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화는 길어야 몇 분 남짓이었지만, 토트넘의 추락을 보여주는 한 장면은 한 시대를 설명할 수도 있었다. 10월 22일 모나코전 이후, 토트넘 스태프들은 토트넘 수비수 출신이자 현재 모나코 소속인 다이어가 스펜스와 깊은 대화를 나누고 있는 모습을 우연히 들었다.
다이어는 토트넘 시절부터 스펜스를 챙긴 일종의 멘토 같은 존재였다. 몇 가지 습관만 바로잡으면 충분히 성장할 수 있다고 믿고 있었다. 하지만 스펜스가 벤치에 머물자, 다이어는 다소 답답한 듯 조언을 다시 상기시키고 있었다.
그때 토트넘의 단장인 요한 랑에가 지나가며 대화의 분위기를 감지했다. 랑에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드디어! 저런 대화가 더 많았으면 좋겠군.”
토트넘의 몰락은 팀을 떠난 선수들을 대체할 선수를 찾지 못한 점, 그리고 이를 알아차리지 못할 정도로 안일했던 경영진의 문제였다. 이는 무관심이라는 문화가 얼마나 파괴적이고, 임원진부터 훈련장까지 얼마나 널리 퍼질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사례다.
엘리트 중심으로 돌아가는 스포츠에서 전문성을 쉽게 여기는 순간, 그리고 자신의 위상이 굳건하다고 착각하는 순간 얼마나 빠르게 무너질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경고다.
딜로이트에 따르면 토트넘은 지난 시즌 세계에서 9번째로 부유한 구단이었다. 막대한 이점 덕분에 이런 문제들 하나하나만으로는 거의 50년 만의 강등 위기에 몰릴 정도까지 추락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한 프리미어리그 베테랑 단장의 말처럼, 토트넘과 같은 클럽은 “엉망진창 같은 결정을 잔뜩 내려도 이 정도로 망가지진 않는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평범함을 용납하지 않는 리그에서 이런 실패들이 하나씩 쌓이고 뒤섞이며, 결국 썩어 들어갔다. 그리고 마침내 역사도, 재정도 가릴 수 없는 한 가지 사실로 드러났다. 경기장 위에서 만성적인 질적 부족이었다.
5년간의 표류 끝에 레비가 회장직에서 물러났다.
지난해 9월 4일 아침, 다니엘 레비는 자신이 건설을 지시했던 훈련장의 완벽하게 정돈된 퍼팅 그린 옆을 차로 지나며 그저 평범한 하루가 시작된다고 생각했다. 목요일이었고, 이적시장은 막 닫혔으며, 그 주 후반에 예정된 회의들이 일정표에 적혀 있었다.
첫 번째 회의 상대는 토트넘 구단주인 루이스 가문의 오랜 자문이자 6개월 전 이사회에 합류한 Peter Charrington이었다. 그리고 회의는 레비의 마지막 회의가 되었다.
24년 동안 토트넘 회장을 맡았던 레비는 이후 돌아오지 않았고, 경기장 안에서 경기를 다시 보지도 못했다. 심지어 그의 개인 물품과 개인 비서로 일했던 아내 트레이시의 물건까지도 밴에 실려 전달되었다.
토트넘으로서는 레비의 퇴장은 마치 다이너마이트 심지의 마지막 ‘치익’ 소리 같았지만, 이미 폭약은 상자 밖으로 나와 있었고, 기폭 장치도 근처에 놓여 있는 상태였다. 레비 체제의 토트넘은 이제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었다.
2019년 챔피언스리그 결승 진출 이후 6시즌 동안 프리미어리그 TOP4에 단 한 번밖에 들지 못했다. 마지막 풀시즌은 17위로 마감했는데, 이는 분명 최종 경고 신호였어야 했다. 하지만 구단은 포스테코글루를 경질하면서도, 유로파리그에 집중해야 한다는 그의 서사를 그대로 받아들였다.
그러나 토트넘의 문제는 유럽 대회 이전부터 이미 시작되고 있었다. 1월 30일 유로파리그 토너먼트가 시작되기 두 달 전, 토트넘은 이미 리그 15위에 있었다.
레비와 루이스 가문은 단순히 성적뿐 아니라 구단 전반에서 ‘표류’의 시기를 만들어냈다. 구단 수뇌부는 축구보다 팝 콘서트, 아마존 다큐멘터리, 고카트 트랙, 수익성 높은 프리시즌 투어에 더 큰 비중을 두었고, 한 내부 관계자의 말처럼 축구는 점점 중심에서 밀려났다.
이는 선수들의 불만으로도 이어졌다. 호이비에르는 2024년 멜버른에서 열린 시즌 이후 친선전 출전을 거부했다가 2주 치 임금 벌금을 부과받기도 했다.
직원들의 사기도 낮았다. 위에서 아래로 내려오는 일방적인 운영 방식에 지친 이들이 많았다. 코로나 기간 축소된 축구 부서는 완전히 복구되지 않았고, 스카우팅 조직도 축소됐다.
이는 랑에와 단기간 재직한 최고 축구 책임자 Scott Munn이 주도한 중앙집중형 데이터 기반 접근으로 대체됐지만, 결과적으로는 더 적은 선수들을 더 적은 눈으로 보는 상황을 낳았다.
이번 시즌 프리미어리그에서 단 26분 출전에 그친 아카데미는 방치되었고, “코로나 기간 꺼진 불 중 다시 켜지지 않은 것 중 하나”였다.
내부 직원들은 심지어 마케팅 같은 비축구 분야에서도 구단이 토트넘 팬층에 대해 거의 아무것도 모른다고 지적했다. 이는 다른 산업에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수준이었다. 한 관계자는 “모두가 모든 것을 이해해야 했다. 정말 어처구니없는 상황이었다.”라고 전했다.
운항 중인 상태에서 팀을 재정비
손가락질로 책임을 돌리는 갓도 한계는 있다. 무엇보다 이전 체제가 곧 현재 체제이기도 하다. 루이스 가문은 여전히 정점에 있다.
89세의 조 루이스는 이미 수년 전 자녀인 비비안과 찰스에게 경영권을 넘겼고, 이번 시즌에는 비비안의 사위 Nick Beucher가 세 사람 중 축구 관련 의사결정에 가장 깊이 관여했다.
Nick Beucher는 현재 토트넘 CEO인 비나이 벤카테샴과 긴밀히 소통하고 있다. 벤카테샴은 축구 운영을 총괄하며, 레비의 뒤를 이어 그 역할을 맡았고 랑에 위에 있다.
토트넘은 레비 체제 동안 수익을 150% 이상 끌어올렸고, 유럽 정상급 클럽 반열에 올려놓았다. 결론만 말하면, 토트넘은 실제로 강등 위기에 처해 있었던 적은 없었다. 이번 시즌 내내 레비를 옹호하는 이들이 반복해 온 말이 있다. “이건 다니엘 체제에서는 절대 일어나지 않았을 일이다.”
그러나 레비 퇴임 이후의 진짜 문제는 리더십 공백과 경험 부족이었다. 구단은 사실상 세 명 (레비, 작년에 퇴사했고 오랜 기간 함께한 임원 Donna-Maria Cullen, 재무·운영 책임자인 Matthew Collecott)이 막대한 권한을 쥔 채 운영되고 있었다.
레비와 Matthew Collecott의 동시 퇴장은 단순히 한두 명을 채용하는 수준이 아니라, 시즌 도중 프리미어리그와 챔피언스리그를 병행하면서 대규모 경영진을 한꺼번에 구성해야 하는 상황을 만들었다.
벤카테샴은 이를 두고 동료들에게 “비행 중인 비행기를 공중에서 다시 만들고 있는 상황”이라고 표현했다. 한 내부 관계자는 더 직설적으로 말했다. “우리는 사실 축구 없이 1년을 보내야 했다.”
그 결과 지난 12개월 동안 13명의 새로운 부서장이 임명됐고, 일부는 합류까지 시간이 걸렸다. 벤카테샴은 9월에 퍼포먼스 디렉터를 최우선으로 채우겠다고 했지만, 채용 절차와 경업금지 기간을 거친 뒤 Dan Lewindon이 합류한 것은 토마스 프랑크가 경질된 날이었다.
또한 이적 업무 재건의 핵심으로 평가받는 신임 축구 운영 디렉터 Rafi Moersen는 6월 중순이 되어서야 합류한다. 일부 인사는 단순히 잘못된 선택이었다. 축구 부문 총괄로 의료 및 스카우팅 개편을 맡았던 Scott Munn은 2023년 합류 후 2년도 채우지 못하고 떠났고, 퍼포먼스 서비스 디렉터 Adam Brett 역시 1년 만에 자리를 떠났다.
파라타치의 행보도 불안정했다. 2021년 합류, 2023년 퇴장, 2024년 부분 복귀, 2025년 공동 직무 수행, 그리고 2026년 다시 퇴장, 마지막 공동 단장 역할도 3개월 만에 이탈하며 이탈리아로 돌아갔다.
레비와 파라티치는 높은 기준을 요구하던 인물들이었고, 일부에서는 그들이 떠난 뒤 토트넘이 더 ‘아마추어적인’ 조직이 됐다고 본다. 한 오랜 내부 인사는 이를 “2인자들만 가득한 클럽”이라고 표현했다.
레비의 집요함은 유명하지만, 파라티치 역시 기준에 엄격했다. 그는 과거 리즈 원정에서 식사 시설에 불만을 품고 크게 화를 냈고, 신입 선수들이 핫스퍼웨이에 처음 도착하면 항상 최고 수준의 환영을 준비했다.
중요한 결정을 미루다.
파라타치는 11월 당시 홈에서 풀럼 상대로 실망스러운 패배를 당한 뒤, 만약 감독을 교체해야 할 상황을 대비해 투도르를 대안으로 처음 제안했다. 당시 프랑크에 대한 파라티치의 의구심은 토트넘 내부에서 긴장을 불러일으켰다. 특히 벤카테샴과 랑에는 프랑크를 강하게 지지하고 있었다.
그들에게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다. 프랑크의 긍정적인 성향과 브렌트포드에서 성과뿐 아니라, 랑에와 프랑크는 덴마크 Lyngby BK에서 함께 커리어를 시작한 인연이 있었다. 또한 벤카테샴은 아스날 시절 아르테타를 꾸준히 신뢰했던 경험에서 영향을 받고 있었다.
11월 A매치 기간 벤카테샴, 랑에, 파라티치는 바하마로 날아가 루이스 가문과 Nick Beucher를 만났고, 이 자리에서 전달된 핵심 메시지는 “초반의 흔들림은 당연하다”라는 것이었다. 프랑크는 시간이 더 필요하다는 판단이었다.
하지만 리더십 전반에 걸친 혼란 속에서, 벤카테샴과 랑에는 축구 문제는 자연스럽게 해결될 것이라는 다소 순진한 기대를 품고 있었다. 이미 10월에는 프랑크 체제 아래 ‘전환의 시즌’이라는 개념이 내부적으로 받아들여졌지만, 이렇게까지 상황이 악화될 것이라 예상한 사람은 없었다.
이런 맥락에서 구단 밖의 혼란은 경기장 안의 핵심 결정들을 미루는 결과로 이어졌다. 특히 프랑크의 거취 문제에서 그랬다. 시즌이 중반으로 접어들며 경기력과 팬들과의 관계가 급격히 악화됐지만, 구단은 추가 혼란을 피하고자 ‘침착함’을 고집했다.
더 비판적인 시각에서는 이는 단순한 침착함이 아니라 강등 가능성을 직시하지 못한 안일함이었다고 본다. 3월 당시 팀이 추락하고 있음에도 구단 관계자들은 ‘강등’이라는 단어조차 쓰지 않으려 했고, 이를 ‘r-word’라고 에둘러 표현했다.
이번 시즌 중요한 분기점마다 토트넘은 항상 두세 걸음 늦었다. 1월 중순, 홈에서 웨스트 햄 상대로 2대1로 패한 뒤 감독 경질을 논의했지만, 시즌 종료까지는 유지하기로 했다.
1월 이적시장 마감 시점, 강등권보다 승점 8점 앞서 있던 상황에서도 랑에는 여름에 더 나은 선택지가 있을 것으로 판단해 코너 갤러거 한 명만 영입했다.
2월에는 임시 감독으로 투도르를 기용하는 리스크를 감수할 수 있다고 판단했고, 6월에 정식 감독을 선임할 계획을 세웠다. 그리고 3월 말, 팀이 강등권 바로 위에 있는 상황에서야 비로소 데 제르비를 연봉 12m 파운드에 선임했다. 남은 경기는 단 7경기뿐이었다.
이번 여름에도 벤카테샴의 입지는 안정적일 것으로 보이지만, 랑에의 미래는 불확실하다. 현재 계획은 이적 업무를 전담할 테크니컬 디렉터를 다시 한 명 영입해 랑에와 함께 일하게 하는 것이다. 다만, 그 인물이 누구냐에 따라 구단 구조 자체가 달라질 수도 있다.
젊고, 활동적이며, 유연한
2024년 여름, 토트넘이 케인 없이 보낸 첫 시즌을 5위로 마친 뒤, 로메로는 포스테코글루에게 왜 구단이 어린 선수들만 영입하는지 물었다. 하지만 놀랄 일은 아니었다.
2019년부터 2024년 사이, 은돔벨레, 로 셀소 등 기대에 못 미치는 고액 영입이 이어지자, 레비는 과거 성공을 거뒀던 정책으로 돌아가고자 했다. 바로 ‘젊고, 활동량이 많으며, 유연한’ 선수들을 영입하는 방식이었다.
이는 랑에의 방향성과도 맞아떨어졌다. 그는 2023년 빌라에서 토트넘으로 합류하며 수석 스카우트 Rob Mackenzie를 데려왔고, 데이터 중심·유망주 중심 전략을 추진하기 위해 영입된 인물이었다.
하지만 포스테코글루는 2024년 여름 네투, 세메뇨, 갤러거를 원했지만, 실제로는 18세인 그레이와 베리발, 솔랑케 영입에 그쳤다. 이 중 솔랑케만 20세 이상이었다.
최근 두 시즌 동안 토트넘은 총 14명의 완전 이적 영입을 했는데, 평균 나이는 20.7세였고 절반이 10대였다. 전략은 빡빡한 임금 구조에도 부합했다. 토트넘은 지난 10년간 이적료 지출에서는 꾸준히 상위권이었고, 최근 두 시즌 순 지출에서는 아스날보다도 높았다.
하지만 검증된 선수들을 끌어들이는 핵심은 임금이다. 2024년 딜로이트 자료에 따르면, 토트넘의 임금 대비 수익 비율은 프리미어리그 최저 수준이었다. 그래서 갤러거는 현실적으로 영입이 어려운 선수로 여겨졌고, 결국 아틀레티코 마드리드로 이적했다. 또한 맨유가 음뵈모에게 접근했을 때, 토트넘은 경쟁조차 하지 않았다.
2022년 아르헨티나의 월드컵 우승 이후, 로메로는 자신이 대표팀 동료 중 거의 유일하게 연봉 인상을 받지 못했다고 불만을 제기하기도 했다. 이후 토트넘은 임금 구조를 완화하기 시작했고, 로메로는 8월에 4년 재계약을 체결했으며, 갤러거 역시 1월에 팀 내 최고 연봉자 중 한 명으로 합류했다.
하지만 ‘젊고 유연한’ 선수 위주의 영입은 경험, 리더십, 그리고 순수한 기량 측면에서 스쿼드의 결핍을 낳았다. 규율 문제로 어려움을 겪던 프랑크는 ‘개성 부족’이 큰 문제였다. 측근들에 따르면, 그는 로메로가 주장으로 이상적인 선택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대안이 없다고 느꼈다.
투도르는 팀이 경기장 안팎에서 거의 소통하지 않는다는 점에 충격을 받았다. 한 젊은 선수는 팀 단합을 위해 바비큐 모임을 열고 싶어 했지만, “내가 나설 일이 아니다”라는 생각에 포기했다고 한다.
로메로가 치료를 위해 아르헨티나로 간 것도 이례적인 일이 아니었다. 여러 선수가 외부 전문가나 대표팀 의료진을 이용했고, 이는 지난 2년간 토트넘 의료 시스템에 대한 신뢰가 무너졌음을 보여준다.
연구 결과도 있다. ‘New Coach, New Risks?’라는 연구에 따르면, 감독 교체 후 첫 4주 동안 부상 발생이 35.4% 증가하는 경향이 있었다. 새로운 감독은 성과를 내기 위해 훈련을 과도하게 시키고, 선수들은 눈에 띄기 위해 무리하기 때문이다.
프랑크는 전술 훈련을 늘렸지만, 선수들은 이를 지루해했고, 투도르는 챔피언스리그 주중 일정이 있는 2월에 달리기 훈련을 강행해 “미친 짓”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이번 시즌 토트넘 선수들이 부상으로 결장한 일수는 1,549일로 리그 최다였다. 그러나 단순한 숫자보다 더 큰 문제는 빠진 선수들의 ‘질’이었다. 솔랑케, 메디슨, 쿨루셉스키, 오도베르, 벤탄쿠르, 우도기 등 주전급 선수들이 거의 뛰지 못했고, 결국 얇은 스쿼드가 백업 선수들에 의존해야 했다.
프랑크는 스쿼드의 수준에 크게 실망해 동료들에게 “빅클럽에 뛸 수 있는 선수는 포로뿐”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결국 데 제르비는 텔, 히샬리송, 콜로 무아니를 앞세워 강등 싸움을 해야 했다.
토트넘은 이미 1월부터 데 제르비를 검토하고 있었지만, 실제로 그가 부임한 것은 3월 31일이었다. 아무도 맡고 싶지 않은 자리를 맡은 그는 조금씩 승리와 자신감을 되찾고 있으며, 팀의 지표는 이제 중위권 수준을 가리키고 있다.
왜 더 일찍 데 제르비를 선임하지 않았냐는 질문에 대해, 구단은 “강한 설득이 필요했다”라고 답한다. 그리고 그 이유는 어쩌면 명확하다. 문화, 야망, 경험, 안정성, 스쿼드의 질, 그리고 라커룸의 리더십, 토트넘에는 그 모든 것이 부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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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아이유 작성시간 26.05.26 잘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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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Daredevil 작성시간 26.05.26 다이어가 리더쉽이 있긴 한가보네 뮌헨에서도 리더쉽 관련 기사 본 거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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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쌥쌥이 작성시간 26.05.26 아주 총체적 난국이었구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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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김도기 작성시간 26.05.26 선수들이 팀닥터를 못 믿어서 개인트레이너와 국대트레이너를 더 많이 의존했다는건 진짜 갈데까지 갔다는 거임. 저러는데 선수들이 열과 성을 다해 뛸리가 있나. 열심히 뛰다가 다치면 선수생명 끝날거란 생각이 가장 먼저 들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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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에레라랄라 작성시간 26.05.26 하 참..안타깝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