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냥이가 되다 / 돌샘 이길옥
내 안에 승냥이 한 마리를 들였다.
누군가에 의지해야 안심이 되고
누군가의 힘을 빌어야 기가 사는 물컹이라
가장 사악한 놈으로 들였다.
세상이 시킨 일이다.
그놈의 성질이 워낙 포악해서
아무나 물어뜯고 늘어지는 일이 다반사여서
죽을 맛이다.
좀 참으면 될 것을
살짝 눈감으면 넘어갈 것을
삐딱하게 성질 세워 시시콜콜 시비를 걸고
행패를 부리는 통에 신경에 가시가 돋는다.
자업자득이다.
어쨌거나 내 안에서 자라는 승냥이 덕으로
두려움이 가소롭고
소심증의 뼈가 굵어지면서 서서히 사나워진다.
이때를 노려 승냥이가 가죽을 벗어주며
나더러 승냥이라 한다.
자기 안의 야성을 길들이는 역설
― 이길옥의 「승냥이가 되다」 평론
이길옥의 「승냥이가 되다」는 인간 내면의 약함과 강함, 순응과 저항, 자기혐오와 자기변신이 교차하는 흥미로운 우화적 서정시다. 이 작품은 단순히 포악한 본성을 비판하거나 공격성을 찬양하는 시가 아니다. 오히려 세상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스스로 내면에 들여놓은 '승냥이'를 통해 인간 존재가 어떻게 변화하고, 그 변화가 어떤 대가를 요구하는지를 탐색한다.
시의 첫 행은 매우 강렬하다.
"내 안에 승냥이 한 마리를 들였다."
여기서 승냥이는 실제 동물이 아니라 화자가 의도적으로 받아들인 또 하나의 자아다. 주목할 것은 "생겼다"가 아니라 "들였다"는 표현이다. 이는 우연히 형성된 성격이 아니라 생존을 위해 선택한 전략임을 암시한다. 화자는 자신을 "누군가에 의지해야 안심이 되고", "힘을 빌어야 기가 사는 물컹"이라고 규정한다. 이 표현은 스스로를 연약하고 무른 존재로 인식하는 자기고백이다.
그런데 시인은 이 연약함을 극복하기 위해 가장 극단적인 방법을 택한다.
"가장 사악한 놈으로 들였다.“
이 구절은 작품 전체의 긴장을 형성한다. 약함을 극복하기 위해 선택한 존재가 선량한 용기나 지혜가 아니라 "사악함"이라는 점에서 이 시는 도덕적 교훈을 거부한다. 현실은 때때로 선함만으로 버티기 어려운 곳이라는 냉혹한 인식이 깔려 있다.
이어지는 중반부에서 승냥이는 점점 구체적인 모습을 드러낸다.
"아무나 물어뜯고 늘어지는 일이 다반사"
"시시콜콜 시비를 걸고"
"행패를 부리는"
이 승냥이는 단순한 분노가 아니다. 오랫동안 억눌려 있던 자존감의 반작용이다. 늘 참고 양보하며 살아온 사람이 어느 순간 극단적인 공격성으로 치닫는 심리적 현상을 상징한다. 따라서 승냥이는 외부의 적이 아니라 내면 깊숙이 잠들어 있던 보복 본능이자 자기방어 기제다.
흥미로운 것은 화자가 그 승냥이를 달가워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죽을 맛이다."
"신경에 가시가 돋는다."
승냥이는 화자를 보호하지만 동시에 괴롭힌다. 이것은 인간 내면의 공격성이 지닌 양가성을 보여준다. 강해지기 위해 얻은 힘이지만, 그 힘은 결국 자신마저 갉아먹는다. 시인은 이를 통해 힘과 폭력의 경계가 얼마나 모호한가를 보여준다.
그러나 작품은 여기서 단순한 자기비판으로 끝나지 않는다.
"두려움이 가소롭고"
"소심증의 뼈가 굵어지면서"
이 부분에서 승냥이는 부정적 존재를 넘어 성장의 매개체로 변모한다. 화자는 승냥이를 통해 두려움을 극복하고 자신을 지키는 법을 배운다. 특히 "소심증의 뼈가 굵어진다"는 표현은 절묘하다. 소심함 자체가 사라진 것이 아니라, 소심함 속에서도 버틸 수 있는 힘이 생긴 것이다. 이는 단순한 성격 변화가 아니라 존재의 진화에 가깝다.
시의 백미는 마지막 연이다.
"이때를 노려 승냥이가 가죽을 벗어주며"
"나더러 승냥이라 한다."
이 결말은 매우 아이러니하다. 처음에는 화자가 승냥이를 들였는데, 마지막에는 승냥이가 화자를 승냥이로 만든다. 주체와 객체가 뒤바뀌는 것이다.
이 장면은 인간이 자신의 도구를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도구에 의해 변화되는 과정을 보여준다. 우리가 생존을 위해 만든 가면이 어느 순간 본래의 얼굴이 되는 현상, 처음에는 연기였던 태도가 결국 성격이 되는 현상과도 맞닿아 있다.
이 시의 미덕은 자기 성찰의 정직성에 있다. 화자는 자신의 공격성을 미화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완전히 부정하지도 않는다. 승냥이는 악이면서 동시에 생존의 힘이고, 고통이면서 동시에 성장의 원동력이다.
결국 「승냥이가 되다」는 현대인이 세상과 부딪히며 만들어가는 또 하나의 자아에 대한 이야기다. 지나친 순응이 자신을 지우는 일이라면, 지나친 공격성은 자신을 변질시키는 일이다. 이길옥은 그 미묘한 경계에서 인간 내면의 변신 과정을 우화적으로 형상화하며, "나는 과연 누구인가"라는 근원적인 질문을 던진다.
이 작품은 단순한 자기고백시를 넘어, 약자가 강해지는 과정에서 겪는 윤리적 갈등과 정체성의 변화를 날카롭게 포착한 수작이라 할 만하다. 승냥이는 결국 타인을 물어뜯는 짐승이 아니라, 세상에 상처받지 않기 위해 스스로 만들어낸 또 하나의 얼굴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