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멸전'이라는 이전의 역사에서는 그 유례를 찾아볼 수 없던 전쟁의 성격과 독일군과 소련군 양측이 전쟁이 끝날 때까지 서로 주고받은 참혹한 보복 행위 때문에 동부 전선은 태평양 전선과 더불어 2차 세계대전 중 가장 참혹한 전선이었다.
슬라브족을 학살을 넘어 멸절시켜 버리려 했던 독일군은 슬라브인들을 자비가 필요없는 짐승이나 벌레 같은 미개한 존재로 보았으며, 소련과 동유럽에서 진주하는 동안 '일상적으로' 대량 학살, 강간, 약탈, 방화를 저질렀다. 독일군의 진격로에 있던 마을은 모두 잿더미가 되어 완전히 사라져 버렸으며 주민은 모조리 학살당했다.
서부 전선에서는 최소한의 질서와 규율을 유지하려 노력했던 독일군 수뇌부의 모습과는 달리 동부 전선에서 독일군 수뇌부는 독일군이 소련의 민간인과 포로를 상대로 저지르는 만행을 막기 위한 그 어떤 노력도 하지 않았으며 처벌이나 단속은 커녕 오히려 잔혹 행위를 조장하기도 했다. (그러나 서부 전선 역시 1944년 이후 전쟁 막바지에 규율이 붕괴하면서 학살 및 강간 등 잔혹한 대민 범죄가 급증하였다.)
독일군의 광란으로 소련에서만 '최소' 2000만 명이라는 극단적인 수의 사망자가 발생했으며, 330만 명의 소련군 포로가 학살당했으며, 또한 수백만 명에 달하는 소련인 여성들이 독일군에게 강간당하고 75만에서 100만 명에 달하는 사생아가 태어났다. (이는 소련군이 독일에서 보복으로 저지른 강간 피해마저도 아득히 뛰어넘는 수치이며 독일 국방군 원수 빌헬름 카이텔이 1942년 9월에 보낸 비밀 보고에서는 겨우 개전 1년 만에 75만 명의 사생아가 독일군과 소련인 여성 사이에서 태어났다는 경악할만한 사실을 언급하며, 이 사생아들에게 독일식 이름을 주어 '아리안화' 시켜야 한다고 제안하는 내용이 담겨있다.)
동프로이센에 위치한 네메르스도르프(Nemmersdorf)에서 소련군의 보복으로 학살당한 독일 민간인들의 사체
해당 장소에서 소련군은 독일 민간인들을 무차별적으로 학살하고 강간했다.
당시 독일군과 싸웠던 소련군 병사 중에서 독일군에 의해 가족이나 친척을 잃지 않은 병사가 없었으며 자신을 제외하고 모든 일가의 친족들이 학살당한 병사들도 있었다. 복수심에 괴물이 돼버린 소련군은 독일군 포로와 독일 민간인을 상대로 무차별 보복을 자행했으며 악명 높은 '베를린 강간' 역시 그 일부였다.
소련군 수뇌부도 초기에는 독일이 보복을 당해 마땅하다고 생각했기에 소련군 병사들이 저지르는 보복 행위를 완전히 방관했다. 그러나 이후에 그 정도가 심해지자 규율을 확립하고 나치 독일에 대한 '도덕적 우위'를 점하기 위해 소련군 수뇌부는 공식적으로 엇나가는 병사들을 엄중하게 단속하고 독일군 포로를 산 채로 붙잡을 것을 명령했으며 포로나 민간인을 상대로 잔혹 행위를 저지른다면 가혹하게 처벌할 것이라고 경고하기까지 했다. (물론 당시 소련군 개개인이 워낙에 복수심에 불탔기에 항상 이것이 지켜진 것은 아니었으며 무시된 경우도 많았다.)
베를린에서 독일 여성을 상대로 강간을 저지르다가 정치 장교나 NKVD에 의해 즉결처분된 소련군 병사들도 상당수 존재했으며 소련 여군 참전병들의 수기를 모은 책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에서는 독일인 마을에서 독단적으로 총기를 난사하여 독일 주민들을 학살했다가 총살형에 처해진 소련군 병사의 사례도 언급된다.
소련군이 독일군 포로와 민간인을 상대로 저지른 보복 행위 역시 전쟁 범죄라는 것은 명명백백한 사실이며 그 규모와 잔혹성 역시 가볍지 않았다. 그러나 그 역시 나치 독일이 소련에서 저지른 만행에 미치지는 못한다는 것이 역사학자들의 중론이며 오히려 독일군의 선행 행위에도 공식적으로는 보복을 금지한 소련군 수뇌부의 방침을 상당히 이례적인 것으로 보기도 한다.
소련군 내부에서도 보복을 금지하는 방침에 대한 불만의 목소리가 매우 컸다. 소련군의 입장에서는 독일을 지도상에서 완전히 지워버리고 모든 독일인을 학살해버려도 분이 풀리지 않을 만큼 독일에 대해 쌓인 분노와 원망이 매우 컸으며 독일에 대해 완전한 복수를 취하지 못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비록 사적 보복은 금지했으나 소련군 수뇌부 역시 3년 동안 조국을 지옥으로 만든 나치 독일의 장본인들을 마땅히 응징해야 한다는 공통된 감정은 공유했으며 그들 역시 소련에서 온갖 잔혹 행위를 저지른 독일군 전범들을 모조리 사형에 처하길 원했다.
나치 독일의 전범을 처벌하기 위해 열린 뉘른베르크 재판에서 서방 국가들에 나치 독일이 소련을 상대로 얼마나 잔혹했는지 이해시키고 설득시키기 위해 해당 재판에서 영상 자료를 증거로 제출했다.
"소비에트 연방에서 독일 파시스트들이 저지른 만행" (Кинодокументы о зверствах немецко-фашистских захватчиков)이라는 제목의 소련이 전쟁 동안 소련 각지에서 직접 촬영한 영상 기록물이 나치 독일의 전범들을 처벌하기 위한 증거로써 1946년 2월 19일 뉘른베르크 국제군사재판을 위해 제출되었다. 해당 영상은 당시 독일군이 소련에서 얼마나 잔혹했는지 적나라하게 보여주며 독일군이 소련의 민간인과 전쟁 포로에게 일상적으로 저지른 전쟁 범죄를 여과 없이 담고 있다.
열람 주의 - (훼손된 시체, 시신의 얼굴 등 적나라한 장면이 다수 포함돼 혐오스러울 수 있음)
로스토프. 해당 장면은 솔로구보프에 의해 찰영됐다.
(독일군에 의해 집단으로 학살당한 소련 시민의 모습)
비탸 골로브레프라는 이름의 어린아이는 비둘기를 독일군에게 내주지 않으려다가 살해됐다.
엔지니어 고르데예프의 아내는 독일군에게 강간당한 뒤 총살됐다.
독일군은 거리에 보이는 소련의 민간인들을 성별과 신분을 가리지 않고 학살했다.
로스토프의 기차역에서 독일군은 소련군 전쟁 포로들을 고문한 뒤 학살했다.
독일군은 소련군 포로들을 자비롭게 죽이지 않았다.
독일군은 그들의 코와 귀를 잘라 죽였다.
티흐빈(러시아)에서도 독일군은 소련군 포로들을 학살했다.
학살 현장의 소련군 군의관들은 독일군의 만행을 정리하고 기록하고 있다.
그들은 안드레이 칼린킨 이병은 총검에 찔려 살해됐다고 기록했다.
게오르기예프 이병은 개머리판으로 살해됐다.
독일군은 소련군 전쟁 포로를 학살한 사실을 은폐하고자 했다.
따라서 그들의 시신을 불태웠다.
거리에서, 창고에서, 그리고 폐허가 된 가옥에서
불에 탄 소련군 병사들의 시신이 발견됐다.
포로들은 그들의 옷가지와 문서와 함께 불태워졌다.
클린(러시아)의 근처 마을에서 독일군은 마을 농부들을 집단으로 학살했다.
수많은 일가족이 독일군에게 학살당했다.
집안에 숨어있던 민간인들도 독일군에게 끌려져 나온 뒤 학살당했다.
독일군에게 살해당한 가장이자 아버지였던 인물을 곁에 두고 통곡하는 유족들
러시아 칼루가의 한 학교는 게슈타포 장교가 머무던 곳이었다.
그곳에 독일군은 중세식 고문실을 만들었다.
독일군은 그곳에서 사람들의 손목을 산 채로 잘라버렸다.
크림 반도의 도시 케르치에서 대전차호의 발굴이 진행되고 있다.
해당 장면은 1943년 12월 31일, 도시가 소련군에 의해 해방된 직후 오추르코프에 의해 촬영됐다.
그곳에서 독일군은 무고한 민간인들에게 죄를 뒤집어씌우고 대전차호에 몰아넣은 뒤 대량으로 학살했다.
독일군은 245명의 어린이도 학살했다.
독일군에게 학살당한 주민의 집단 매장지에서 자신의 아내와 자식들을 알아본 한 남자가 오열하고 있다.
케르치에서 7000명의 시민이 학살됐다.
소련군 부상병들이 치료받던 야전병원에 들이닥친 독일군은 그곳의 부상병들을 잔혹하게 학살했다.
하르코프(우크라이나 하르키우) 병원의 거리 앞에 독일군에게 학살당한 수백 구의 시신이 널브러져 있다.
소련군 관계자들은 병원에 있던 부상병들이 대부분 거동이 불가한 병약자나 사지를 절단한 환자들이었기에
그들이 산 채로 불태워졌을 것이라고 판단했다.
하르코프 근방의 지역
그곳에 독일군은 이동식 가스실에서 학살된 시신을 매장했다.
대량 학살이 그곳에서 이루어졌다.
하르코프의 드로비츠키 야르에서 독일군은 14000명의 주민을 학살했다.
수많은 무고한 민간인이 독일군에게 학살됐다.
소련군 관계자들은 독일군이 희생자들에게 무릎을 꿇게 한 뒤 총살한 정황을 그들의 유골에서 발견했다.
우크라이나 바르벤코보에서 마즈루코는 여성, 노인, 아이들의 훼손된 시신이 집단으로 매장된 눈 덮인 무덤을 발견했다.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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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댓글 작성자I’d rather be ashes than dust 작성시간 25.02.26 그랬으면 적어도 독일남자는 멸종했을거..
사생아만 백만명에 학살당한 소련연방인이 지금 북한인구인 이천만명이였으니..
지금 afd 설치는 거 보면 진짜 어이없는 이유죠
저때 미국과 연합군이 현대 독일을 구원해준거나 다름없음
소련연방은 저때 독일을 완전히 절멸시켰다 해도 할말 없는 인종학살극을 벌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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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댓글 작성자맨유우승하자좀 작성시간 25.02.26 I’d rather be ashes than dust 아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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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댓글 작성자aespa 윈터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25.02.26 일단 학살 정황이 명백히 밝아진 지도부는 대부분 징역 살거나 죄질에 따라 총살,교수형 되긴 했는데 모두 처벌을 받았다보긴 굉장히 어려울 것 같아요. 워낙 학살에 가담한 무장친위대와 국방군이 광범위했어서 ㅠㅠ 다 밝히기가 어렵죠.
단 소련에 포로로 붙잡힌 독일군들은 대부분 살아서 고향으로 돌아오지 못했습니다. 1950년대 이후까지 소련에서 포로로서 극악의 환경에서 노동,고문을 받으며 대부분 사망하고 전후 독일로 돌아온 건 일부였습니다. -
작성자맛있는 고로케 작성시간 25.0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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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NEWJEANS 작성시간 25.02.27 저거도 잔인한데 일본군은 저걸 뛰어넘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