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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고마 구다라 시라기란?

작성자이인수|작성시간16.06.11|조회수133 목록 댓글 0




일본, 고마 구다라 시라기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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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제사는 어떤가? 제주가 제사상 앞에 정중하게 무릎을 꿇고 두 손으로 향불에 분향을 한 뒤 절을 한다. 그런 다음 모든 사람들이 손을 모아 서있고 제주가 신위 앞에 나아가 분향하고 제주는 모사 그릇에 술을 3번 나누어 붓는다. 이를 강신이라 하는데 신위께서 강림하시어 음식을 드시기를 청하는 것이다. 신위라 함은 말할 것도 없이 조상신을 말하는 것이다. 우리는 불교가 들어 오고 나서 사당이 더 발전하지 못했고, 조선 시대에들어 와서는 유교 식으로 제를 지내게 되다 보니 그전의 전통은 맥이 끊겼지만 이처럼 조상신을 모시는 전통만큼은 계속 이어져 왔던 것이다. 그리고 우리나라 각 처에는 아직도 사당이 남아 있어 위패를 모시고 있는 곳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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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동난계사

 

영동 난계사는 충청북도 기념물 8(1976.12.30)로 조선 전기 문신이자 악성(樂聖)인 난계 박연(13781458) 선생의 위패를 모신 사당이다. 1972년 다시 세운 이 건물은 앞면 3칸·옆면 2칸 규모이며,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사람 인(人)자 모양의 맞배지붕으로 꾸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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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봉 정도전의 사당 문헌사가 있는 진위면 은산리 일대는 봉화 정씨의 집성촌으로 1912년 봉화 정씨 문중에서 건립하여 1930년 당시의 종가 터에 옮겨 세웠으며, 1970년 중개축하였다고 하는데 사당 5, 외삼문 3, 홍살문 3칸으로 맞배 지붕에 한식 골 기와를 얹은 형태이다. ‘유종공종(儒宗功宗)’이라는 현판이 걸려 있는

사당 안에는 그의 위패와 영정이 모셔져 있으며 종중을 중심으로 매년 봄가을에 제향을 올린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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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영장군1316년에 홍성군 홍북면에서 태어났다. 16세 때 청렴한 관리가 되고 이후 남으로는 왜구를 섬멸하고 북으로는 오랑캐를 무찌르는 위대한 장군으로 위엄을 떨쳤다. 원래 지금 사당 자리는 어느 강신 무녀가 집안에 최영 장군의 영정을 걸어놓고 수업을 하던 곳으로, 그 무녀가 죽고 난 후 마을에 우환이 자주 생기자 그가 살던 오두막집을 헐고 사당을 세웠다고 한다.


최영장군사당에 대한 이미지 검색결과http://www.jejutour.go.kr/apps/tour/thumbnail.php?i=/tour/fada5eae98722b99284168a553f23c59.jpg&w=700&h=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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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수에는 임진왜란 때 진주 촉석루에서 순국한 주논개의 초상화를 모시고 제사 지내는 사당이 있다.

https://i.ytimg.com/vi/liG8GqTUOVE/maxresdefault.jpg논개는 장수출신으로 1953년 임진왜란 당시 진주성이 일본군에게 함락될 때 왜장을 유인하여 순국한 의기이다. 사료가 보여주는 사실에 근거하여 장수 군민들은 논개의 고향인 장수 남산에 사당을 건립하고, 1956년 함태영 부통령이 친히 쓴 의암사 액자를 걸고, 윤여환 화백이 그린 영정을 모시고 의암사라 했다.

 



공민왕 사당은 조선조 초기 조정에서 서울 한강변 마포나루에 광흥창이란 창고 (군량창고)를 지을 때 고려 제 31대 공민왕이 서강동에 사는(창고지기) 노인에게 현몽 하여, 이곳에다 사당을 짓고 제사를 지내면 창고와 서강 일대가 편안하고 번창 하리라 하여 나가보니 공민왕 영정이 발견되어 그곳에다 공민왕사당을 짓게 되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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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과 같이 몇 가지 예를 들어 봤지만 우리나라에서 사당은 제자리 걸음을 걸었다. 그것은 불교의 전래 때문이다. 한민족은 원래 마을 단위로 존재하는 서낭당(또는 성황당)을 질병, 재앙, 불행을 막아주는 수호신으로 믿어왔다. 처음에는 돌로 쌓아 무더기를 만들면서 시작됐던 서낭당은 후에 당산 등을 거쳐 사당으로 발전했지만 불교의 유입 이래 더 이상 발전하지 못했던 것이다.

 

삼국 유사에 보면 신라의 시조 혁거세를 제사를 지내는 시조묘(始祖廟)가 생긴 것은 서기 6년인 2대 남해왕(南解王) 3년이었는데, 그 후 487년에는 신궁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신궁의 제사자인 무녀(巫女)는 역대 왕의 자녀라든가 혹은 왕족의 여인 중에서 발탁 되었다. 신사, 신궁은 조신묘(祖神廟)에서 비롯 된 것이었다. 이것은 우리나라에서는 단절 되었지만 일본에서 번성했다.

 

일본의 사찰 쪽에 신사가 모셔져 있는 센뇨지다이히오우인(千如寺大悲王院).

http://img.segye.com/content/image/2009/09/01/20090901000817_0.jpg신라에서는 불교가 성행함에 따라 신궁은 소멸하고 말았지만, 이 시기 전후에 일본으로 건너 간 도래인들은 신불습합 (神佛習合)을 이루었다.

 

신불습합이란 일본 고유의 종교인 신토(神道)와 외래 불교의 융합을 가리키는 말로 신토와 불교의 융합은 6세기 중엽 불교가 들어 왔을 때 이루어지고, 아직도 일본인들은 흔히 가정에 신토의 가미다나(神棚)와 불교의 부쓰단(佛壇)을 함께 두고 있다고 한다. 따라서 사찰 안에 신사가 함께 있는 데도 많다.

 

도래인들은 일본 각지에 모여 살다가 거기서 호족이나 씨족이 갈라져 나가는데, 흩어질 때마다 새로운 곳에 자신들의 조신(祖神) 또는 씨족신(氏族神)을 모시는 신사, 신궁을 만들어 나갔다. 따라서 일본에는 수 많은 시라기(新羅)신사, 구다라(百濟)신사, 고마(許麻, 高麗)신사 등이 버젓이 한국 명칭을 그대로 쓰고 있다.

 

http://t1.daumcdn.net/news/200701/03/segye/20070103085416.677.0.jpg오사카부 히라카타시 니시노초 나카노미야 언덕에 올라서면 '백제왕신사'(百濟王神社)라는 큰 간판이 우뚝 서 있다. 백제왕신사는 백제사(百濟寺) 사적공원 경내와 서쪽으로 잇대어서 함께 자리 잡고 있다. 백제왕신사는 그 옛날 구다라스(百濟洲) 땅에서 백제 왕족이 조상을 제사 지내기 위해 세운 사당으로 백제사 터전 사적과 함께 매우 유서 깊은 명소이다. 따져 보면 우리나라에 없는 백제 뿌리의 백제왕족 사당이 오히려 여기 오사카땅에는 엄존하고 있지 않은가!


그만큼 중요한 이 구다라스 즉 오늘의 오사카 땅 난파진 앞바다는 본국 백제와의 직통 항로가 되었던 곳이다. 그러기에 백제인이 일본 본토에서 최초로 개척한 구다라스땅에 가장 먼저 백제왕족 사당이 세워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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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신토는 도래인들이 가지고 간 우리나라의 조상신을 믿는 신앙이며 그 신앙을 담는 그릇의 역할을 한 것이 사당이었는데 그것이 발전해서 오늘의 신사가 되고 신궁이 된 것이다.

 

일본은 어떻게 해서 그토록 많은 신사, 신궁이 발달 했을 지를 생각해 본다. 그들은 한반도를 떠나서 신 천지를 찾아나선 사람들이다. 혹은 조국이 망해서 어쩔 수 없이 망명의 길을 떠나 일본 땅을 찾아 온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이역만리 타향에서 새로운 삶을 개척하기 위해, 가족을 위해, 죽기로 결심하고 일했을 것이다.


그러다 보니 고향 땅에 두고 온 조상님이 그리웠을 것이다. 그들의 조상님을 모시는 사당은 그들이 의지하고 싶고, 기대고 싶은 유일한 위안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들의 조상신신앙은 한반도에 남아 있는 사람들보다 더 절실했을 것이다.


또 곁에서 부모나 조부모의 이런 모습을 지켜본 자식들이나 그 후손들은 조상 대대로 이런 전통을 물려 받았을 것이다. 그로 인하여 사당은 신사로, 신사는 신궁으로 확장되어 나간 것이다. 그러나 이제 1.000~2.000년 세월이 흐르며 모든 역사는 빛이 바래고 잊혀져 갔다. 이제는 그들 후손들은 자신들이 어디서 왔는지 까마득히 잊어버렸다. 그러나 이를 두고 어찌 그들을 탓할 수 있으랴! 원래 인류 스스로가 어디서 왔는지 까맣게 잊었지 말입니다.

 

일본에서는 같은 한자라도 발음이 틀리다, 고마(高麗)는 고구려, 고라이(高麗)는 고려를 말한다. 구다라(百濟)는 백제를 말한다. 한자로 百濟라고 써놓고 왜 구다라라고 읽는가? 그건큰 나라라는 뜻이다. 백제는 일본의 모국이었다. 시라기(新羅)는 신라를 말한다. 일본에는 이런 이름을 하고 있는 신사, 신궁이 수도 없이 많다. 고마, 구다라, 시라기라는 지명도 엄청나게 많다. 이게 무엇을 의하는 것인가?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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