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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병전우회]해병대 소장(예) 이재돈 장군의 백령도 답사기

작성자솔개|작성시간03.05.17|조회수541 목록 댓글 0
해병대 소장(예) 이재돈 장군의 백령도 답사기
'한번 해병은 영원한 해병이다.'

해병대 출신 이재돈 전소장(63·해사 18기)이 백령도 주둔 해병대 6여단 흑룡부대(여단장 우경하 준장)를 찾았다. 이전소장은 1964년 해군사관학교를 졸업하고 9월 첫 부임지가 백령도였다. 이곳에서 10개월간 근무한 이전소장은 그후 연평도, 제주도, 김포, 포항 등지에서 근무했다. 그러나 정작 백령도는 또다시 발령받지 못했다. 지난 92년 해병대 군복을 벗은 이전소장은 6일 40여년 만에 goodday 취재진과 함께 백령도를 찾았다.

이전소장은 후배 해병들을 격려하고, 긴장과 평화가 공존하는 백령도 24시를 눈으로 확인하기 위해 찾은 것이다. 흑룡부대원들은 백령도를 찾은 이전소장을 뜨거운 동지애로 반겼다.

백령도는 가깝고도 먼 섬이다. 가장 가까운 육지인 황해도 장연 땅과의 거리는 불과 10여km. 하지만 인천항에서는 무려 200km의 뱃길을 헤쳐가야 되는 머나먼 섬이다. 시속 40노트의 초쾌속선으로도 4시간이 넘게 걸리는 거리다 백령도는 접적지역(接敵地域) 특유의 긴장감이 흐른다. 연락선이 닻을 내린 용기포구에서 접하는 군인은 팔각모를 쓴 해병대원이다. 빨간 바탕에 노란 글씨로 해병대 정신을 강조하는 각종 표어 간판들이 곳곳에 서 있어 백령도가 '해병대의 섬'임을 짐작케 한다.

이전소장은 "40년 전과 지금의 백령도는 많이 달라졌다"고 회상했다. 40년 전 백령도에 주둔한 부대는 해병대 중대급이었다. 지금은 여단급으로 격상됐다. 예전에는 중대본부가 백령초등학교 인근인 진촌에 주둔했지만 지금은 ○○지역으로 옮겨졌다.

북한의 입장에서 보면 백령도는 옆구리에 겨눈 비수와 같은 곳이다. 북한은 백령도 해병대 여단에 맞서 7배 이상의 병력인 1개 군단을 주둔했다. 또 백령도를 빼앗기 위해 침범도 많이 했다. 그러나 이전소장은 "박정희 전대통령이 백령도를 사수하기 위한 강력한 대북정책을 펼쳤고, 여기에 불사조 정신으로 무장된 해병대가 상주해 있었기 때문에 백령도를 넘볼 수 없었다"고 주장했다.

백령도에 근무하고 있는 해병대의 자부심은 대단하다. 장병들은 "북한에 인접해 있는 서해안 최북단을 지킨다는 자부심 속에 병영생활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곳에 근무 중인 해병들은 '귀신도 잡겠다'는 번쩍이는 눈빛으로 철통 경계작전에 임하고 있다. 참모장 조중현 대령은 "우리는 후방을 보며 살지 않고 전방을 보며 24시간 철통 경계 작전에 임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전소장은 이 부대 장교들을 대상으로 '해병정신'에 대해 강연했다. 이전소장의 한마디 한마디는 해병의 역사였고, 해병의 정신이었다. 이전소장의 강연이 끝날 때쯤, 긴급 방송이 강의실 스피커를 타고 흘러나왔다. "10시22분 북한조업선이 NLL을 침범했다. 계속 관찰하겠다"는 내용이었다.

순간 강의실은 긴장이 흘렀다. 그러나 이곳 해병들의 귀에는 익숙해진 내용이다. 북한 조업선이 하루에도 수차례 침범해 오고 있기 때문이다. 긴장의 끈을 놓고 있지 못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전소장은 나흘 동안 백령도 해병대 방문을 끝내고 여객선에 몸을 실었다. 용기포구를 떠나는 여객선 뒤로 '한번 해병은 영원한 해병이다'라는 해병대 정신 표어가 더욱 선명해 보였다. 이전소장은 해병대를 떠나지 않았다. 영원한 해병으로 남아 있었다.

글·사진/백령도〓정병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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