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쌉쌀한 어둠
곽은영
어둡고 축축한 물 같은 나의 짝패
춥지 않으면 겨울이 아니듯
나는 나의 웃음을 의심했다
당신을 위해 그렸던 워킹셔츠의 밤
갓 태어난 이파리 같은 싱싱하고 비밀스런 눈의 언어
치장할 줄 모르는 혀가 당신,
이라고 불렀을 때 입을 벌려 혀끝으로 음미하게 하는
당신의 파동,
우리는 세상에서 더러운 관계가 되었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그냥 정직하게, 더러운 관계
나는 당신의 엄마이고 누이이고 연인이자 친구
당신은 그러므로 나의 사랑스러운 검정
보라와 핑크와 블루의 벽을 핥아 뱉어낸 순도 높은 감정
그러나 엉망인 관계, 항문 속까지 알만큼 우리는 정직했으나
잔혹하고 슬픈 나의 짝패
어둡지 않으면 옷을 벗지 않듯
나는 나의 침묵을 의심했다
넓은 잎에 두껍게 포개진 먼지 같은 감정
당신이 콧수염을 붙이고 아버지 놀이를 했다면
이마를 깨는 돌멩이 같은 비웃음을 받진 않았겠지
그러나 깨끗한 관계, 그런 것이 있기나 할까
오래된 법전을 뒤적여도 페이지를 넘기는 것은 우리의 손
우리의 그림자는 한 덩어리 절름발이
같은 피를 발자국 도장으로 찍으며 걸어가는 중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그냥 정직하게
- 시집 「검은 고양이 흰개』 (랜덤하우스코리아, 2008)
▶ 곽은영(1975년 전남 광주에서 출생)
2006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개기월식>으로 등단. 시집으로 검은 고양이 횐개가 있음.
어둠의 공모와 정직한 타락
― 곽은영 「달콤쌉쌀한 어둠」 읽기
곽은영의 「달콤쌉쌀한 어둠」은 사랑을 노래하는 시가 아니다. 더 정확히 말하면, 사랑이 사회적으로 승인받기 위해 뒤집어쓴 가면을 벗겨낸 뒤, 그 내부에 남아 있는 가장 원초적인 감정의 형상을 응시하는 시다. 이 작품은 관계를 미화하지 않는다. 오히려 사랑이라는 이름 아래 숨겨진 욕망과 결핍, 의존과 상처, 그리고 그 모든 것의 불가분성을 정면으로 드러낸다.
시의 첫 구절인
"어둡고 축축한 물 같은 나의 짝패"
는 작품 전체를 지배하는 정서를 압축한다.
여기서 '짝패'는 연인도 친구도 가족도 아니다. 그것은 나와 동일한 결핍을 공유하는 존재이며, 서로의 상처를 알고 있는 공범이다. 시인은 사랑을 운명적 만남이나 구원의 서사로 그리지 않는다. 오히려 서로의 어둠을 알아보는 존재들의 동맹으로 제시한다.
"춥지 않으면 겨울이 아니듯 / 나는 나의 웃음을 의심했다"라는 구절은 특히 인상적이다.
겨울의 본질이 추위에 있듯이, 시인은 웃음의 이면에 숨어 있는 슬픔과 공허를 감지한다. 여기서 의심은 부정이 아니라 통찰이다. 웃음이 진실인지, 침묵이 진실인지 끊임없이 의문을 던지는 화자의 태도는 현대인의 정체성 자체가 얼마나 불안정한가를 보여준다.
이 작품에서 가장 주목해야 할 지점은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더러운 관계"라는 표현이다.
"우리는 세상에서 더러운 관계가 되었다"
이 구절은 도발적이다.
그러나 시인이 말하는 '더러움'은 윤리적 타락이나 육체적 욕망의 차원이 아니다. 그것은 사회가 규정한 정상성과 순수성에 대한 거부다. 인간관계는 본래 깨끗하지 않다. 사랑에는 소유욕이 섞이고, 우정에는 질투가 섞이며, 가족애에는 억압이 숨어 있다.
시인은 그것을 감추지 않는다.
오히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그냥 정직하게"
라고 말함으로써 관계의 불순물을 인정하는 용기를 보여준다.
이때 '정직하게'라는 부사는 시 전체의 윤리적 핵심이다.
곽은영은 사랑을 아름답게 포장하는 대신, 인간이 인간에게 기대고 상처 주고 의존하는 과정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다. 따라서 이 시의 정직함은 고백의 정직함이 아니라 존재론적 정직함이다.
시의 중반부는 관계의 경계를 해체하는 방식으로 전개된다.
"나는 당신의 엄마이고 누이이고 연인이자 친구"
이 구절은 관계의 사회적 명명을 무력화한다.
사람은 한 가지 역할만 수행하지 않는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우리는 때로 부모가 되고, 때로 형제가 되고, 때로 친구가 된다. 인간관계의 실체는 언제나 명칭보다 복합적이다.
이 대목에서 시인은 관계를 규정하는 언어의 한계를 폭로한다.
우리가 사용하는 '연인', '가족', '친구'라는 단어들은 실재를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실재를 단순화한다. 그러나 실제 관계는 그 모든 역할이 뒤섞인 혼합체다.
그래서 시는 끊임없이 경계를 무너뜨린다.
특히
"항문 속까지 알만큼 우리는 정직했으나"
라는 구절은 매우 강렬하다.
이 표현은 육체적 노출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존재의 가장 은밀하고 부끄러운 부분까지 서로 알고 있다는 뜻이다.
인간은 대개 자신의 상처를 숨긴다. 그러나 이 시의 화자와 대상은 서로의 내부를 너무 많이 본 존재들이다. 그래서 오히려 관계는 더 잔혹해진다.
상대를 깊이 안다는 것은 동시에 가장 정확하게 상처 입힐 수 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이 시에서 반복되는 '어둠'은 단순한 부정성이 아니다.
어둠은 오히려 진실이 드러나는 장소다.
"어둡지 않으면 옷을 벗지 않듯"
이라는 구절은 이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핵심 은유라 할 만하다.
빛 속에서는 누구나 가면을 쓴다.
그러나 어둠 속에서는 벗는다.
옷을 벗고, 역할을 벗고, 체면을 벗고, 결국 자기 자신과 마주한다.
따라서 이 시의 어둠은 숨김의 공간이 아니라 노출의 공간이다.
사람들이 빛을 진실의 상징으로 사용하는 동안, 곽은영은 역설적으로 어둠을 진실의 장소로 끌어온다.
이러한 전복은 작품의 마지막 부분에서 더욱 선명해진다.
"우리의 그림자는 한 덩어리 절름발이"
이 구절은 놀라운 이미지다.
그림자는 원래 각자의 몸을 따라 생긴다.
그러나 여기서는 하나의 덩어리가 되어 있다.
그것도 온전한 존재가 아니라 절름발이다.
사랑은 서로를 완성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의 결핍을 공유하는 과정이라는 사실을 이보다 더 정확하게 표현하기 어렵다.
우리는 흔히 사랑을 통해 완전해진다고 믿지만, 시인은 말한다.
아니다.
사랑은 두 개의 상처가 만나 하나의 더 큰 상처가 되는 일일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그들은 계속 걸어간다.
"같은 피를 발자국 도장으로 찍으며 걸어가는 중"
피는 상처의 흔적이면서 생명의 증거다.
상처 입은 존재들이 같은 피를 흘리며 걸어가는 모습은 인간 관계의 가장 본질적인 풍경을 보여준다.
결국 「달콤쌉쌀한 어둠」은 사랑의 시가 아니라 '정직함의 시'다.
곽은영은 순결한 사랑의 신화를 거부한다. 대신 인간관계가 본질적으로 모순되고 불완전하며 때로는 더럽고 잔혹하다는 사실을 인정한다. 그러나 그 인정 속에는 냉소가 없다.
오히려 깊은 연민이 있다.
왜냐하면 우리는 모두 어둡고 축축한 물 같은 존재들이며, 서로의 상처를 알아보는 짝패들이기 때문이다.
이 시가 아름다운 이유는 사랑을 찬양해서가 아니다.
사랑의 실패와 불순함마저 품은 채 끝까지 상대 곁을 걸어가려 하기 때문이다.
곽은영은 이 작품에서 인간관계의 가장 낮고 어두운 지층을 파고들어, 그곳에서 오히려 가장 순도 높은 정직함을 길어 올린다.
그 정직함이야말로 이 시가 가진 가장 달콤하고도 쌉쌀한 어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