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 ··· 해외토크방

노팅엄 포레스트의 위대한 명장 : 브라이언 클러프

작성자케르지안|작성시간20.05.30|조회수395 목록 댓글 0


현재는 2부리그 챔피언쉽에서 평범한 중위권에 그친 노팅엄 포레스트에게도 화려한 영광의 시절이 있었다.


그들은 1978년 잉글랜드 1부리그 우승을 달성했고 1979년, 1980년 2년 연속으로 유러피언컵에서 우승을 차지하며 유럽 최고의 팀으로 호령했었다.


당시 그 노팅엄 왕조를 이끌었던 감독이 잉글랜드의 위대한 감독 "브라이언 클러프"가 되겠다.




(더비 카운티의 처음이자 마지막 잉글랜드 풋볼 1부리그 우승. 더비가 클러프를 경질하지 않았다면 포레스트의 영광의 시대는 더비가 될수도 있었다는 관측이 많다.)


노팅엄에 오기전 브라이언 클러프는  더비 카운티에서 더비의 처음이자 마지막 1부리그 우승을 이끌기도 했으나 이후 리즈유나이티드에서 44일만에 경질되고 3부리그 소속 브라이튼에서 19위에 그치며 경질되는등, 바람잘날이 없던 감독이었다.


1975년 2부리그의 평범한 중위권클럽 노팅엄 포레스트에 온 클러프는 마침내 노팅엄과 함께 재기에 성공한다.


당시 클러프는 훗날 셀틱과 아스톤빌라의 감독이 되는 마틴 오닐, 훗날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도 알렉스 퍼거슨과 함께 영광의 시간을 보낸 비브 앤더슨등을 1군으로 승격시켜 2부리그 3위로 1부리그에서 승격했고 78년 노팅엄의 사상 첫 1부리그 우승을 이끈다.




(클러프와 포레스트는 잉글랜드와 유럽을 호령했다. 포레스트 역사에서 우승컵이 쏟아져 나온 시절은

클러프가 지휘했던 시절이 유일하다.)


79년 유러피언컵에서 노팅엄은 스웨덴의 말뫼를 결승에서 만나 존 로버트슨의 결승골로 1-0으로 승리하며 창단 이후 처음으로 유럽 정상에 등극했다. 이듬해 80년 유러피언컵에서도 케빈 키건의 함부르크SV를 누르며 유러피언컵 2연패를 달성했다.


유러피언컵에서의 영광이후 클러프의 오른팔 피터 테일러는 더비 카운티의 감독으로 떠났고 포레스트는 스튜어트 피어스, 로이 킨등의 유망주를 영입하며 리빌딩을 준비했지만 1993년 EPL로 명칭이 개칭된 첫 시즌에 22위라는 성적으로 강등당했으며 클러프의 28년 감독생활을 종지부를 찍는다.


비브 앤더슨이 말하기를, 그의 훈련법은 매우 독특했다고 한다. 79년 말뫼와의 유러피언컵 결승전을 위해 뮌헨으로 갔을때 클러프는 뮌헨 시가지 한가운데에 장비를 펼치고 그곳에서 훈련을 했다고 한다. 그리고 그의 교체전략은 항상 들어맞았다고 한다.당시 결승전에서 결승골을 터트린 로버트슨에게 "너가 골을 넣을것이라는걸 알기에 투입하는거야!"라고 투입직전에 말해주었다고.


1991년 대영제국 4등급 훈장을 수여 받았으며 감독직 은퇴이후엔 무리뉴같은 독설가 컨셉으로 평론가 활동을 했었다.


2004년 10월 위대한 감독은 지병인 폐암으로 타계했다.




(버튼 알비온의 돌풍을 이끌었던 브라이언의 아들 나이젤. 아버지와 닮았다.)


그의 아들 나이젤 클러프 역시 감독으로 활동중인데 아버지의 뒤를 이어 더비 카운티를 맡아 리그컵 4강에 올린바 있고 3부리그 버튼 알비온을 이끌고 역시 리그컵 4강에 올라 펩 과르디올라의 맨체스터 시티와 겨룬바 있다. 역시 호부호자다.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댓글

댓글 리스트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