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캡슐 호텔
캡슐 호텔이란 말을 들어본
것은 일본여행을 떠나기 얼마 전이었다.
캡슐이란 말이 풍기는 분위기가 있었기 때문에 어떻게 생긴 것인지 대충 짐작은 갔다.
캡슐이란 영어사전에 보면 먹기 거북한 약을 넣는 교갑이라고 되어 있다. 타블렛(알약), 파우더(가루약)등과 함께 약의 모양이나 약을 담은 형태에 따라 분류하는 이름이다.
이
캡슐모양을 본 떠 우주캡슐 (Space Capsule)이란 용어도 생겨났다. 인간이 행성공간을 여행할
때 산소, 기압 등을 일정기간 유지키 위한 밀폐된 최소한의 용기가 바로 그것이다.
1969년 7월 16일 암스트롱, 올드린, 콜린즈를 실은 아폴로 11호가 지구를 떠나 21일에는 드디어 암스트롱과 올드린이 달의 고요의 바다에 착륙하는데 성공하였던 사실은 아직도 우리기억에 생생하다. 이 때 이들이 타고 간 우주선은 그야말로 모든 조건을 갖춘 최소한의 용기였던 것이다.
생긴 모양도 그렇거니와 우주캡슐을 연상할 때 여기서 캡슐이라는 용어를 따다 호텔이름을 붙인 일본인의 절묘한 작명 술은 가히 일품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우주캡슐이
나름대로 우주인이 그 안에 거주하면서 모든 기능을 제대로 수행할 수 있을 만큼 최대한의 공간은 확보하되, 그러나
이 우주선은 에너지를 최소한으로 줄여야 할 만큼 작야야 했다는 것을 생각하면 여기서 캡슐이란 단어를 빌려 쓴 캡슐호텔의 정의는 더 이상의 설명을
필요로 하지 않을 것 같다.
비싼 땅값에도 불구하고 신간센이 달리는 철도역 부근에는 어김없이 올나잇
사우나가 있었고 그 중 일부는 바로 이 캡슐 호텔을 겸하고 있었다.
우리가 도쿄에 도착한 건 여행을 떠난 지 사흘째 되는 날이었다.
우리는 도쿄역 근방에도 이러한 올나잇 사우나가 있을지 궁금했다. 아무리 뒤져봐도 그런 건 보이지 않았다. 하는 수 없이 몇 사람에게 물어 보았는데, 그 중 한 사람으로부터 확실한 대답을 들을 수 있었다. 동경역전에는 그런 시설이 없고, 그대신 우에노 쪽으로 가면 있을 것이라는 것이었다.
우리는 그나마 천만 다행으로 생각했다. 만일 동경시내 한복판에서 올나잇 사우나를 발견하지 못한다면 우리의 처지는 아주 난처할 뻔 했으니까 말이다.
우에노까지는 순환열차를 이용했다. 우리는 처음에 도쿄역과 우에노역 사이의 교통사정이 어떨지에 대해서 조금 신경을 썼었다. 그야 버스, 지하철은 물론이고 택시도 있을 것이다. 도쿄시내의 교통수단에 대해서 걱정한다는 것은 넌센스일 것이다.
하지만 우리의 걱정은 즘 색다른 데가 있었다. 우리는 배낭을 매고 있었던 것이다. 무조건 역사내의 락카에 보관시길
수도 없고, 그렇다고 짐을 진 채 시내를 헤매고 싶지도 않았다. 그
동안에 배낭을 메고 걸어 다녀 보았는데 생각보다 무척 힘들었다. 그렇지 않아도
정신적 스트레스가 심한 판에 짐까지 메고 다니다 보니 심신이 피곤해졌던 것이다.
가급적 역에서 가장 가까운 교통수단, 가장 가까운 숙박시설을 찾아야 하는 것이 우리의 지상목표였던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런 상세한 정보가 없이 여행을 떠났다가는 자칫하면 낭패하기 십상인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도쿄를 몰라도 너무 몰랐다. 굳이 택시나 버스, 지하철을 이용하지 않아도 되었다. 도쿄역에서 우에노를 통과해서 동경시내를 한 바퀴 도는 순환열차가 쉴 새 없이 다니고 있었던 것이다.
지하철이라면 몰라도 JR에서 운용하는 철도가 이렇게 잘 발달되어 있는 줄은 미처 몰랐던 것이다.
우리는 당연히 JR 패스를 이용해서 자유로이 타고 다닐 수 있었다.
우리는 도쿄시내에 체류하는 동안 이 순환철도를 아무 때나 올라타고 아무 때나 내릴 수가 있었다.
이것만은 우리가 JR 패스를 가지고 오면서도 도쿄에 도착할 때까지 미처 몰랐던 사실이었다.
도쿄를 잘 아는 사람들에게는 이런 정도의 이야기는 우습게 들릴지 모르지만, 아무리 유용한 정보라도 모르는 사람에게는 아무 소용이 없는 법이다. 알면 큰 도움이 될 수 있는 것인데도 말이다. 우리는 도쿄 지리나 교통정보에 대해서는 캄캄했다. 당연히 우리는 버스나 지하철을 이용할 생각만 했을 뿐이다.
그러나
이 순환철도의 존재는 사소한 것 이었지만, 우리에게는 더할 수 없이 유용한 정보였다. 대체로 정보란 그런 것이 아니겠는가?
우리는 마침내 우에노에 도착해서 캡슐 호텔을 발견할 수 있었다. 마침 운 좋게도 우리가 들어간 날 호텔은 오픈 기념으로 반액 바겐 중이었다.
우리나라 식으로 말하면 반액 세일인 셈이다.
영어의 바겐세일은 이처럼 외국에 가면 외국 사람들 기호에 따라 마구 잘려 나가는 모양이다. 일본사람들은 바겐이라고 하고 우리는 세일이라고 부른다. 이 호텔은 최근 개관을 한 탓으로 시설이 깨끗하고 화려했다.
우리는 한참 동안 사우나탕에 몸을 담갔다가 마침내 휴게실로 이동해서 시원한 맥주 한 잔씩 들었다. 탕이나 휴게실은 어느 고급 호텔 못지 않게 넓고 깨끗했다.
우리는 난생 처음으로 캡슐처럼 생긴 독방(?)에 들어가서 여독을 풀게 되었다. 한 사람이 하룻밤을 자는데 이보다 더 넓은 공간이 필요하다면 그건 사치요, 낭비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으니, 나는 어느새 일본인이 다 되어버린 것인가?
그들은 혼자서 잠을 자는 개인용 침실에는 최소한의 공간만을 할애하지만, 여러 사람이 같이 쓰는 사우나 탕이나 휴게실 같은 곳은 넓고 편리하게 꾸며 놓았다. 우리는 이제 일본 사람들이 추구하는 것이 무엇인지 어렴풋이나마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일본 국내를 출장 다니는 여행객들이 하루 이틀쯤이야 이런 곳에서 쉬는데 전혀 불편하지 않을 것이다. 굳이 비싼 고급호텔이나 여관을 이용하지 않아도 되지 않겠는가?
특히 기차여행을 하는 사람들에게는 역으로부터 근거리에 위치한 이런 호텔이 편리할
것이다. 또 시간에 구애 받지 않을 수 있는 장점이 있다. 굳이
예약을 할 필요가 없고, 어느 시간에 들어가도 만원 사절이란 있을 수 없다.
만일 캡슐이 만원일 때는 올나잇 사우나에서처럼 여러 사람이 같이 자는 큰 방을 이용할 수 도 있다. 가장 실용적인 숙박시설이었다.
체면을 중시하는 우리 한국사람들은 올나잇 사우나니, 캡슐 호텔이니, 배낭이니, 락카니 하는 게 좀 친근하게 다가오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비즈니쓰에 바쁜 사람들, 또는 배낭 여행을 하는 사람들에게는 아주 편리하고 경제적인 시설이다.
우리에게는 아직 좀 낯선 경험이기는 했지만, 나는 이 참에 일본인들의 생활방식을 살펴보고, 그들이 무엇을 생각하며, 그들의 사고가 그들 생활 속에 어떻게 녹아 들었는지를 알아보고 싶었다. 내가 무슨 문화탐방을 나선 것도 아니고, 그들에 대한 어떤 연구목적으로 여행을 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나는 이렇게 직접 부딪쳐 불 수 있는 이번 기회를 소중하게 생각했다.
나는 이런 게 좋았다. 그 어떤 호사스런 여행 보다 나는 이런 여행을 선호했다. 쥬디스 라이트는 그녀의 ‘단 하나의 결심’에서 우리들의 삶은 순간순간 우리가 만드는 선택들, 우리가 간여하는 행위들, 우리가 회피하는 행위들이 쌓여서 만들어진다고 했다. 그리고 자신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이 축복과 기회가 되어 배우고, 성장할 수 있는 토대가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고 말했다. 즉, 삶의 모든 순간이 모험의 연속이다. 삶을 모험처럼 살기로 했다면 그 핵심은 환경이나 사건이 아니라 그 속에서 ‘기회’를 찾는 태도를 의미한다고 말했다. 이 캡슐이 지니는 의미가 무엇인지 캡슐이 주는 교훈이 무엇인지 진지하게 받아 들여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