껍질과 내면의 전도(顚倒), 존재의 기원을 삼키는 행위 ― 강기원 「굴」론

작성자빗새|작성시간26.06.07|조회수478 목록 댓글 0

                               강기원(1958 서울출생)

 

딱딱하고 어두운 동굴 속에서

이제 막 나온 동굴주의자

욕을 모르는 혀처럼 부드러운 너를

오래 다문 내 혓바닥 위에 올려본다

나 또한 고집스러운 동굴주의자이니

나를 맛보듯 너를 맛보련다

달큰하고 비린 젖내

태곳적 양수의 맛

더 거슬러 아비의 깊은 체취

너는 메마른 나의 미로를 섬세히 건드린다

바다의 살점을 입에 물고

바늘 돋친 내 혀를 가만히 대는 동안

씹을 것도 없는 너는

목젖을 타고 미끄러져 들어간다

칙칙하던 내가 바다 향기로 환해진다

너와 나는 닮기도 다르기도 하다

뼈를 밖으로 살을 안으로 한 너와

물컹한 살 속에 딱딱한 뼈를 감춘 나는

누가 더 수줍은 것이냐

너의 타액처럼 끈적이며 산뜻하기란

쉽지 않은 일

말 없는 바다의 혓바닥 같은

너를 삼키고 나는 대양을 품는다

아가미로 숨쉬는 바다의 계절이 된다

감은 속눈썹 끝에

긴 수평선이 걸린다

 

계간 「시평」 2008년 봄호

 


껍질과 내면의 전도(顚倒), 존재의 기원을 삼키는 행위

강기원

 

 

강기원의 은 한 편의 음식시로 읽힐 수도 있지만, 실제로는 음식이라는 구체적 사물을 매개로 인간 존재의 기원과 육체성, 그리고 자기인식의 문제를 탐문하는 철학적 서정시이다. 시인은 단순히 굴을 먹는 행위를 묘사하지 않는다. 그는 굴을 입안에 넣는 순간을 통해 인간이 자신의 근원과 대면하는 원초적 경험을 형상화한다.

이 시가 흥미로운 이유는 대상인 ‘굴’이 더 이상 식재료가 아니라는 점이다. 굴은 타자이면서 동시에 자아의 거울이며, 생명의 기원을 환기하는 매개체가 된다.

 

 

1. 굴은 음식이 아니라 존재의 은유다

 

시의 첫 구절은 매우 인상적이다.

딱딱하고 어두운 동굴 속에서

이제 막 나온 동굴주의자

굴의 껍질을 단순히 조개껍데기로 보지 않고 "동굴"로 인식하는 순간, 시는 현실적 차원을 벗어나 상징의 영역으로 진입한다.

동굴은 인류 문화사에서 매우 오래된 원형(archetype)이다.

플라톤의 동굴의 비유에서 동굴은 무지와 인식 이전의 세계를 의미한다.

또한 동굴은 인간이 태어나기 이전의 자궁을 상징하기도 한다.

따라서 굴은 단순한 해산물이 아니라

자궁

원초적 생명

존재 이전의 상태

를 함축하는 상징체가 된다.

"이제 막 나온 동굴주의자"라는 표현은 굴에게만 적용되지 않는다.

사실상 인간 역시 모두 자궁이라는 동굴에서 나온 존재다.

시인은 굴을 묘사하는 척하면서 인간의 탄생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2. 먹는 행위가 아니라 교감의 의식(儀式)

 

이 시의 가장 뛰어난 성취는 먹는 행위를 감각적 소비가 아닌 존재적 교감으로 전환한 데 있다.

욕을 모르는 혀처럼 부드러운 너를

오래 다문 내 혓바닥 위에 올려본다

보통 음식시는 씹고 삼키는 행위에 집중한다.

그러나 강기원은 혀 위에 굴을 "올려본다".

이것은 식욕의 동작이 아니라 관찰과 성찰의 동작이다.

더욱 흥미로운 것은

나 또한 고집스러운 동굴주의자이니

나를 맛보듯 너를 맛보련다

라는 대목이다.

여기서 화자와 굴은 주체와 객체의 관계가 아니다.

굴을 맛보는 것이 아니라

"나를 맛보듯"

굴을 맛본다.

즉 굴은 타자가 아니라 또 다른 자아다.

이 순간 시는 음식시를 넘어 자아인식의 시가 된다.

 

 

3. 양수와 아비의 체취 생명의 계보를 거슬러 가다

 

시의 중반부는 놀라울 정도로 원초적이다.

달큰하고 비린 젖내

태곳적 양수의 맛

더 거슬러 아비의 깊은 체취

특히 "아비의 깊은 체취"라는 표현은 독특하다.

대부분의 탄생 서사는 어머니에게 귀착된다.

그러나 시인은 양수를 지나 더 이전으로 간다.

아버지의 체취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이는 생명이 단순한 개인의 탄생이 아니라

세대와 세대를 연결하는 유전적 계보라는 사실을 암시한다.

굴 한 점이

젖내

양수

아버지의 체취

를 불러내는 것은 기억의 문제가 아니다.

생명 그 자체의 원형기억을 건드리는 것이다.

 

 

4. 껍질과 살의 전복

 

이 시의 핵심은 후반부에 등장한다.

뼈를 밖으로 살을 안으로 한 너와

물컹한 살 속에 딱딱한 뼈를 감춘 나는

이 구절은 이 시 전체를 지탱하는 구조적 중심축이다.

굴은 껍질이 밖에 있다.

인간은 뼈가 안에 있다.

겉과 속이 완전히 뒤집혀 있다.

시인은 이 차이를 통해 존재의 구조를 사유한다.

우리는 흔히 인간을 완성된 존재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시인은 묻는다.

누가 더 수줍은 것이냐

이 질문은 사실상 존재론적 질문이다.

껍질을 밖으로 드러내는 굴이 더 솔직한가.

아니면 속에 단단한 뼈를 숨긴 인간이 더 은폐적인가.

이 질문에는 현대인의 위선과 자기방어를 향한 은근한 비판도 숨어 있다.

 

 

5. 삼킴을 통한 변신(變身)

 

후반부에서 굴은 드디어 삼켜진다.

말 없는 바다의 혓바닥 같은

너를 삼키고 나는 대양을 품는다

여기서 굴은 더 이상 음식이 아니다.

일종의 성물(聖物)이다.

굴을 먹는 것은 바다를 먹는 것이다.

더 나아가 바다와 하나가 되는 일이다.

이어지는 구절은 압권이다.

아가미로 숨쉬는 바다의 계절이 된다

이 대목에서 화자는 인간성을 잠시 벗어난다.

인간의 폐호흡이 아니라

물고기의 아가미 호흡으로 전환된다.

이는 단순한 상상이 아니다.

존재의 변신이다.

시인은 굴을 먹는 행위를 통해

인간이 다시 바다로 귀환하는 신화적 순간을 창조한다.

 

 

6. 마지막 이미지의 아름다움

 

시의 결말은 매우 서정적이다.

감은 속눈썹 끝에

긴 수평선이 걸린다

이 수평선은 단순한 풍경이 아니다.

바다를 품은 사람의 내면에 생겨난 정신적 지평선이다.

굴을 삼키기 전의 화자는

"칙칙하던 나"였다.

그러나 굴을 삼킨 후

그의 내면에는 대양이 들어와 있다.

마지막 수평선은

존재가 확장된 결과이며

생명의 기원을 다시 품게 된 인간의 새로운 시야를 상징한다.

 

 

평가

강기원의 「굴」은 음식시의 외형을 취하고 있지만 본질적으로는 존재론적 서정시이다.

이 시의 미덕은 굴이라는 매우 일상적인 사물을 통해

탄생

육체

기억

생명의 계보

존재의 구조

자아와 타자의 동일성

이라는 거대한 주제를 끌어낸 데 있다.

특히 "뼈를 밖으로 살을 안으로 한 너"와 "물컹한 살 속에 딱딱한 뼈를 감춘 나"라는 대조는 한국 현대시에서 보기 드문 육체철학의 성취라고 평가할 만하다.

 

다만 중반부의 "아비의 깊은 체취"는 다소 설명적이고 상징의 여백을 줄이는 측면이 있으며, 일부 독자에게는 의미의 비약으로 읽힐 가능성도 있다. 또한 후반부의 "대양을 품는다", "아가미로 숨쉬는 바다의 계절"은 이미지의 확장력이 크지만 다소 낭만주의적 상승으로 흘러 긴장감을 완화시키는 면도 있다.

 

그럼에도 「굴」은 사물의 표면을 묘사하는 데 머물지 않고, 그 사물을 통해 인간 존재의 가장 오래된 기억을 호출하는 데 성공한 작품이다. 굴 한 점 속에서 바다를 발견하고, 바다 속에서 인간의 기원을 발견한 시. 그것이 강기원의 「굴」이 지닌 가장 깊은 시적 성취라 할 수 있다.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댓글

댓글 리스트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