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커야 할 건 크게, 작아야 할건 작게
흔히들
일본사람들을 축소지향적이라고 하며 무엇이든지 작게 만드는데 능하다고 한다. 그런데 나는 반드시 그렇게
보고 싶지 않다. 오히려 균형감각을 가진 민족이라고 보고 싶은 것이다.
커야 할 것은 크게, 작아야 할 것은 작게 만들어 쓸 줄 아는 사람들이 바로 일본 사람들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일본을 여행해보면, 도시 뒷골목에는 조그마한 전통 일본가옥이 많이 눈에 띈다.
일본 서민대중들은 가난하게 살고 있는데 일본 정부는 넉넉한 재정 덕분에 신간센 같은 가히 혁명적인 수송수단의 개발이 가능했던 것이다.
일본 서민대중들이 모두 부를 나누어 가지고 부자로 행세했다면 신간센 건설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서민대중이 꼭 가난하게 살아야 한다는 법은 없겠지만, 많은
세금부담을 마다 않고, 적당히 규모 있게 살아가는 덕분에 정부는 막대한 재정으로 덩치 큰 살림을 할
수 있게 되었으니 이것이 균형감각이 있는 것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일본의 유수한 재벌들이 35평정도의 아파트로 만족하고 있다 한다면 그것이 그들의 축소지향적 성향 때문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신간센 열차가 어느 나라의 열차보다도 작게 만들어졌다는 이야기는 들어보지 못했다
일본의
많은 올나잇 사우나가 캡슐 호텔을 겸하고 있는데, 개인의 잠자리인 캡슐은 글자 그대로 캡슐처럼 작게
생긴 방이다, 한
사람이 들어가면 딱 맞는다. 일어설 수는 없고, 앉아
있을 수는 있는 높이에 요 하나 깔고 누울 수 있는 길이와 넓이의 공간이 있을 뿐이다. 그러나 그 안에 TV, 라디오, 전등, 공기정화기 등 갖출 건 다 갖추었다. 들어가서 잠만 자면 되는데 그 이상의 공간은 낭비에 불과하다.
혼자 자는 잠자리는 이처럼 작지만 손님 모두가 함께 쓰는 탕이나 휴게실은 넓고
화려하다. 여러 사람이 함께 쓰는 공용시설은 크게, 혼자
쓰는 개인용은 적게 만들어 쓰자는 것이 그들의 공통된 특성이었다. 개인 집의 차고를 보면 소형차 하나를
겨우 집어 넣을 수 있는 공간이 있을 뿐이었다.
작은 공간 때문에 소형차를 구입했는지, 소형차를 갖고 있기 때문에 주차공간을 최소로 줄였는지, 어느 쪽인지는 자세히 모르겠지만 어쨌든 그들은 불필요한 부피나 무게를 최소한으로 줄이고, 작은 공간을 최대한으로 활용하고 있다. 효율의 극대화라고나 할까?
그네들이 철도 역 부지에 고층건물을 세우고 그 안에 백화점 등 쇼핑센터가 들어서 있는 것도 따지고 보면 기왕 역사가 들어설 바에는 역이 차지한 땅의 생산성을 극대화하자는 발상이다.
시내를 돌아다녀 보면 구석구석 사람 손길이 안 닿은 곳이 없다. 한마디로 버려둔 땅이나 공간이란 한군데도 없다.
그러나 그들은 커야 할 건 크게 만든다. 2차 대전 중 그들이 만들어낸 항공모함 야마도가 세계 최대였음은 아마도
많은 사람들이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왜 그처럼 커야 했는지 모르지만 커야 할 것은 크게 만드는 사람들이다.
우리가 일본에 갔을 당시는 동경의 이케부크로에 있는 썬샤인60(높이 239.7m의 건물(1978년 완공 당시부터 1983년 서울에 249m 높이의 ‘63시티’가 건설되기 전까지)이 아시아에서 가장 높은 빌딩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오사카에 있는 ‘아베노 하루카스’(사진)가 일본에서 가장 높은 빌딩으로 유명하다. ‘하루카스300’전망대는 지상 300m 높이로 오사카를 사방으로 내려다 볼 수 있다. 현재는 세계 최고층 이자 아시아 최고층 건물은 약 5년의 공사 끝에 2010년 1월 4일 개장한 아랍에미리트 두바이에 있는 부르즈 할리파로 지상 163층에 828m의 높이를 가지고 있다.
아무튼 일본은 커야 할 건 크게, 그러나 작아야 할 건 작게 만들 줄 안다. 무조건 작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쓸데없는 공간을 줄이고 쓸데없이 큰 부피를 줄여 생산성을 높이는 것이다.
일본의 도시는 얼마나 큰가? 경제 규모도 어마어마하다. 오사카의 경제규모는 한 동안 캐나다의 규모에 비교했는데, 지금은 태국에 필적할 정도다. 그들은 메이지 유신 이후 근대의 서양문물을 받아 들이고 엄청난 발달을 일궈 냈음을 우리는 인정해야 한다.
그들은 비록 오판에서 비롯
된 일이었다 하더라도 미국을 상대로 전쟁을 벌인 나라다. 그들은 전쟁에서 패하고도 6.25전쟁 동안에 금새 회복 했다. 그러나 그것은 우리에게는 재앙이었다. 그로 인해 우리나라는 두 동강이 나고, 전쟁후유증으로 아직도 신음하고
있으니 말이다. 이 무슨 아이러니란 말인가?
그러나 어쨌던 우리는 그네들의
좋은 점은 서슴지 말고 모방해야 할 것이다. 그네들의 이러한 합리성,
효율성, 생산성 지향의 특성이 진공관 라디오의 쓸데없는 부피와
공간을 줄여 트랜지스터를 만들어 낸 원동력이 된 것이지 축소지향의 결과에 의해서 라디오가 작아진 것이 아니라는 점이 강조되어야 할 것이다.
일본에는 어느 도시이건 시내 곳곳에 작은 공원과 큰 공원이 있다. 땅값을 생각하면 불가능할 것 같지만 일본인들은 필요한 곳에는 꼭 작은 규모의 공원이 있고, 구역의 확장과 비례하여 도시 한가운데 더 큰 규모의 공원이 꼭 존재한다는 것이다. 시내를 관통하는 시냇물이나 하천의 수질이 거의 1급수라고 그들은 자랑한다.
하수도는 처리가 되지 않고는 하천으로 흘러 들어갈 수 없도록 되어있다. 도시전체가 너무 청결하다. 버려진 땅이 없다는 뜻은 구석구석 관리되지
않는 곳이 없다는 뜻이다. 따라서 어느 구석이든 관리되고 청소가 되고 있다.
일본인의 식사는 어떤가? 밥공기가 따로 주어지는 것은 우리나 그들이나 마찬가지이지만 반찬도 개인별로 따로 준다. 반찬의 양으로 말하면 너무 적은 듯해서 남길 여지가 없다. 잔반이 있을 수 없으니 낭비가 있을 수 없다.
물론 일본도 가정에서 음식 쓰레기는 나올 것이다. 식당에서도 쓰레기가 나오고 팔다 남은 음식은 버려야 한다. 통계가 없어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그래도 그들은 쓰레기를 많이 줄이고 있을 것이다.
우리 한국인은 음식찌꺼기로 낭비하는 액수가 연간 2조원 (현재는 26조 원으로 추산, 게다가 아예 먹지 않고 버려지는 음식이 1조원대에 이른다.)이 된다고 하던가? 우리는 일본인의 반찬을 보고 쩨쩨하다고 할 수 없다. 위생적이고 절약형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일본의
목욕문화 중에 가장 특색 있는 점을 소개하면 그들은 한국사람들처럼 때를 밀지 않고, 한 가족이 목욕을
하는 경우에는 사용한 물을 재활용 한다는 점일 것이다. 보통 일본인들은 저녁에 탕에 들어가 목욕을 하는데
오전에는 상대적으로 바쁘기 때문이다.
따라서 가장이 퇴근하는 시간에 맞춰 탕에 물을 데워두었다가 식사 후 대개 아버지, 어머니, 자녀 순으로 탕에 들어가서 피로를 푼다. 이것이 지저분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생각보다 그렇지 않다.
탕에 들어가기 전 몸을 깨끗이 씻고 들어가야 하는 암묵적인 규칙이
있기 때문이다. 보통 탕 위를 막아놓는 경우가 많아 앞 사람이 탕 속에 몸을 누인 후에도 다음 사람을
위한 온도를 유지할 수 있다. 무엇보다 귀중한 물을 아낄 수 있다. 일본의
절약정신이 목욕활동을 통해 드러나는 셈이다. 탕의 물은 온 가족이 목욕을 끝낼 때까지 절대 버리지 않는다.
일본인들의
특징을 말하라면 대개 친절하고 겸손하지만, 언행을 너무 조심 하느라 그런지 항상 걱정 속에 사는 사람
같고, 소심하고, 속내를 드러내지 않아 답답하고, 우유부단해 보인다는 것이다. 다만 개인 적으로는 그런데 집단적으로는
의외로 대범하다는 것이다. 이런 특징을 인정한다 하더라도 나는 그들에게는 이상하게도 저력이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그들이 2차 대전을 치르며 선보인 대담성, 인내력, 충성심 등을 보더라도 그렇고, 폐허 속에서도 단 시일 내에 괄목할만한 경제발전을
이루어 낸 능력을 보더라도 그렇게 호락호락한 민족은 아니다. 대체 그들의 이런 정신은 어디서 유래한
것일까?
일본인들은 개인은 별 볼일 없지만 공동체의 일원으로서의 의무와 책임은 다 하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개인은 아무것도 아니지만 자신이 속한 공동체의 명령에는 절대 복종이다. 나아가서 나라가 쓰겠다면 기꺼이 어떤 희생도 마다하지 않는다.
2차 대전 때도 이런 성향이 나타나지 않았던가? 전쟁이 끝나고 수년 동안 밀림에서 연명하고 있던 일본 패잔병의 존재를 기억할 것이다. 이런 정신이 오늘 경제대국 일본을 건설했다.
이런 정신은 일본을 구성하는 네 개의 큰 섬이 모두 바다로 둘러 쌓여 있다는 지정학적 원인에 연유한다고
보여진다. 고대로부터 그들은 섬을 지배하는 성주를 거역했다가는 숨을 데가 없었다. 성주가 모든 선박을 장악하고 있었기 때문에 배를 타고 탈출할 수도 없었다. 그것은
바로 죽는 길이었다. 따라서 그들은 성주에 절대로 복종해야만 살아 남을 수 있었다. 이런 배경이 그들의 삶을 통해 체질화되고 내면화 되고, 오늘의 일본인
정신을 지배하고 있는 게 아닐까? 적어도 지금까지는 그렇다고 볼 수 있다. 앞으로 환경의 변화에 따라 어떻게 변화해 갈지는 두고 보아야 할 것이다.
특히 그들은 완벽성이라고 해야 할까 굉장히 꼼꼼하다. 예를 들면 시계 안에 들어가는 장치인 무브먼트는 전 세계적으로 일본, 스위스, 독일 등 세 나라에서만 제조해서 공급한다. 요즈음에는 중국이 가세했다지만 아직은 이 세 나라의 명성을 따라가지 못한다. 스위스 시계의 95%이상에 들어가는 무브먼트는 스와치그룹 산하의 무브먼트 제조회사 ETA에서 공급한다. 문제는 일본이다. 그들은 초정밀 시계산업에서도 세계적인 경쟁력을 자랑한다.
JAPAN MOVT란 글자가 박혀있는 일본 시계들은 세이코와 미요타(시티즌
산하 무브먼트 회사)와 카시오에서 제작한다. 세이코의 경우
미닛리피터라는 아주 복잡한 기계식 무브먼트를 만들 수 있을 정도로 기술력이 높다. 그랜드세이코 브랜드로
판매 하는 시계는 시가로 1억이 넘는다. 일본인은 어느 곳에서도 섬세한 스몰터치가 이루어 지고 있다.
엔테베 작전의 성공은 궁극적으로 작은 일에 능통한 이스라엘 민족의 특성이
그 열쇠라 할 수 있다. 카터정부 말기에 미군이 이란에서 실시한 미국인 인질구출작전의 실패는 미국인 기질로는 그러한 섬세한 기교를 요하는 작전에는 애초부터 부적절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있었다.
일본이
오늘날 산업과학 분야에서 세계의 첨단을 달리고 있는 것은 바로 이런 꼼꼼하고, 섬세하고, 효율성 지향적인 기질에 기인한다고 해야 할 것이다. 일본인의 균형감각과
효율성 지향적인 기질이 무엇이든지 생산적으로 만들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우리 민족의 특징적인 기질은 무엇인가? 우리나라에도 기적이 일어났다. 삼성전자나 현대 자동차가 그렇고 건설 분야가 그렇다. 그 당시 걸출한 창업주들의 창조적인 마인드가 일궈낸 기적이다. 그러나 이제 2.3세들은 이것을 지키기에도 벅차다. 아쉽게도 더 이상 창조적인 신인 창업주의 활동을 보기가 어렵다. 할 일은 많고 갈 길은 먼데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