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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예사조자료】

<우리나라의 문예사조> 2. 우리문학과 낭만주의

작성자文藝感性|작성시간11.01.20|조회수535 목록 댓글 0

<우리나라의 문예사조> 2. 우리문학과 낭만주의


 
2. 우리문학과 낭만주의

서구적인 시각에서 볼 때 한국의 근대문학은 짧은 기간 속에서 낭만주의, 상징주의, 사실주의, 자연주의 , 퇴패주의 등이 혼거하고 있어서 문예사조의 박물관을 연상하지만 적어도 시 장르에 있어서는 낭만주의로 인식하는 것이 일반화 되어 있다고 할 것이다.
한국에서는 1920년대에 낭만주의가 대두되게 되었으며 동인지 《백조(白鳥)》《장미촌》《금성》등 낭만주의 문학의 거점이 되었던 3대 문예동인지가 그 중심으로 활동을 하였으며 그 주된 정서는 감상과 허무, 좌절에서 오는 울분으로 요약 할 수 있고 전통적 도덕과 인습에 반발하면서 개인의 가능성과 창조적 가능성에 관심을 기울였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1920년대 초기의 시인들이 거의가 현실의 부정을 인식의 공통점으로 하고 있으면서도 그 부정되어야 할 현실을 식민지 치하의 정치적이거나 사회적인 원인에서 찾는 것이 아니라 불합리한 인습과 문학적 후진성에서 찾고 있음을 알 수가 있다. 즉 이들의 의식은 현실이나 역사인식에 투철했다기 보다는 지극히 피상적이고 감상적인 데 치우쳐 있었다고 함이 타당하리라 생각한다.
이러한 현상은 개화기에 나타난 보편적인 사회의식, 즉 자국 : 외국, 개화 : 반개화라는 보다 큰 갈등관계에서 개인 : 사회라는 보다 축소된 갈등관계로 전이된 결과로 보여 진다. 개화기에 있어서 갈등관계는 개화든 수구든 자국의 보호라는, 사화와 관계된 큰 테두리 속에서 유지될 수 있었다고 한다면 근대초기에 있어서의 갈등관계는 나와 관계된 축소지향적인 것이면서도 역사의식에서는 유리된, 감상적인 차원에 있었던 것이다.
한국의 근대시가 낭만주의로 지칭될 이러한 경향을 Elf 수밖에 없었음을 우리는 다음과 같은 곳에서 유추해 볼 수 있지 않을까 한다.
① 3.1운동 이후 일제의 대 한반도 정책이 무단정치에서 문화정치로 바뀌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일제는 무단정치의 결과 거국적인 독립의식이 싹텄다는데 착안하여 문화정치로 이를 무력화시키고자 했다. 이에 따라 지식인들의 관심을 정치. 경제적인 곳에서 문화적인 곳으로 돌리고자 했던 것이며 그것이 바로 문화정치의 목적이었고 이에 의해 각종 신문과 잡지가 출현하게 되었으니 실로 교묘한 일제의 탄압정책의 다른 면이었다고 할 것이다.
② 당대 문인들의 연령이 20세 전후의 지식인이었음을 들 수 있다. 연령적으로 이들은 감수성이 예민한 청년기로서 좌절과 격정, 기성의 것에 대한 반항, 유행충동 등 일반적으로 청년기에 겪는 심리상태가 투영될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③ 당시 세계의 정신적 조류가 데카당에 심취해 있었음을 들 수 있다. 특히 일본을 거쳐 우리나라에 수용된 러시아의 우울문학이 많은 영향력을 행사했을 것이고 이런 것들이 3.1운동 이후 국내적 정신기운과 쉽게 부합되었을 것이다.

■ 참고 ■

① 장미촌 薔薇村
1921 년 5월 24일 창간되어 통권 1호로 끝났다. 발행인은 미국인 선교사 필링스(한국 이름은 변영서)였고, 편집인은 황석우(黃錫禹)였다. 4·6판, 20면이다. 동인으로 황석우·변영로·노자영·박영희·박종화·신태악·박인덕·오상순 등이 참여했다.

수록된 작품으로는 시에 박영희의 《적(笛)의 비곡》《과거의 왕국》, 노자영의 《피어오는 장미》, 박종화의 《우윳빛 거리》《오뇌의 청춘》 등과 박인덕의 번역시 《콜럼버스》 등이 실려 있다.
② 백조 白潮
1922 년 l월 9일 창간된 순문학 동인지.
편집인 홍사용(洪思容). 발행인 H.G.아펜젤러. 경성문화사 발행. 동인은 홍사용·박종화(朴鍾和)·현진건(玄鎭健)·이상화(李相和)·나도향(羅稻香)·노자영(盧子泳)·박영희(朴英熙)·안석영(安夕影)·원우전(元雨田)·이광수(李光洙)·오천석(吳天錫) 등이며, 3호부터 김기진(金基鎭)이 참가했다. 한국 근대 낭만주의의 화원(花園)으로 불리는 이 잡지는 통권 3호로 끝났지만 각 권마다 중요한 작품이 수록되었다.
제1호에 월탄(月灘:박종화)의 시 《밀실(密室)로 가다》를 비롯하여 이상화의 《말세의 희탄(阮嘆)》, 나도향의 소설 《젊은이의 시절》, 1922년 5월에 간행된 제2호에는 나도향의 소설 《별을 안거든 우지나 말걸》, 현진건의 《유린(蹂춥)》, 회월(懷月:박영희)의 시 《꿈의 나라로》, 노작(露雀:홍사용)의 《봄은 가더이다》, 월탄의 《흑방비곡(黑房悲曲)》, 1923년 9월에 간행된 제3호에는 시에 이상화의 《나의 침실로》, 노작의 《흐르는 물을 붙들고서》 《나는 왕이로소이다》 《그것은 모두 꿈이었지마는》, 소설에 나도향의 《여이발사(女理髮師)》, 월탄의 《목매이는 여자》, 희곡에 월탄의 《죽음보다 아프다》(전1막) 등이 실려 있다.
이들 작품에는 3·1운동의 실패에서 온 절망감이 그대로 반영되어 애수와 한, 그리고 자포자기적인 영탄(詠嘆)과 유미탐구(唯美探究)의 경향이 뚜렷하다.
③ 금성 金星
1923 년 11월에 창간된 한국의 시(詩) 전문 동인지
당시 일본 와세다대학[早稻田大學] 문과 유학생들을 중심으로 창간된 이 시지(詩誌)는 처음에는 격월간 발행을 예정하였으나, 24년 1월 통권 3호로 그쳤다.
창간 동인으로는, 손진태(孫晋泰) ·양주동(梁柱東) ·백기만(白基萬) ·유엽(柳葉) 등이고, 이상백(李相伯) ·이장희(李章熙)는 3호 때 참여하였다. 대체로 낭만주의적 경향이 주조를 이루는 창작시를 주로 하였으며, 번역시와 평론도 게재하였는데, 이 잡지를 통하여 김동환(金東煥) ·박용서(朴龍瑞) ·이원영(李元永) 등이 추천시(推薦詩)를 발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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