비유는 시 전체를 관통하는 생명 순환의 사상을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또한 시는 산 자와 죽은 자의 경계를 해체한다. 무덤은 마을 밖 공동묘지에 고립되어 있지 않다. 논과 밭 사이에 자리 잡고 있으며, 아이들이 뛰노는 장소와 농부들이 새참을 먹는 장소 가까이에 있다. 이는 한국 전통 농촌 공간의 특징이기도 하다. 죽은 자들은 여전히 공동체 안에서 살아가는 존재이며, 후손들과 함께 계절을 경험한다. 시인은 이러한 풍경을 통해 죽음의 일상성을 복원하고 있다.
그러나 이 작품이 완벽한 것은 아니다. 시의 후반부로 갈수록 ‘신성함’, ‘심연’, ‘정신의 꽃다발’, ‘정신의 꽃씨’와 같은 추상 명사가 빈번하게 등장한다. 초기의 우물과 별빛, 서리와 들판이 지닌 구체적 감각은 점차 관념적 언어에 의해 희석된다. 특히 “신성함의 꽃다발을 엮을 정신의 꽃씨들”과 같은 표현은 이미지의 명료성을 떨어뜨리며 독자의 상상력을 오히려 제한하는 측면이 있다.
이러한 경향은 박형준 시의 오래된 특징이기도 하다. 그는 뛰어난 이미지스트인 동시에 강한 형이상학적 지향을 가진 시인이다. 문제는 이미지가 스스로 의미를 생성하기보다 관념을 설명하는 방향으로 기울어질 때 발생한다. 이 작품 역시 중반 이후에는 시적 긴장보다 철학적 명제가 전면에 나서는 아쉬움이 있다.
그럼에도 「무덤 사이에서」가 보여주는 세계 인식은 독창적이다. 현대 사회는 죽음을 병원과 장례시설 속으로 밀어 넣으며 삶과 분리하려 한다. 그러나 이 시는 죽음을 삶의 내부로 다시 불러들인다. 무덤은 밥그릇이 되고, 조상은 들녘의 바람이 되며, 죽음은 생명을 길러내는 토양이 된다. 결국 시인이 찾아 헤매는 꽃은 들판 어디엔가 존재하는 식물이 아니라, 생과 사가 하나로 이어져 있다는 존재의 근원적 진실일 것이다.
「무덤 사이에서」는 죽음을 통해 삶을 말하는 시이며, 삶을 통해 죽음을 복원하는 시이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봉분을 밥그릇으로 바라보는 한국적 상상력의 아름다운 발견이 놓여 있다. 이 작품은 현대시가 잃어버린 공동체적 기억과 원형적 생명관을 다시 호출한다는 점에서 여전히 의미 있는 성취로 평가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