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넥타이 디자이너]도미닉 팽본(Dominic Pangborn) (1952~ )

작성자robobang|작성시간11.10.06|조회수196 목록 댓글 0
넥타이 디자이너로 유명한 도미닉 팽본(Dominic Pangborn)
오현수  흙둔지 님의 블로그 더보기
입력 : 2011.10.04 05:30

 

 

팽본5.jpg

 

dominic_pic09.jpg

 

팽본3.jpg

 

팽본.jpg

 

 

 

휴일날 우연히 TV에서 만나게 된 도미닉 팽본(Dominic Pangborn)!
디트로이트를 디자인했으며 디트로이트의 상징이 된 남자!
연매출 300만 달러를 올리는 팽본디자인사의 대표다.
6.25전쟁 중 가난한 시골 마을에서 태어나(1952년생)
10살까지 한국에서 살다가 어머님의 힘든 용단으로
미국으로 입양되었던 입양아이기도 하다.
지금은 도미닉 팽본(Dominic Pangborn)이란 이름으로,
미국에서도 유명한 그래픽 디자이너인 동시에 화가다.


1년여전 남자의 자격이란 TV 프로그램에서
합창단원의 지휘를 맡아 유명세를 탔던
박칼린씨의 눈빛과 흡사한 눈빛의 소유자다.
자신감과 열정, 카리스마가 동시에 느껴지며
순박함도 엿보이는 눈빛은 아무나 소유하는 눈빛이 아니다.
 

자신의 삶과 작품의 원동력은 한국이라고 자신있게 말하는 그는
1993년 한 고객의 의뢰로 넥타이를 만든 것을 계기로,
디자인계에 새로운 반향을 일으켰다고 한다.
도미닉 팽본의 넥타이를 본 적이 없다면,
진짜 넥타이를 못 본 것이나 다름 없다는 말이
회자될 정도였다고 하니 그의 인기를 짐작할 만하다.


강렬한 동서양이 형상화 된 그의 디자인은
미국 뿐 아니라 세계인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2006년 미시간 주 올해의 인물로 선정,
디트로이트에서는 '타이 가이'(Tie guy)
로 더 유명한
그의 성공 스토리가 숨가쁘게 전개되는 TV 화면은
잠시도 한눈을 팔수 없을 정도로 흥미를 끌었다.


그는 성공한 디자이너에서 화가로도 역량을 넓히고 있는데,
미국 내 작품판매수 10위 내에 들 정도로 인정받고 있다고 한다.
어느 정도 성공한 다음 귀국해 어머니를 다시 만나고 싶어
끊임없이 노력을 하며 성장해 미국에서 유명 디자이너로
성공하기까지의 사연이 애처롭고 가슴아프게 다가왔다.
 

빨간 시계줄과 운동화가 그의 트레이드마크일 정도로
그는 강렬한 색상을 선호하는 편이라고 한다.
팽본(Pangborn) 디자인의 상징이 된 강렬한 색감은
한국 새색시의 색동저고리에서 시작되었다고
자신있게 인터뷰하는 모습에서
그가 한국인임에 자부심을 느끼는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다른 사람들을 돕고 싶어 성공하고 싶었다는
한국명으로는 정승헌인 도미닉 팽본(Dominic Pangborn)은
분명 이 시대에 성공한 유명인중에 한명이다.
영어 한 마디 못 하던 낯선 환경에서
늘 도전하고 이루어낸 그의 성공 비결은
치열하지만 따뜻하고, 특별하지만 소박하다.

 

 

팽본7.JPG

 

팽본13.JPG

 

 

 

도미닉 팽본의 생활철학을 요약해 보면 다음과 같다.


1. 생각에만 머물지 말고 즉시 행동하라!
2. 자신만의 독특한 경험을 차별화시켜라!
3. 내가 먼저 얻은 것을 다른 사람과 함께 나누어라!


아래 도미닉 팽본의 디자인 제품과 그림작품을 보면
타국에서 성공한 그의 정열과 천재성을 엿볼 수 있다.


멋지게 성공한 도미닉 팽본(Dominic Pangborn)을 잊지않기 위해
인터넷에서 자료를 검색해 포스팅을 완성했다.
언제 미국에 가게되면
도미닉 팽본의 넥타이와 도록을 구입하고 싶다.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댓글

댓글 리스트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