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 붙은 풀잎에 아픔이 운다 /황 주석
다 산 지푸라기 실바람 타고
병들어 겉만 마른 이파리 이리저리
나 뒹군다.
애벌레가 제 몸을 한입 두입 뜯어먹고
씹어 먹어도
두 눈 뜨고 잡아먹히는 잎새
손이 있어 발이 있어, 생각뿐인데
아무 말 못 하고 한 맺히게 붉은 피만
철철 흘린다
먹으려면 싹 먹어 치우든지
입 자국만 남기며 침을 처발라 댄다
사나 죽으나 떳떳지 못하게
누에처럼 실이라도 만들려나 쓰리고
아려도 참고 또 참았던 건만
풀잎 먹은 똥만 알알이 동그랗게
바람아 제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소름 돋는
세상에서
수천 길 낭떠러지에 한방의 아픔으로
끊어 내주오.
살 붙은 풀잎에 아픔이 울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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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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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빗새 작성시간 26.06.06 3. 설교적 어조가 만들어내는 긴장 약화
시 후반부는 점차 독백과 호소의 형식으로 변한다.
"먹으려면 싹 먹어 치우든지"
"바람아 제발!"
이 대목에서 시인은 더 이상 관찰자가 아니다.
억울함을 호소하는 당사자가 된다.
문제는 이 순간 시적 거리가 사라진다는 점이다.
독자는 시인의 감정을 이해할 수는 있지만 스스로 발견할 여지는 잃는다.
현대시의 힘은 독자에게 해석의 공간을 남겨 두는 데 있다.
반면 이 작품은 무엇을 느껴야 하는지를 지나치게 명확하게 제시한다.
그 결과 독자는 시와 함께 생각하기보다 시인의 감정에 동조하거나 거부하는 선택만 하게 된다. -
작성자빗새 작성시간 26.06.06 4. 흥미로운 대목 ― 누에와 애벌레의 대비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에는 주목할 만한 지점이 있다.
"누에처럼 실이라도 만들려나"
라는 구절이다.
누에는 잎을 먹지만 비단이라는 결과물을 남긴다.
반면 시 속 애벌레는
"풀잎 먹은 똥만 알알이 동그랗게"
남긴다.
이 대비는 단순한 생태적 차원을 넘어 존재의 가치에 대한 질문으로 읽힌다.
세상에는 상처를 남기면서도 의미를 생산하는 존재가 있고, 상처만 남기는 존재도 있다는 것이다.
시 전체에서 가장 깊은 철학적 함의는 오히려 이 짧은 구절에 숨어 있다.
만약 시인이 이 대목을 중심으로 존재의 생산성과 파괴성에 대한 사유를 확장했다면 작품은 훨씬 넓은 세계를 획득할 수 있었을 것이다. -
작성자빗새 작성시간 26.06.06 5. 제목의 성취와 한계
「살 붙은 풀잎에 아픔이 운다」는 매우 강렬한 제목이다.
원래 풀잎에는 살이 없다.
그런데 시인은 풀잎에 살을 붙여 놓는다.
이는 자연을 인간의 육체와 연결하려는 시인의 의도를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다만 제목이 던진 충격에 비해 본문은 다소 예상 가능한 방향으로 전개된다.
제목이 만들어낸 낯섦이 작품 후반까지 지속되지 못하고, 결국 "아픈 존재가 불쌍하다"는 진술로 회귀하는 점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
작성자빗새 작성시간 26.06.06 종합 평가
황주석의 「살 붙은 풀잎에 아픔이 운다」는 작은 자연의 풍경 속에서 생명의 고통을 발견하려는 따뜻한 시선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특히 인간 중심적 세계관이 지배하는 현실에서 풀잎 하나의 상처에까지 공감하려는 태도는 이 시의 가장 큰 미덕이다.
그러나 시적 성취의 측면에서 보자면 작품은 관찰보다 감정이 앞서고, 이미지보다 설명이 많으며, 사유보다 호소가 강하다. 자연의 상처를 보여주는 대신 인간의 슬픔을 직접 말함으로써 시가 지닐 수 있는 여백과 긴장을 상당 부분 잃고 있다.
결국 이 시는 "상처받는 생명에 대한 연민"이라는 아름다운 출발점에는 도달했지만, 그 연민을 독창적 이미지와 깊은 사유로 변환하는 단계까지는 나아가지 못한 작품이라 할 수 있다.
좋은 소재를 품고 있으나, 아직은 감정이 시를 이끌고 있고 시가 감정을 넘어서는 순간에는 이르지 못한 것이다. 오히려 애벌레가 남긴 작은 식흔 하나를 끝까지 응시했더라면, 이 작품은 훨씬 더 깊고 오래 남는 시가 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
작성자진여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26.06.07 살 붙은 풀잎에 아픔이 운다 /황 주석
다 산 지푸라기 실바람 타고
병들어 겉만 마른 이파리 이리저리
나 뒹군다.
애벌레가 제 몸을 한입 두입 뜯어먹고
씹어 먹어도
손이 있어 발이 있어, 생각뿐인데
아무 말 못 하고 한 맺히게 붉은 피만
철철 흘린다
누에처럼 실이라도 만들려나 쓰리고
아려도 참고 또 참았던 건만
사나 죽으나 떳떳지 못하게
풀 똥만 알알이 동그랗게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소름 돋는
세상에서
수천 길 낭떠러지에 한방의 아픔으로
끊어 내주오.
살 붙은 풀잎에 아픔이 울잖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