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다로의 연인들 / 강인한
독화살아 심장을 파고들어 마침내 숨을 끊은
콸콸 더운 피를 끄집어낸 곳, 여기쯤인가 부러진 뼈 한 도막
몇 날 몇 밤의 증오를 순순히 받아들인 곳
피는 굳고, 벌들이 찾더 꽃향기는 언제 희미해진 것일까
부릅뜬 눈으로 빨아들인 마지막 빛으
사랑하는 이여 당신의 눈, 햇빛보다 부신 웃음이었다
껴안은 팔에서 부서져 내리는 허무한 흙덩이
잘 가라, 우리들 포옹 아래로 흘러가는 시간이여
눈보다 희고 부드러운 시간들이여
꿀처럼 달고 보드라운 당신의 입술은
아름다운 노래를 버리고 어디로 갔나 만토바의 하늘을 스치는
한 덩이 구름, 한 줄기 놀빛으로 산을 넘어
서늘한 밤의 대기가 되고
내 온몸을 거울처럼 담아 빛나던 당신의 눈은
벌써 여름밤 별자리로 찾아가 말게 빛나고 있거니
부패라는 것, 오 망각이란
가시 많은 사람살이에 얼마나 고마운 벗일 것인지
오랜 망설임 끝에 다가서서
한 점 한 점 불타는 기쁨으로 땀흘리던 육체는
기꺼이 벌레의 밥이 되고 다시 흩어져 희미한 슬픔으로
흐르다 올리브나무 수액이 되고, 더러는 바람에
무심한 바람에 팔랑이는 올리브나무 잎새가 되었다
잠도 천 년, 다시 또 몇 천 년이 꿈결 같았다
무서운 살육의 전설도 기억에서 지워지고
수많은 파란이 지나고 난 뒤
문득 깨어난 아침이 웬일인가 조금도 낯설지 않았다
침묵으로 말하노니
손대지 마라, 우리들 기나긴 사라의 포옹을
비가 오고 눈이 오는 곳, 빗발치는 편견을 법으로 세우는 곳이라면
우리 이대로 다시 몇 천 년이라도 견디고 견딜 것이니.
죽음을 사랑의 완성으로 전환하는 상상력
강인한의 「발다로의 연인들」 평론
강인한의 「발다로의 연인들」은 단순한 연애시도, 단순한 역사시도 아니다. 이 작품은 선사시대 유골로 발견된 실재의 ‘발다로의 연인들(Lovers of Valdaro)’을 소재로 하여, 죽음과 사랑, 기억과 망각, 육체와 시간을 동시에 사유하는 존재론적 서정시이다. 그러나 이 시의 성취는 단순히 유명한 고고학적 사건을 시적 소재로 차용한 데 있지 않다. 오히려 죽음 이후에도 지속되는 사랑의 형식을 통해 인간 존재의 궁극적인 운명을 탐색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죽음을 사랑의 완성으로 전환하는 상상력
시는 처음부터 죽음의 장면으로 시작한다.
독화살아 심장을 파고들어 마침내 숨을 끊은
콸콸 더운 피를 끄집어낸 곳
여기서 시적 화자는 이미 죽은 자이다. 독화살은 단순한 살해 도구가 아니라 사랑을 역사로 바꾸는 운명의 장치로 작동한다. 중요한 것은 시인이 죽음의 원인을 밝히려 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독화살이 누구의 것인지, 왜 죽음에 이르렀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관심의 초점은 죽음 이후에도 끊어지지 않는 관계에 있다.
이 지점에서 이 시는 사랑의 감정을 노래하는 서정시가 아니라, 사랑의 지속성을 탐구하는 형이상학적 서정시로 확장된다.
육체의 소멸과 기억의 잔존
둘째 연에서 시는 놀라운 전환을 보여준다.
사랑하는 이여 당신의 눈, 햇빛보다 부신 웃음이었다
죽음의 현장이 갑자기 사랑의 회상으로 변한다.
독화살과 부러진 뼈가 등장하던 세계는 어느 순간 웃음과 빛의 세계로 이동한다.
이러한 대비는 매우 효과적이다.
죽음이 육체를 파괴할 수는 있지만 기억까지 지울 수는 없다는 사실을 시는 보여준다.
특히
잘 가라, 우리들 포옹 아래로 흘러가는 시간이여
라는 구절은 인상적이다.
보통 시간은 인간을 흘려보내지만 여기서는 오히려 시간이 포옹 아래로 흘러간다.
이는 사랑이 시간을 초월한다는 역설적 표현이다.
시간이 사랑을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이 시간을 관조하는 위치에 놓인다.
별자리로 승화되는 존재
셋째 연은 이 시에서 가장 아름다운 부분 가운데 하나이다.
당신의 눈은
벌써 여름밤 별자리로 찾아가 말게 빛나고 있거니
여기서 육체는 해체되지만 존재는 우주적 차원으로 확장된다.
별자리는 죽은 자가 도달한 공간인 동시에 영원의 상징이다.
고대부터 별은 인간이 도달할 수 없는 영원의 세계를 의미했다.
따라서 이 구절은 단순한 비유가 아니라 존재의 승화를 의미한다.
다만 여기서 약간의 아쉬움도 발견된다.
"구름", "노을빛", "별자리" 등의 이미지가 지나치게 낭만주의적 방향으로 집중되면서 시의 긴장이 다소 느슨해지는 측면이 있다.
앞선 연에서 구축된 죽음의 물질성과 대비될 만큼 강렬한 새 이미지가 등장하지 못한다는 점은 아쉬운 부분이다.
망각에 대한 독창적 인식
이 작품의 백미는 네 번째 연이다.
부패라는 것, 오 망각이란
가시 많은 사람살이에 얼마나 고마운 벗일 것인지
보통 시에서 망각은 부정적으로 그려진다.
그러나 시인은 망각을 "고마운 벗"이라고 말한다.
이 인식은 매우 성숙하다.
인간은 기억 때문에 살아가지만 동시에 기억 때문에 고통받는다.
증오와 상처와 비극을 영원히 기억한다면 삶은 지속될 수 없다.
따라서 망각은 상실이 아니라 치유의 방식이 된다.
이 부분은 독일 철학자 니체가 말한 "능동적 망각"과도 연결된다.
망각은 기억의 실패가 아니라 삶을 지속시키는 생명의 기술인 것이다.
생태적 순환으로 확장되는 사랑
이어지는 구절은 더욱 흥미롭다.
벌레의 밥이 되고
다시 흩어져 희미한 슬픔으로
흐르다 올리브나무 수액이 되고
여기서 육체는 자연의 일부가 된다.
죽음은 끝이 아니다.
육체는 흙이 되고 나무가 되고 바람이 된다.
이러한 세계관은 기독교적 부활 개념보다 훨씬 자연주의적이다.
죽은 자는 천국으로 가는 것이 아니라 자연 속으로 환원된다.
그러므로 사랑 또한 인간만의 감정이 아니라 우주의 순환 안으로 편입된다.
이 대목은 최근 생태시가 지향하는 생명순환적 상상력과도 맞닿아 있다.
마지막 연의 정치적 함의
마지막 부분은 뜻밖의 방향으로 나아간다.
비가 오고 눈이 오는 곳,
빗발치는 편견을 법으로 세우는 곳이라면
이 구절은 단순한 사랑의 시를 사회적 차원으로 확장시킨다.
발다로의 연인들이 남녀인지 동성인지에 대한 논란이 국제적으로 존재해왔다는 사실을 떠올리면 더욱 의미심장하다.
시인은 죽은 연인들의 포옹을 통해 인간이 만든 편견의 세계를 비판한다.
사랑은 자연의 질서인데 편견은 인간의 질서라는 것이다.
결국
우리 이대로 다시 몇 천 년이라도 견디고 견딜 것이니
라는 선언은 사랑의 승리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의 저항을 말한다.
이 작품은 사랑의 서정시이면서 동시에 편견에 맞서는 윤리적 선언문으로 읽힌다.
종합 평가
「발다로의 연인들」은 선사시대 유골이라는 독특한 소재를 통해 사랑과 죽음, 기억과 망각, 육체와 자연, 그리고 편견과 저항이라는 거대한 주제를 하나의 시적 흐름 속에 통합한 수작이다.
특히 "망각을 고마운 벗으로 바라보는 시선", "육체가 올리브나무 수액으로 변하는 생태적 상상력", "시간을 포옹 아래로 흘려보내는 역전된 시간관"은 이 시가 가진 중요한 미학적 성취라 할 수 있다.
반면 중반부의 낭만적 이미지들은 다소 관습적인 표현에 기대어 긴장을 떨어뜨리는 면이 있으며, 마지막 연의 사회적 메시지가 조금 더 은유적으로 처리되었다면 시의 여운은 더욱 깊어졌을 것이다.
그럼에도 이 작품은 사랑을 감정의 문제가 아니라 존재의 문제로 끌어올린다는 점에서 높은 평가를 받을 만하다. 사랑은 육체가 아니라 시간보다 오래 지속되는 관계라는 사실을, 발다로의 연인들은 침묵으로 증언하고 있다.
그 침묵은 시의 마지막 구절처럼, 몇 천 년을 건너 우리에게 도착한 가장 오래된 사랑의 언어인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