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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탐방-국내

생육신 관란원호 묘역.원주시 판부면 서곡리 내남송길

작성자김윤자|작성시간26.06.09|조회수39 목록 댓글 0

생육신 관란원호 묘역.원주시 판부면 서곡리 내남송길

 

일시:2026년 6월 9일 화요일

장소:강원도 원주시 판부면 서곡리 내남송길

 

 

* 원호 선생이 심은 느티나무 노거수

 원호 묘역의 노거수는 강원특별자치도 원주시 판부면 서곡리 내남송마을에 있는 약 560년 이상의 역사를 지닌 거대한 느티나무 보호수다. 조선 시대 생육신 중 한 명인 관란 원호 선생이 단종을 그리워하며 이곳에 은거할 당시 심은 나무다. 단종이 수양대군에게 왕위를 빼앗긴 후, 원호 선생이 1459년 원주 남송 마을에 내려와 슬픔을 달래며 직접 심었다. 수백 년 동안 자리를 지키며 현재는 마을을 지켜주는 당산목으로 마을 수호신 나무 역할을 하고 있다. 

 

* 생육신 관란원호 묘역 입구

 강원특별자치도 원주시 판부면 서곡리에 위치한 원주시 향토문화유산 제2009-2호 원호 묘역입구와 계단 주변에는 선생의 충절을 기리는 시비와 묘비, 헌성비 등이 세워져 있다. 관란 원호 선생 시비는  한국문인협회 여강시가회에서 2017년에 세웠다. 단종을 향한 생육신 관란 원호 선생의 애틋한 충절이 담긴 시가 새겨져 있다. 제천, 영월 관란정 앞에도 동일한 시비가 있다. 충신집현전직제학관란지묘 비석은  이곳이 조선 세조 때 단종에 대한 절개를 지킨 생육신 관란 원호 선생의 묘역임을 알리는 비석이다. 묘역으로 올라가는 입구 계단 바로 옆에 있다. 정간제중건헌성비는 원호 선생을 배향하는 사당이나 묘역 정비 및 중건을 기념하며 후손들과 문중의 정성을 기록한 비석이다. 비석의 3면에는 관란 선생의 생애와 업적, 충절의 역사가 빼곡하게 기록되어 있다.

 

* 생육신 관란원호 묘소

 조선 시대 생육신 중 한 명인 관란 원호 선생의 묘소는 강원도 원주시 판부면 서곡리에 위치해 있다. 정식 명칭은 ‘원주관란원호묘역’이다. 그 역사적, 문화적 가치를 인정받아 문화재청 심의를 거쳐 강원특별자치도 기념물로 지정되었다. 풍수지리적 영향 등으로 인해 남편 원호의 묘가 아래에 있고, 부인 영월 신씨의 묘가 윗쪽에 자리하고 있다. 이는 조선 시대에 유행했던 특정 부부 묘지 양식의 원형을 그대로 보여주는 귀한 사례다. 묘역도 선생이 생전에 직접 터를 정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초입의 묘비와 상석, 문인석 1쌍이 조선 초기의 영서 지역 묘제 스타일을 잘 보여준다. 충절의 솔숲으로 묘역 주변에는 하늘로 곧게 뻗은 울창한 소나무 숲이 감싸고 있어, 세조의 왕위 찬탈에 항거하며 단종을 향한 지조를 지킨 선생의 꼿꼿한 절개를 느끼게 한다. 세종 때 식년문과에 급제하고 문종 때 집현전 직제학을 지냈으나, 수양대군 세조가 계유정난으로 권력을 잡자 벼슬을 버리고 고향 원주로 낙향했다. 단종이 영월로 유배되자 영월 서쪽에 관란재를 짓고 아침저녁으로 눈물을 흘리며 단종을 그리워하여 생육신으로 추앙받았다. 세조가 호조참의 등 관직을 내리며 불렀으나 평생 응하지 않고 절개를 지켰다. 

 

* 원호 후손 문중 묘소

 조선 세조 때 단종에 대한 절개를 지킨 생육신 관란 원호 선생의 묘소 아래에는 원주 원씨 원호 후손 문중 묘역이 있다. 여주의 충장공 원호와 원두표 묘역이다. 위 쪽에는 임진왜란 때 여주 신륵사 등에서 큰 전공을 세우고 순절한 충장공 원호 장군과 부인 상주 김씨가 합장되어 있고, 그 아래로 인조반정의 공신인 손자 원두표의 묘소가 있다.

 

* 원호 묘역 하산길

 원호 묘역은 울창한 소나무 숲 군락에 둘러싸여 있다. 그 분의 충절이 아직도 청청하게 숨쉬고 있는 듯하다. 원호 내외분의 묘역을 어루만지며 감사함으로 명복을 빌었다. 오늘의 탐방이 참 흐뭇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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