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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산문】

정심정기(正心正己)

작성자여물(與物)|작성시간12.05.23|조회수552 목록 댓글 3

  정심정기(正心正己)

 

                                                                                                                                         여물(與物)/채 동 선

  우리의 전통 활인 국궁을 배운다고 활터에 들락거리기 시작하고 나서 채 반 년이 되지도 않았을 때 나는 큰 부상을 입었다. 부러진 화살이 왼손의 엄지 부근 손등을 통해 손바닥까지 관통을 한 것이다.

  활터에서 일어날 수 있는 사고 중 제일 큰 사고라고 했다. 남들은 수년 아니 수십 년 동안이나 활을 쐈어도 일어나지 않는 사고를 내가 당했다는 사실로 인해 나는 한동안 혼란스러웠다. 화가 나 스스로에게 분노하기도 했고 주위엔 창피하기까지 했다.

  보름동안이나 나는 손에 붕대를 칭칭 감고 다녔다. 허물없이 지내는 친구들은 과녁을 맞혀야지 손을 맞혀서 되겠느냐며 웃음으로 나를 위로했다. 사고를 당하고 병원에서 응급처치를 받은 직후부터 나는 과학기술인 출신답게 원인규명에 나섰다.

  원인은 두 가지로 압축되었다. 첫째가 화살이 짧아 시위를 당겼을 때 화살촉이 활 몸체 안쪽으로 들어오는 ‘몰촉’인 경우다. 그러나 가능성은 낮다. 실제로 내가 사용하는 화살의 길이는 내 체형에 비해서는 긴 편이고 또한 그나마도 끝까지 시위를 당기지 못한다는 지적을 주위에서 많이 받아왔던 터였기 때문이다. 몰촉의 상태가 지속되었다면 사단이 일었어도 벌써 났어야 했는데 그동안 아무 일이 없었다는 것이 결정적 증거다. 그러나 몰촉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증거도 나왔다. 사고가 난 현장에서 세 동강 난 화살의 잔해를 발견했기 때문이다.

  몰촉이 아니라면 화살에 이상이 있어 당겼던 시위를 놓을 때 부러지면서 내 손을 찍었을 수가 있다. 물론 활을 쏘기 전 화살의 이상 여부를 하나씩 일일이 점검을 하지 않은 것이 중요한 원인이 될 수도 있겠는데 허나 이도 이해가 안 되는 것이 화살을 구입한 지가 채 보름이 되지 않을 정도로 새것이라는 것이다.

  양쪽 다 심증은 있으나 물증이 명확하지 않고 어느 쪽이 되었든 워낙 순간적으로 일어났던 일이라 현장 상황을 제대로 기억하지 못하는 나로서는 물리적인 규명이 불가능했다.

  과학적으로 규명이 되지 않으면 비과학적으로 할 수도 있다. 나는 최근에 활에 미쳐 가톨릭 신자로서 꼭 갔어야 할 주일 미사를 밥 먹듯이 빼먹었다. 빼먹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냉담’상태다. 당연히 하느님께서 노하셨을 테고 경고차원에서라도 이런 끔찍한 벌이 필요했을지도 모른다. 반대로,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느님이 나를 지극히 사랑하셔서 해야 할 다른 많은 것들을 돌보지 않고 활에만 미쳐 있는 내게 자제할 것을 일깨워주기 위해서 그리하셨을 수도 있다. 둘 다일 수도 있고 둘 다 아닐 수도 있는데 이것은 하느님만이 아는 것으로 상상은 자유이되 내 권한 밖의 일이라 단언할 수는 없다.

  역사를 되짚어 보더라도 활은 위험한 물건이다. 선사시대부터 존재했을 것이라 짐작이 되는 활은 처음엔 새나 짐승을 잡는 도구로 사용했다. 그러다가 부족국가가 생겨나고 이들 사이에 땅을 빼앗기 위해 싸움이 벌어질 때부터 활이 사람 잡는 무기로 변해버렸다. 그러나 과학의 발달로 조총이라는 새로운 무기가 개발됨으로 해서 활은 무기로서의 기능을 상실하게 되었는데 그 이후 지금까지 활은 인간이 지녀야 할 ‘씩씩한 기상과 굳은 절개’를 뜻하는 호연지기(浩然之氣)를 기르는 방편으로서만 명맥을 유지해 오다가 현대에 들어와 궁도라는 이름으로 스포츠가 되어 남녀노소 누구나 즐길 수 있게 되었다.

  활은 호연지기를 기르기엔 더없이 좋은 도(道)이긴 하나 위험한 탓에 꼭 알아야 할 계명(戒名)과 지켜야 할 원칙이 있다. 그래서 각 활터마다 ‘궁도구계훈(弓道九戒訓)’과 ‘집궁제원칙(執弓諸原則)’을 벽에다 걸어놓고 사원(射員)들이 배우고 익히기를 권장하고 있다.

  궁도도 엄연한 스포츠인 탓에 승부를 가려야하는 운동이다. 그러다 보니 지금까지 나는 말로는 속세에서 유유자적한 삶을 누리는 한량이 되겠다고 했으면서도 실제로는 시수꾼(화살 50발을 날려 30발 이상을 과녁에 맞히는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을 해 왔던 것도 사실이다. 한 발이라도 더 맞히기 위해 바람의 영향을 덜 받는 강한 활을 들어야했고 비거리를 늘리기 위해 가벼운 화살은 필수가 되었다. 활을 내기 위한 기본인 궁체가 잡히기 전인데도 과녁에 관중을 시키기 위한 기교를 배우기 시작한 것이다. 지금은 없어진 줄로만 알았던 젊은 시절의 승부사 기질이 세월이 무상하게 지났음에도 되살아났는지 모르겠다. 그래서인지 최근엔 시수(과녁에 명중을 하는 화살의 수)가 좋았다. 아직 ‘신사(新射)’란 딱지가 떨어지지도 않은 주제에 당장 명궁이라도 된 듯 거들먹거렸고 활터의 하늘이 높고 맑은 만큼 내 자만심은 높았고 기분도 맑았다.

  사고를 당하고 난 후에야 나는 ‘몸과 마음을 바르게 하라’는 정심정기(正心正己)의 계훈을 떠올렸다. 활은 마음을 다스리지 않으면 쏠 수가 없다고 한다. 마음을 다스리는 것이 호연지기이고 이를 일깨워 주는 계훈이 정심정기인 것이다. 매일같이 활터에서 만났으면서도 읽기만 했지 실천을 해 오지 않은 결과가 이번의 참사로 이어진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중국 춘추시대 병법가인 손무(孫武)가 지었다는 병법서인 「손자(孫子)」 모공편(謀攻篇)에 보면 ‘상대를 알고 나를 알면 백 번 싸워도 위태롭지 않다’는 말이 있다. 그런데도 나는 지금까지 상대인 활에 대해서만 알려고 했지 나 자신은 알려고도 하지 않았던 것이다. 손자에 비해 백 년쯤 뒤에 태어났던 소크라테스까지 일찍이 ‘너 자신을 알라’라고 했음을 상기해 보면서 앞으로 가져할 나의 마음가짐이 무엇인지 생각하게 되는 요즘이다. (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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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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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임수진 | 작성시간 12.05.23 여기 수원에도 국궁장이 있어 주말에 성곽을 따라 산책을 하던 도중 흥미있게 보았더랬는데...멋지십니다. 얼마전 상영한 부러진 화살이라는 영화도 생각나고...글 잘 읽고 갑니다. 다치신 곳에 상처가 빨리 아물기를 기원합니다.
  • 답댓글 작성자여물(與物)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12.05.24 고맙습니다, 수진님. 저도 손자 보러 가끔 수원엘 갑니다만 아직 화성을 둘러보질 못했네요.
  • 작성자김미선, | 작성시간 12.12.01 "정심정기(正心正己) "긍정적인 사유의 기본이 되는 말씀인 같네요. 한가지를 당하고 만가지를 깨치는 고운 심성의 수필 즐감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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