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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근길

작성자이윤희|작성시간16.06.07|조회수29 목록 댓글 0

출근길 / 이영주

피 냄새 자욱한 담벼락 사이로 한 사나이가 걸어간다
사내의 빗장뼈가 양복 밖으로 삐져나와 있다
길고 구불구불한 빗줄기가 손을 뻗어
꺼진 알전구를 빙빙 돌린다
어젯밤 하얗게 그려진 사고의 흔적이
밀가루 반죽처럼 사방으로 번진다
사내는 덜컹거리는 몸을 제자리에 쓰윽 집어넣고 출근하는 길이다
불타고 남은 자동차 철제 뼈대가
히죽거리며 축축하게 빛나고 있다
새벽이면
담벼락의 혀가 쑥 늘어진 좁은 골목을 헤치며
사내는 끈적끈적하고 묘한 쾌감에 젖는다
어젯밤 네가 사라진 자리,
깨진 뒤통수를 흘리고 간 자리,
오래된 바퀴가 너에게 구멍을 뚫고 지나간 자리,
사내는 잠시 불꺼진 신호등을 본다
무거운 도시락 가방이 비에 젖는다
이제 너와 나는 한 종족으로 서로의 몸을
도시락처럼 미리 까 먹으며 도시의 출근길을 건너고 있다
양복 밖으로 조금씩 삐져 나가는 텅 빈 뼈들이
즐거운 허기에 딸깍거린다
장마가 시작되었다
때로 출근하는 모든 길이 관 속으로 뻗길 꿈꾼다
이제 너와 나는 서로의 뼈를 이어 붙이며
붉은 빛이 점멸하는 횡단보도를 막 건너려는 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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