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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해김씨 하나의 본관, 148公 분파

작성자쇠금산|작성시간19.04.18|조회수1,138 목록 댓글 0


 

김해김씨 하나의 본관, 148분파

 

가락선원세계(駕洛璿源世系)’에 의하면 김해김씨는 태조 수로왕(首露王) 이후 10세 양왕에 이르러 신라에 합병되었으나, 11세 김무력(金武力)의 대부터  번창한 것으로 나타나있다. 김무력(金武力)은 신라조에 각간(角干)의 벼슬을 한 뛰어난 무장(武將)이었으며 또한 그의 아들 12세 김서현(金舒玄)은 신라 진흥왕의 아우 숙흘종(肅訖宗)의 딸과 혼인함으로써 신라의 성골 왕실과 인척을 맺고 가락국(駕洛國)을 합병, 소판 대양주도독안무대양주제군사장군(蘇判 大梁州都督按撫大梁州諸軍事將軍)의 지위에 올랐으며,  김서현의 아들, 13세 증흥무대왕(贈興武大王) 김유신(金庾信)은 김해김씨의 후손들이 중시조(中始祖)로 모시고 있을 뿐 아니라,  그의 손자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김해김씨(金海金氏) 선원대동세보(璿源大同世譜)에도 상계(上系)편을 그로부터 시작하고 있다.  2세(世) 거등왕(居登王)으로 이어지는 김수로왕(金首露王)의 후손들을 김해김씨(金海金氏)로 칭하고 있다. [별표1] 가락선원세계도 <추후 별첨>

 

임술(壬戌) 1802년 경남 산청 능보소(陵譜所)에서 김해김씨 판도판서공 관파(삼현파)의 김현도 공의 주관으로 김해김씨 대동보에는 전국 각처의 98계파 유사들이 모여 목판본[1806년에 완료된 31권의 김해김씨 연계대보]으로 간행되었다.

 

그 이후 1978년 용산보에는 삼중대광금녕군 목경파, 판도판서공 관파, 생원 연파, 도총관 경신파, 시중공 탁파, 부사 근파, 등 모두 148公 중조(파조)를 세워 분파하여 등재 되었다. [별표2] 김해김씨 148개 분파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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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표2] 김해김씨 [一 本貫(김해), 148 分派] 공파

1. 가선공(嘉善公) 재혁(在爀) (중추공파) 중조 재혁은 가선대부 동중추부사를 수증(受贈). 중추공 재혁파 라고도 부른다. 5세손 봉규(奉奎)는 가선대부, 지의금부사, 오위장 등을 지냄. 후손이 무안에 살고 있다. 가선대부(嘉善大夫) : 조선시대 관계(官階) 2품 문무반.

 

2. 가선공(嘉善公) 진선(盡善) 가선대부를 지낸 진선의 후손이 화성군 장안면에 살고 있다

 

3. 가선공(嘉善公) 명남(明楠) 중조 명남은 가선대부를 지냈으며, 아들 선위(善渭)는 통정대부를 지냈다. 서울에 후손이 살고 있다.

 

4. 감무공(監務公) 익경(益卿) -사군파 사군파라고도 한다. 중조는 김익경(金益卿)이다. 그의 손자 김진문(金振門)은 고려말에 예의판서(禮儀判書)를 거쳐 대제학(大提學)에 올랐으나 조선이 개국하자 관직을 버리고 이색(李穡), 박자검(朴自儉) 등과 함게 은둔 생활하여 절의를 지켰다, 그의 둘째 아들 김추(金錘)는 도총관(都摠管), 넷째 아들 김석(金錫)은 찬성사(贊成事)를 지냈다. 막내 김조는 세종 때 집현전수찬(集賢殿修撰)을 거쳐 예조판서에 올랐으며, 직제학(直提學)을 역임할 때 장영실(蔣英實)과 함께 간의대(簡儀臺), 자격루(自擊漏), 혼천의(渾天儀) 등을 만든 것으로 전한다.

 

5. 감찰공(監察公) () 중조 일은 이씨조선 초기에 사헌부 감찰을 지냈다. 김해에 후손이 산다. 통사랑 극손(克孫)의 부친이다.감찰(監察) : 조선 때 사헌부의 정 6품의 벼슬

 

6. 감찰공(監察公) 희계(希繼) 중조 희계는 무과에 급제하시어 사헌부감찰벼슬을 지냈다. 아드님 진신(盡信)은 가선대부.동중추(同中樞), 손자 익승(益承)은 무과급제하시어 선전관(宣傳官), 증손 홍덕(洪德)은 가의대부.호조참판을 지냈다. 이천(利川)군 모가에서 후손이 산다

 

7. 계성군(鷄城君) ()

 

8. 과주공(果州公) 우치파

 

9. 군사공(軍事公) 효련(孝蓮) = 호판공 효련파 중조 효련은 고려말엽에 군사를 지내셨으며 호조판서에 추증되었다. 따라서 호판공 효련파라고도 한다. 고산(高山)에 후손이 산다.

 

10. 군수공(郡守公) 필형(弼亨) 필형은 조선조에 군수를 지내셨다. 참봉 광의 부친이며 군수 달문(達文)의 조부이다. 후손이 웅천에서 살았다.군수(郡守) : 조선 때 각 군()의 우두머리로 종 4품의 지방관직.

 

11. 군자감정공(軍資監正公) 금용(錦龍) 중시조 금용은 군자감정을 지내셨고 4세손 복중(福重)은 가선대부.동지중추부사를 지내셨으며 한성좌윤(漢城左尹)겸 부총관(副摠管)을 수증(受贈)하셨다. 서울에 후손이 산다.

 

12. 군자감정공(軍資監正公) 홍하(洪夏) 중조는 홍하이시며 군자감정공을 지내셨다. 후손이 양성에서 산다.

 

13. 군자감정공(軍資監正公) 희래(希來) 중조 희래는 군자감정을 지내셨으며 후손이 수원에서 살고 있다. 군자감정공 언수(彦壽)파라고도 한다. 언수는 군자감정 희래의 부()이다.

 

 

14. 김녕군(金寧君) 목경(牧卿) = 경파 중조 목경은 고려 충혜왕때 문과(文科)에 급제하고, 품계가 삼중대광(三重大匡)에 이르렀다. 충혜왕(忠惠王) 때 조적()의 난을 평정하는 데 공을 세워 김녕군(金寧君)에 봉해졌으나, 국사(國事)가 날로 어지러워짐을 보고 정당문학(政堂文學) 이조년(李兆年)과 함께 누차 왕에게 간()했으나 듣지 않자, 속리산(俗離山)에 들어가 세상과 인연을 끊고 여생을 마쳤다.

* 삼중대광은 정1품의 품계로서 월래 벽상삼한(壁上三韓), 혹은 삼중대광이라 칭하던 것을 1362년 공민왕11년에 둘을 합하여 벽상삼한삼중대광(壁上三韓三重大匡)이라 하였으며 혹은 단순히 벽상공신이라고도 하였다.

 

15. 금성군(金城君) () 중조 도의 자()는 경원(景源), 고려 때 문하시중(門下侍中)을 역임하고, 금성군(金城君)에 봉해짐. 아드님 명국(鳴國)은 전리판서를 지내셨고, 이성계가 조선개국 후 벼슬을 않으셨다. 묘는 장단에 있다. 후손은 김해에 산다. 관련파 - 직장공파, 참봉공파문하시중(門下侍中) : 고려시대 문하성에 소속된 종1품 관직

 

16. 김해군(金海君) ()

 

17. 대제학공(大提學公) 득하(得河) 중조 득하는 자()는 문경(文卿), ()는 첨성(瞻省)이다, 고려후기에 대제학을 지내셨다. 후손이 의성, 마산 등지에서 거주한다대제학(大提學) : 조선 때 홍문관(弘文館), 예문관(藝文館)에 소속된 정 2품의 관직

 

18. 도사공(都事公) () 중조 연은 세장(世章)의 아드님이시며 호는 농암(聾岩). 고려 때 도사(都事)를 역임. 5세손 희태(希泰)는 수문장(守門將).훈련판관을 지내셨다. 연의 아드님 홍진(弘珍)은 진사이므로 진사공파라고도 한다. 후손이 영광에 산다.도사(都事) : 고려 때 종 7품의 관직, 조선 때 관리의 감찰을 담당한 종 5품 관리.

19. 도사공(都事公) ()

 

20. 도사공(都事公) ()

 

21. 도정공(都正公) 홍진(洪震)

 

22. 도총관공(都摠管公) 언국(彦國) 중시조 언국은 자()는 충석(忠碩)이다, 도총별마장군(都摠別馬將軍)을 지내셨으며 백천(白川)에 후손이 산다. 손자 감()은 한성좌윤, 4세손 창득(昌得)은 동추(同樞 - 2품관)를 지내셨다.도총관(都總管) : 조선 때 오위도총부(五衛摠總府)의 우두머리로 정 2품의 관리.

 

23. 도총관공(都摠管公) () 중조 성은 자()는 윤집(允執), ()는 죽강(竹岡)이다, 조선 선조 병자생으로 도총관을 지내셨으며 달성에 후손이 산다. 묘는 칠곡 불동(佛洞)에 있다.

아드님 광석(光錫)은 호()가 칠은(漆隱)이시며 의금부도정(義禁莩正)을 지내셨고 손자 준언(俊彦)은 용산정(龍山亭)을 짓고 학문을 연구하셨고 벼슬은 통덕랑(通德郞)을 지냈다.

 

24. 도총관공(都摠管公) 경신(敬臣) 경신(敬臣)은 고려 충렬왕에 진() 총관부(摠管府) 관군총관(管軍摠管)으로 도총관공파(都摠管公派)의 파조(派祖)이다.2세 원현(元鉉)은 고려때 광정대부 첨의평리 상호군 영부사(匡靖大夫 僉議評理 上護軍 領府事)를 지내셨다. 방려, 계금, 계희, 극검, , 유신등 명현이 이어졌다.경신(敬臣)의 칠세손(七世孫)극검(克儉)은 성종조(成宗朝)에 사헌부대사헌(司憲府大司憲)으로 담헌공파(淡軒公派)의 분파조(分派祖)이며, 극검(克儉)의 현손(玄孫) 만증(萬增)은 진사(進士)1592년 임란때 김해(金海) 퇴은촌(退隱村)에서 성주목(星州牧) 용기(龍基)() 고령군(高靈郡) 성산면(星山面) 대흥리(大興里))로 이거하고, 만증(萬增)의 현손(玄孫) ()은 효종시(孝宗時) 초곡방(草谷坊) 삽제(揷祭)(() 용암면(龍巖面) 명포리(明浦里)), ()6세손(世孫) 업변(業變)이 조곡방(租谷坊)(() 용암면(龍巖面) 계상리(溪上里))에 정착하여 후손이 세거하고 있다.* 도총관공 경신파에서 분파된 파 : 생원공 계인파, 서강공 계인파, 주부공 초파 , 퇴은공 계희파, 담헌공(淡軒公) 극검(克儉)

 

25. 동지공(同知公) 홍섭(洪燮) 중조 홍섭은 자()는 소덕(素德)이다, 효종때 가선대부,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使)를 역임 하였다. 아드님 우경(宇慶)은 통정대부 군자감정, 3세 동희(東熙)는 군자감정, 4세 귀상(貴祥)은 과주목사, 4세 영조(榮祚)는 병조참판, 5세 관현(寬鉉)은 부호군을 지내셨다. 광주(廣州)에 후손이 살고 있음.

 

26. 목사공(牧使公) 치행(致行) 중시조 치행은 진주목사, 아드님 영소(永素)는 김해부사, 손자 양선(樣善)은 첨정, 4세손 순경(順卿)은 임진란때 공신으로 선무언종공신이 되셨다. 5세손 응남(應南)도 군자감정으로 선무원종공신이 되셨다. 후손이 울산에 산다문사(文師) : 고려 때 유수관(留守官)이나 대도호부(大都護府)에 소속된 9품의 관직.

 

27. 문곡공(文谷公) 윤직(允直)

중조는 윤직이며 호는 문곡이다. 3세손 우근(宇根)은 숙종때 승문원 교리이며 5세손 기상(璣祥)<기조(璣祚)?>는 영조 갑인년에 등과하여 사헌부 정언을 지냈다. 후손이 인천에서 거주한다

 

28. 문경공(文敬公) () 주석지신(柱石之臣) 김탁(金琢)은 고려 28대 충혜왕 때 문과에 급제하여 정당문학(내사문하성에 소속된 종2), 문하시랑,대제학을 역임하면서 목은 이색, 포은 정몽주등과 교류하며 불교를 배척하고 성리학을 일으키는데 크게 공을 세웠으며, 국가 변란시에는 무관으로 활약하여 공신의 반열에 섰으니, 실로 문무를 겸비한 일세의 경세가였다.자는 여화(汝華),호는 신암(愼庵)이며 병부상서 김세장(金世章)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29. 문천군수공(文川郡守公) 귀존(貴存) 중조 휘 귀존은 문천군수를 지내셨고 5세손은 군자감정 인서(麟瑞)이다. 후손이 밀양에 산다.

 

30. 봉상시정공(奉常侍正公) 한택(漢澤) 중조 한택은 봉상시정을 지냈고, 아들 두석(斗錫)은 호조참의를 수증하셨다. 4세손 시태(時泰)는 가선대부.동지중추부사, 5세손 복창(福昌)은 사과(司果)를 지내셨다. 화성군 매송에서 후손이 산다.봉상시정(奉常寺正) : 조선 때 봉상시 소속의 정3품 관원.

 

31. 부사공(府使公) 영필(瑩弼) 중조 영필(榮弼로 기록된 世譜도 있다)은 조선 안변부사를 지내셨으며 3세손 택()은 세조때 예문관 제학(提學)을 지내고 증좌찬성 수증.부사(副使) : 고려 때 사(使)의 다음가는 관직으로 5-6품을 가르킨다.

 

32. 부사공(府使公) () 중조 근은 세장(世章)의 아드님 이시며 세장은 진유(鎭酉)의 후손이시다. ()는 현화(顯華), ()는 눌제(訥齋), 고려 때 용성부사(龍城府使)를 역임. 영암에 후손이 많이 살며 나주, 무안, 함평, 하동에 후손들이 살고 있다.

 

33. 부사직공(副司直公) 팔영(八英) 중조 팔영은 자헌대부. 용양위부사직을 지내셨으며, 아드님 태겸(泰謙)은 양무원종공신(揚武原從功臣), 손자 억만(億万)은 통덕랑을 지내셨고, 4세손 복현(福顯)은 한성좌윤에 증직되셨다. 후손이 서울 다동에서 산다. 부사직(副司直) : 조선의 5(五衛)에 속한 종 5품의 무관직(武官職).

 

34. 부윤공(府尹公) 진하(振夏) 중조 진하는 의주부윤을 지내셨다. 2세 민규(敏奎)는 의금부도사, 3세 기조(基祚)는 이조판서, 우집(宇緝)은 대사헌, 종해(宗海)는 남원부사를 지냄. 경주시 내남면에 후손이 살고 있다. 부윤(府尹) : 조선 때 정2품의 지방 관직으로 부()의 우두머리.

 

35. 부정공(副正公) ()= (양의공파) 중조 평은 고려 원종때 출생, 충렬왕때 서운관부정(書雲館副正)을 지내셨다.시호는 양의(襄毅)이다 아드님 승()은 호군(護軍), 손자 장견(將堅)은 별장(別將)을 지내셨고, 후손 경서(景瑞)는 부원수를 지내시고 우의정에 추증되었다.

부정(副正) : 고려 때 각 관청 소속의 종 4품 관직. 조선 때 각관청의 종 3품 관직.

 

36. 부제학공(副提學公) (絿)

 

37. 부호군공(副護軍公) 천익(天翼) 부호군(副護軍) : 조선의 5(五衛)에 속했던 종4품의 무관.

 

38. 부호군공(副護軍公) 거공파(巨公) 중조 거공의 자()는 정수(正守), ()는 송암(松巖), 경주에 살며 어모장군. 부호군을 지내셨다. 태령(泰齡)의 아드님이시며 아드님 자문(自文)은 주부(主簿)를 지내셨고 경주 두산산성(斗山山城)에 묘가 있다.

 

39. 부호군공(副護軍公) 우류(宇榴) 중조 우류는 조선 현종 계묘(癸卯)에 출생, 용양위 부호군을 지내셨으며, 아드님 성희(聖熙)는 부호군을 지내셨고, 손자 경조(璟祚)도 부호군, 증손자 선현(善鉉)도 부호군을 지냄, 중조는 숙종 병신년 1013일 별세, 양주 오남리(梧南里)에 묘가 있다. 부호군(副護軍) : 조선의 5(五衛)에 속했던 종 4품의 무관

 

40. 사과공(司果公) 능석(能碩) 중조 능석은 무과급제하시어 사과(司果-정육품)벼슬을 지내셨다. 서울에 후손이 산다. 사과(司果) : 조선 때 오위도총부(五衛都摠府)에 속한 정 6품의 무관직

 

41. 사과공(司果公) 석진(錫鎭) 중조 석진은 부호군(副護軍) 겸 부사과(副司果)를 지내셨다.순조임금 계해년에 별세하셨으며 아드님 제환(濟桓)은 사과(司果)를 지내셨다. 후손이 가평군 상면에서 산다.

 

42. 사과공(司果公) 진선(振善) 중조 진선은 어모장군.용양위부사과( 衛副司果)를 지내셨다. 아드님 명길(明吉)은 무과급제하셨고 병자호란때 남한산성에 왕을 호종(扈從)하시어 진무원종공신(鎭撫原從功臣)이 되시고 통훈대부.군자감정에 증직되셨다. 묘는 양주군 남면 인장리(仁章里)에 있다. 후손이 양주에서 산다.

 

43. 사정공(司正公) 이형(利亨) 중조는 고려때 사헌부사정(司憲府司正)을 역임한 이형(利亨)이시다. 아드님 귀()는 한림(翰林). 이조정랑을 지내셨고 무오사화때 창원에 유배되셨다. 옥견(玉堅)은 문천군수, ()은 전적(典籍), 난종(蘭宗)은 부사를 지냈고, 5대손 연종(連宗)은 진주목사를 지내셨다.사정(司正) : 조선의 오위(五衛)에 속한 정 7품의 관직.

 

44. 판도판서공(版圖判書公) ()= 삼현파 중조 김관(金管)은 김해인 자()는 희범(希範) ()는 정성(靖醒). 고려말(高麗末)의 문신(文臣)이다. 초명(初名)은 관(), 휘 관()은 왕의 하사명(下賜名)이다. 고려때 봉익대부 판도판서를 지내셨다. 시호(諡號)를 문정(文貞)이라 하고 지금 대산면 유등리에 묘()가 남아 있다. 충선왕(忠宣王) 때에 누차 왕에게 간()하여 부도(浮屠불교)를 배척하고 학교를 건설하여 유학을 진흥시키는 등 국가에 많은 공을 세웠다.청도에 후손이 많이 살며, 삼현(절효공 극일, 탁영 일손, 삼족당 대유)이 배출되었다 해서 흔히 삼현파(三賢派)라고 부른다.

 

45. 상서공(尙書公) () 상서(尙書) : 고려 때 6부에 두었던 정 3품의 관직으로 판서. 전서 등으로 변경 되었다.

 

46. 생원공(生員公) 인식(寅植) 중조는 생원공 인식이다. 학생공 인식파, 혹은 공주공(公州公) 인식(寅植)파라고도 한다. 중조의 3세손 갑순(甲淳)은 현달(顯達)의 아드님으로 중추원의관(中樞院議官) 충남독제관(忠南督制官) 노성군수(魯城郡守),임천군수(林川郡守),공주군수,금화군수,아산군수,부여군수를 지냈고 가선대부에 오르셨다. 빈민구제에 힘쓴 자선가이다. 부여군수로 재임시 고종황제께서 갑순으로 사명(賜名)하였다. 공주에서 후손이 많이 산다. 생원(生員) : 조선 시대에, 소과(小科)의 종장(終場)에 급제한 사람

 

47. 생원공(生員公) 인하(寅夏)

 

48. 생원공(生員公) 시보(始寶) 중조 시보는 생원이시며 아드님 운련(運鍊)은 목사(牧使), 4세손 영석(榮碩)은 통덕랑을 지내셨다. 화순에 후손이 산다.

 

49. 생원공(生員公) 세일(世鎰) 중조는 생원 세일이시며 후손이 시흥에 산다.

 

50. 생원공(生員公) 홍민(洪敏) 후손이 양주(楊州)에서 거주한다

 

51. 생원공(生員公) 현중(鉉重) 중조 현중은 이조 선조때 성균생원이시며 자는 국보(國輔), 호는 덕계(德溪)아드님 자익(自益)은 도사(都事), 손자 광렬(光烈)은 호조좌랑, 증손자 건()은 통정대부.영광군수, 고손자 세강(世綱)은 현종때 병조좌랑을 지내셨다. 후손이 월성(月城)에 산다.

52. 선전공(宣傳公) 한필(漢必) 중조 한필은 무과급제 하시어 선전관을 지내셨다. 3세 기남(起男)은 통정대부, 4세 춘발(春發)은 절충장군을 지내셨다.

서울에 후손이 산다.선전관(宣傳官) : 조선시대 선전관청(宣傳官廳)에 소속된 정3품에서 종9품의 관리.

 

53. 수성백공(隨城伯公) () 중조 방은 고려때 수성백에 봉해 지셨다. 후손이 청원군 오창에서 거주한다

 

54. 숭록공(崇祿公) ()

중조 현()의 자()는 여윤(汝允)이며 고려말의 충신들을 사면하고 그 자손들을 등용하도록 상소하였으며 숭록대부에 추증되셨다. 부인은 전주이씨로 효령대군 보()의 따님이다.아드님 윤광(潤光)은 통제사에 제수 되었으나 부임하지 못하고 별세. 아우 민광(泯光)의 자()는 희이(喜爾)이며 집현전 학사이고 숭록대부에 추증되셨다, 후손들이 진주, 흥덕, 보성 등에 거주.숭록대부(崇祿大夫) : 조선시대 종1품의 문산계(文散階).고려시대 종1품의 문산계(文散階).

 

55. 숭정공(崇政公) 종정(宗貞) 숭정대부(崇政大夫) : 조선시대 문관(文官)에게 주던 종1품의 관계(官階).

 

56. 승사랑공(承仕郞公) 지서(之瑞) 중조 지서는 시조대왕 51세손이며 유환(有煥)의 아드님이시다. 고려 때 승사랑(承仕郞)을 역임. 3세손 인범(仁範)은 교하현감(交河縣監), 4세손 세량(世良)은 첨중추(僉中樞)를 지내셨다. 후손이 경주. 연일에 살고 있다. 승사랑(承仕郞) : 8품의 문산계(文散階).

 

57. 승지공(承旨公) () 파조 간은 고려말에 봉열대부 소경(少卿) 태복승지(太僕承旨)를 지내셨다.  봉열공(奉烈公) ()파라고도 한다. 후손이 함평에서 거주함.승지(承旨) : 고려 때 밀직사(密直司) 소속의 왕명을 출납하는 관리이다. 조선 때 승정원(承政院) 소속의 왕명을 출납하는 관리 정 3.

 

58. 승지공(承旨公) 홍선(洪宣) 중조 홍선의 자()는 귀립(貴立)이며 승지를 지내셨다. 아드님 우석(宇錫)은 생원을 지내셨다. 후손이 포천군 소흘면에 거주한다.

 

59. 운은공(雲隱公) 대진(大震)

 

60. 원정공(元靖公) ()

 

61. 유부공(阜公) 조종(祖宗)

 

62. 유수공(留守公) ()

 

63. 율은공 ()

 

64. 이천공(伊川公) 도명(道鳴)

 

65. 장락원정공(掌樂院正公) 상환(尙桓) 중조 상환은 통정대부 장락원정을 수증(受贈)하셨다. 아드님 명식9命湜)은 통정대부. 호조참의를 수증하셨다. 손자 복재(復載)는 가선대부. 호조참판겸 동지의금부사(同知義禁府事)를 수증하셨고, 4세 완규(完奎)는 용양위 부호군 동지중추부사 겸 오위장. 가선대부를 지내셨다.

 

66. 장사군(長沙君) () 중조 선은 병부상서 세장(世章)의 아드님이시며 고려말에 금자광록대부 벼슬을 지내셨고 장사군에 봉해지셨다. 2세 충()은 조선초기에 이조참판을 지내셨고 우의정에 추증되셨다. 3세 자진(自珍)은 북병사(北兵使)참판, 4세 니()는 병조참의, ()은 공조참판을 지내셨다. 대구, 정읍, 김제, 고부, 만경 등에 후손이 산다.금자광록대부(金紫光祿大夫) : 고려 문산계(文散階)의 하나로 종 2품 관리.

 

67. 전리공(典理公) ()

 

68. 정랑공(正郞公) 희인(希仁) ,중조 희인(希仁)은 자()는 인복(仁福), ()는 지수제(智水齊), 조선 명종때 예조정랑을 지내셨다. 2세손 진학(盡鶴)3세손 기영(箕永)은 효자이고 5세손 홍택(洪澤)은 장악원정(掌樂院正)을 지내셨다. 고산(高山)에 후손이 살고 있다. 정랑(正郞) : 조선시대 6(六曹) 소속의 정5품 벼슬.고려시대 6(六曹) 소속의 정5품 벼슬.

 

69. 정랑공(正郞公) 각건(角鍵) 중시조 휘 각건(角鍵)은 공조정랑을 지내셨고 조선 명종때 병조참판을 수증(受贈)하였다. 3세손 상일(尙鎰)은 첨사(僉使), 4세손 정옥(正玉)은 장수현감을 지내셨고 임진란때 공을 세우셨다.

 

70. 정헌공(正憲公) 영수(永守) 중조 영수(永守)는 초휘(初諱)가 흥수(興守)이시며 중종 임금때 정국원종공신(靖國原從功臣)이시다. 벼슬은 정헌대부(正憲大夫) 지중추 부사(知中樞 府事)를 지내셨고 사패지(賜牌地)인 해주 태공리(太公里)에서 거주하셨다.아드님 세환(世桓)은 전라도사, 세달(世達)은 병조판서를 지내셨다. 손자 기원(紀元)은 직장(直長), 4세손 광필(光弼)은 선조때 훈련주부, 5세손 인현(仁賢)은 훈련주부, 의현(義賢)은 훈련판관(訓練判官)을 지내셨다.정헌대부(正憲大夫) : 조선시대 문무관의 품계로 후에 종친. 의빈의 품계와 병행.

 

71. 종사랑공(從事郞公) 세연(世連) 중조 세연(世連)은 자()는 은제(隱齋), 종사랑(從事郞)을 지내셨다. 후손이 장포천군 가산면에 살고 있다. 당초 장단에서 포천으로 이주하였다.종사랑(從仕郞) : 고려시대 7품의 문반품계(文班品階).

 

72. 좌랑공(佐郞公) 성철(聲徹) ()는 상률(尙律), 조선 때 형조 좌랑(刑曹佐郞)을 역임.중시조 성철(聲徹)은 이조 숙종 임금때 형조좌랑을 지내셨고 영조 임금 무신년 310일에 작고하셨다.좌랑(左郞) : 고려시대 6(六曹)에 소속된 정5품의 벼슬.조선시대 6(六曹)에 소속된 정5품의 벼슬.

 

73. 좌랑공(佐郞公) 진광(震光) 중시조 진광(震光)은 자()는 윤광(潤光), 호조좌랑(戶曹佐郞)을 지내셨으며 4세손 근운(近雲)은 통훈대부 장악원정(通訓大夫 掌樂院正), 5세손 응순(應順)은 참의(參議)에 각각 증직(贈職)되셨다. 후손이 진안에서 산다.

 

74. 좌랑공(佐郞公) 효문(孝文) 중시조 효문은 좌랑을 지내셨으며 후손이 봉화군 법전면에서 산다. 아드님 병기(炳棋)는 이조판서에 추증되셨으며, 3세손 이찬(梨燦)은 숙종 임금때 통덕랑9通德郞)을 지내셨고, 4세손 규만(奎滿)은 부호군(副護軍)에 증직(贈職)되셨다. 5세손 진호(珍鎬)는 통덕랑을 지내셨다.

 

 

75. 좌윤공(佐尹公) 국담(國潭)

 

 

76. 좌윤공(左尹公) 중현(重炫) 중조 중현은 한성좌윤(漢城左尹)을 지냈다. 아드님 세항(世恒)은 영조임금때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 3세손 흥신(興新)은 어모장군, 4세손 윤국(潤國)은 선략장군을 지냈다. 서울에 후손이 많이 산다. 좌윤(佐尹) : 고려시대 향직(鄕職)으로 6품의 벼슬.

 

 

77. 좌정승공파(左政丞公派) 만희(萬希)

()는 여운(汝雲), ()는 상제(), 고려때 좌헌납(左獻納) 좌찬성(左贊成) 도첨의 문화찬성사 (都僉議 門下贊成事)를 지냈으며 조선왕조가 들어선 후 좌정승(左政丞)의 벼슬을 내렸으나, 즉위식에 참석하지 않아 제주도 애월현(涯月縣) 에 유배되시어 여생을 마치셨다 많은 시()를 남기셨다. 후손(後孫)으로는 휘() 익철(益喆) 숙종 을미년에 무과(武科) 급제 하시어 통훈대부 행 중림도찰방(通訓大夫 行 重林道察訪)오위장 (五衛將).되시고 증() 가선대부 공조참판 오위도총부 부총관 에 추증 되셨다()의 후손들이 제주도 에 많이 산다.

 

78. 주사공(主事公) 성승(成承) 주사공 성승은 임진왜란 충신·공신-김성승(金聲承)으로, 선무공신 성승(聲承)파의 중조이다. 고성, 창원, 칠원, 사천, 진주에서 왜적을 많이 참수하였고 진주대전에서 왜적과 싸우다가 성이 함락되자 삼장사(三壯士)와 더불어 순절하였다.통정대부 병조참의에 추증되고 시호는 충절(忠節)이며 정문이 세워졌다.(충절공신도비명) 후손이 안성에서 거주한다.주사(注事) : 신라와 고려 때 관직. 조선 정 7품의 관직.

 

79. 직장공(直長公) 세주(世柱) 중조 세주(世柱)는 연산군 갑자년에 등과 하시어, 상의원 직장(尙衣院直長)을 역임. ()는 영지(永支), ()는 우헌(愚軒), 4세손 원상(元商)은 이조참판을 지내셨다. 후손이 울산에 살고 있다.직장(直長) : 고려시대 6품에서 9품까지의 관직/ 조선시대 종7품의 관직

 

80. 진사공(進士公) 원규(元圭) 중시조 원규(元圭)는 성균관 진사를 지내셨고 후손이 이천(利川)에 산다. 아드님 석헌(錫憲)은 사과(司果), 3세손 윤춘(潤椿)은 참봉, 4세손 인환(仁煥)은 감찰(監察), 5세손 규범(圭範)은 오위장(五衛將)을 지내셨다.

 

81. 진사공(進士公) 의조(義祚) 중조는 의조(義祚)는 조선 영조 임금때 성균관진사이시며 3세손 제영(濟榮)은 전의현령(全義縣令), 4세손 용식(容植)은 감역9監役), 문식(文植)은 첨중추(僉中樞)를 지내셨다.

 

82. 진사공(進士公) () 중조 건()은 김수로왕의 55세손이며 국흥(國興)의 손자이고 용광(用光)의 아드님이다. 경주에 후손이 거주하고 있다

 

83. 진사공(進士公) () 중조 영()은 진사를 지내셨고 아드님 석()은 직장(直長)을 지내셨다. 후손이 김해에 산다.

 

84. 진사공(進士公) 윤직(潤直) 중조 윤직(潤直)은 진사이시고 남원(南原) 두동리(豆洞里)에서 거주하셨다. 후손이 순천(順川).남해에 산다.

 

85. 찬성공(贊成公) 성수(成洙) 중조 성수(成洙)느 고려 덕종 때부터 벼슬하여 평얄군(平壤君)에 봉해졌으며 좌찬성(左贊成)을 수증(受贈)하셨다. 묘는 조령(鳥嶺)에 있다. 아드님 경유(慶維)는 도관량(都觀郞), 손자 몽귀(夢龜)는 군기시정(軍器侍正), 5세손 언성(彦誠)은 절의장군(節義將軍)이시다. 태인에 후손이 많이 살고 있다. 좌찬성(左贊成) : 조선시대 의정부(議政府)에 소속된 종1품의 벼슬로 백관을 통솔하고 일반 정사의 처리. 국토계획(國土計劃). 외교를 맡아보았다.

 

86. 참봉공(參奉公) 청유(淸有) 참봉공 청유의 후손들은 양산에 거주한다.참봉(參奉) : 조선시대 각 관청에 소속된 종9품의 벼슬

 

87. 참봉공(參奉公) 인서(麟瑞) 중조 인서(麟瑞)는 김수로왕 56세손이고 태옥(泰玉)의 후손이며 생원(生員)으로 제능참봉(齊陵參奉)을 지내셨다. 3세손 일준(逸駿)은 명종때 문과급제하시어 울산부사. 담양부사를 지내셨으며, 4세손 극해(克諧)는 예조좌랑, 5세손 연부(連富)는 부사(府使)를 지내셨다. 밀양, 강릉 등에 후손이 살고 있다.

 

88. 참의공(參議公) 영준(永俊) 중시조 영준(永俊)은 조선조 호조참의(戶曹參議)를 역임. 후손이 시흥에 산다.참의(參議) : 조선시대 6(六曹)에 소속된 정3품 벼슬.

 

89. 참의공(參議公) 정기(鼎基) 중조 정기(鼎基)의 자()는 승엽(昇燁), 숙종때 통덕랑을 지내셨고 호조참의를 수증(受贈)하셨다. 서울에 후손이 있다.

 

90. 참의공(參議公) 진덕(盡德) 중시조 진덕(盡德)의 자()는 일심(一心), 호조 참의(兵曹參議)를 역임. 3세손 홍선(洪善)은 병조참의 겸 훈련첨정을 지내셨고 후손이 문경에 산다.

 

91. 참의공(參議公) 대승(大承) 중시조 대승(大承)의 자()는 인석(仁奭), 참의(參議)를 지내셨으며 후손이 삼척(三陟)에 산다.

 

 

92. 참의공(參議公) 순손(順孫) 중조 순손(順孫)은 공조참의를 지내셨고 아드님 숙인(淑仁)은 부사(府使)를 지내셨다. 광양(光陽)에 그 후손이 산다.

 

93. 참의공(參議公) 여림(汝霖) 중조 여림(汝霖)은 공조참의를 지내셨다.5세손 맹감(孟鑑)은 자산군수를 지내셨고 계감(季鑑)은 선략장군(宣略將軍) 호분위부사정(虎賁衛副司正)을 지내셨다. 길주에 후손이 살고 있으며, 읍지(邑誌)에 의하면 공조전서(工曹典書) 심지백(沈之伯), 공조판서(工曹判書) 김성회(金成會), 호조판서(戶曹判書) 김성부(金成富)와 함께 길주지방에 귀양오셔서 살으셨다 한다.(汝霖 - 址霖 - )

 

94. 참의공(參議公) 진시(盡始) 중시조 진시(盡始)는 호조참의(戶曹參議)를 지내셨으며, 아드님 명승(明承)은 통덕랑(通德郞)을 지내셨다. 후손이 청원(淸原)군 북이면에 산다.

 

95. 참의공(參議公) 홍윤(洪潤) 중조 홍윤(洪潤)은 자()는 덕중(德重), 숙종 임금때 이조참의를 지내셨다. 양주, 의정부에 후손이 산다.

 

96. 참판공(參判公) 언방(彦昉) 중시조 언방(彦昉)은 인조 임금때 병조참판(兵曹參判)이시며 후손이 고양군에 산다. 아드님 남(), 손자 사운(士雲)은 통정대부, 4세손 시건(時健)은 부사과(副司果)를 지내셨다.참판(參判) : 조선시대 六曹(육조)에 속했던 종2품 벼슬로 지금의 차관.

 

97. 참판공(參判公) 종해(宗海) 중조 종해(宗海)는 이조참판을 지내셨다. 아드님 경원(敬源)은 통훈대부. 수안군수를 지내셨다. 청도군 각남에 그 후손이 살며

 

98. 참판공(參判公) 진직(盡直) 중조 진직(盡直)은 이조참판을 지내셨다. 안성군 보개면에 후손이 살고 있다.

 

 

99. 참판공(參判公) 홍보(洪寶) 중시조 홍보(洪寶)는 음사(蔭仕)로 참봉을 지내셨으며 수직(壽職)으로 가선대부 공조참판에 가자(加資)되셨다. 아드님 강직(彊直)은 승사랑(承仕郞), 4세손 극장(克章)은 무과급제하여 첨사(僉使)를 지내셨다. 임천(林川)에 후손이 산다.

 

100. 참판공(參判公) 복선(復善) 중조 복선(復善)은 자()는 여숙(淑汝), 호조참판을 수증(受贈)하셨다. 2세 도승(道承)은 절충장군, 3세 홍달(洪達)은 오위도총부부총관(五衛都摠府副摠管), 4세 기항(箕杭)은 호조참의를 지내셨다. 충주 신니에서 후손이 살고 있다.

 

101. 참판공(參判公) 성옥(成玉) 봉화군 물야면에서 후손이 살고 있으며 중조는 호조참판 성옥(成玉)의 부친인 휘() 광록(光祿)이시다.4세손 세주(世柱)는 가선대부에 오르셨다. 참판공 광록(光祿)파라고도 한다.

 

102. 참판공(參判公) 신문(信文)

중시조 신문(信文)은 무주부사를 지내시고 이조참판을 수증(受贈)하셨다. 아드님 옥견(玉堅)은 대사헌, 4세손 대춘(大春)은 참판을 지내셨다. 만경에 후손이 산다.

 

103. 첨사공(僉使公) 무승(武承) 중조 무승(武承)은 자()는 보인(輔仁), 참판공 영견(永堅)의 후손이시며 첨사를 지내셨고 묘는 안산(安山)에 있다. 시흥 군자동에서 후손이 산다.첨사(僉使) : 조선시대 각 진영(鎭營)에 속한 3품의 무관직(武官職).

 

104. 청풍공(淸風公) 사순(思純) 중조 사순(思純)은 청풍부사(淸風府使)를 지내셨으며 태종 임금 13년 안변에 이주하셨다. 아드님 수산(壽山)은 군수, 손지 휘()는 첨사(僉使)를 지내셨다. 안변에 후손이 산다.

 

105. 충순위공(忠順衛公) 극제(克悌) 중조 극제(克悌)는 충순위(忠順衛) 벼슬을 하였고 후손이 용산(龍山)에서 거주한다.

 

106. 충정공(忠貞公) () 중시조 구()는 세장(世章)의 아드님이며 고려 공민왕때 첨의평리(僉議評理)이시고 공신이시며 시호는 충정(忠貞)이시다. 아드님 한정(漢精)은 한성부윤, 손자 진온은 봉상대부 삼사부사, 진석(振奭)은 집의(執義)를 지내셨다. 5세손 의손(義孫)은 세종대왕때 밀양부사, 효손(孝孫)은 공조참의를 지내셨다. 후손이 나주, 강화, 함평에서 산다.

107. 충정공(忠靖公) 효성(孝誠) 중조 효성(孝誠)은 정국공신(靖國功臣)으로 가선대부. 병조참판에 추증되셨고 시호는 충정(忠靖)이시다. 아드님 한서(漢瑞)는 통정대부행사역원주부(通政大夫行司譯院主簿), 손자 인호(仁浩)는 통정대부행장예원판결사 겸 어모장군 용양위부호군(通政大夫行掌隸院判決事 兼 龍 衛副護軍)을 지내셨다.후손이 강화에서 거주한다.

 

108. 충정공(忠精公) 이장(以璋)

중조 이장(以璋)은 진()의 아드님이시며 고려 원종 무렵에 봉상대부(奉常大夫) 판삼사부사(判三司副使)를 지내셨고 시호는 충정(忠精)이시다. 아드님 서욱(瑞旭)은 도첨의 시중, 서인(瑞仁)은 평장사, 손자 영철(英喆)은 판부사(判副事)를 지내셨다. 장흥에 후손이 산다.

 

109. 통덕랑공(通德郞公) 춘직(春直) 중시조 춘직(春直)  통덕랑(通德郞)을 지내셨으며 후손이 임파에 산다.

 

110. 통사랑공(通仕郞公) 여구(汝龜) 중조 여구(汝龜)는 김수로왕의 49세손이며 진사로 통사랑(通仕郞) 벼슬을 하였고 후손이 상주에서 거주한다.통사랑(通仕郞) : 고려시대 9품의 문관관계(文官官階) / 조선시대 정8품의 문관관계(文官官階).

 

111. 통사랑공(通仕郞公) 수학() 중조 수학()은 통사랑(通仕郞)을 지내셨고 교동(喬洞)에 후손이 산다.

 

112. 통정공(通政公) 대선(大善) 중조 대선은 통정대부, 2세 상남(相南)은 가선대부, 3세 취택(就澤)은 통정대부, 5세 문식(文植)은 금부도사를 지내셨다.

 

113. 통정공(通政公) 삼창(三昌)- 락서파 파주에 후손이 산다.

 

114. 통정공(通政公) 종남(從南)) 통정대부(通政大夫) : 조선시대 문관(文官종친(宗親의빈(儀賓)의 정3품의 관계(官階).

 

115. 통정공(通政公) 종일(宗一) 중시조 종일은 통정대부를 수증(受贈)하셨으며 3세손 팔현(八鉉)은 장악원정(掌樂院正)을 수증하셨다. 후손이 서울에 산다.

 

116 통정공(通政公) 진충(盡忠) 중조 진충은 통정대부를 지내셨다. 의정부 용현리에 묘가 있다. 아드님 연승(連承)은 가선대부를 지내셨고, 4세손 우진(宇榛)은 통정대부를 지내셨다.

 

117. 통정공(通政公) 창수(昌壽)

 

118. 통정공(通政公) 희성(希聖) 중조 희성은 통정대부에 오르셨다. 아드님 신직(信直)은 효성이 지극하시어 효자정문이 세워졌고 공()이 살던 곳은 효자문평(孝子門坪)이라 부르게 되었다. 당진군 합덕에 후손이 산다.

 

119. 통훈공(通訓公) 귀생(貴生) 중조 귀생은 통훈대부(3품 당하관)를 지내셨으며 2세 도석(道碩)은 별시위(別侍衛) 벼슬을 하셨고 통정대부에 오르셨다. 서울에 후손이 산다.통훈대부(通訓大夫) : 조선시대 문관의 정3품 당하관(堂下官)의 관계(官階).

 

120. 판결사공(判決事公) 용만(用万) 신계(薪溪)문중 판결사공파의 중조는 조선 성종말엽 유학자관 등장예원 판결사 용만이며, 입향조는 임관공신 4세손 득복(得福)이다. 득복은 명종 신유생으로 경주시 양북면에서 태어 났으며 임진왜란시 어린 두 아들과 의병을 모집하여 관군과 함께 영천성 및 경주읍성 탈환에 선봉장이 되었으며 곳곳에서 많은 전과를 세웠다. 현재 외동읍 신계리에 동엄정사와 신도비가 있고 양북면 어일리에 유허비와 집터 및 우물등이 보존되어있다. 득상(得祥)은 임진왜란때 선무원종공신이 되셨다. 5세손 효원(孝元), 효남(孝男)도 임진왜란때 공신이시다.

 

121. 판도판서공(版圖判書公) 첨검(添劒) 중조 첨검은 김수로왕 52세손이며 시추(是秋)의 차남이신 정국(定國)의 후손이시다. 첨검은 판도판서를 지냈으며, 아들 택()과 손자 성집(聲集)은 군수를 지내셨다. 성집은 예조참판에 증직(贈職)되었다. 9세손 연광(鍊光)은 임진왜란때 회양부사로 재직중 순국하신 충신이다. 후손들이 백천(白川), 장단, 개성에 산다.

 

122. 판서공(判書公) 세강(世綱) 중시조 세강은 자()는 원보(元甫)이고, 예조판서를 지내셨고, 아드님 진태(振兌)는 영월 부사를 지내셨고  5세손 남일(南一)은 주부(主簿)를 지내셨고 인조 때 진무원종공신이시다. 청도. 밀양에 후손이 산다.

 

123. 판서공(判書公) () 중조 건은 고려조말 판도판서(版圖判書)를 지내셨으며 아드님 충효(忠孝)는 서흥부사, 3세손 돈()은 횡성현감, 4세손 용한(龍翰)은 의흥현감을 지내셨다.

 

124. 판서공(判書公) () 판서(判書) : 고려시대 각 관청의 6(六曹)의 으뜸벼슬로 정3품관 / 조선시대 6조의 으뜸벼슬로 정2품의 관직(官職). 지금의 장관.

 

125. 판서공(判書公) 불비(不比) 김해인 고려말(高麗末)과 조선초기에 이르는 문신(文臣), ()는 신묵재(愼黙齋)이니 가락국 김수로왕(金首露王)의 후손(後孫)이다. 창원군(의창군) 동면(東面) 산남리(山南里)에서 태어나 일찌기 포은(圃隱) 정몽주(鄭夢周)의 문하(門下)에 수학(受學)하여 장차 학문(學問)을 성취(成就)하니 국내(國內)에서는 그의 학문(學問)에 비견(比肩)할 사람이 없다하여 불비(不比)라는 이름을 얻었다 한다.이윽고 관직(官職)에 나가 봉상대부(奉常大夫) 전리총랑(典理總郞) 보문각직제학(寶文閣直提學)을 역임(歷任)하고 마침내 이조판서(吏曺判書)에 올라 있다가 세상(世上)을 마치니 지금의 동면(東面) 금산리(琴山里) 금동부락(金洞部落) 뒷산에 묘()가 있다. 유고집(遺稿集)을 비롯한 일체의 문헌(文獻)이 병화(兵火)에 소실(燒失)되어 오늘에 전()하지 아니한다.

 

126. 판서공(判書公) 유공(維公) 중조 유공은 자()는 수행(首行)이고, 정국(定國)의 후손이시며 태령(泰齡)의 맏아드님이시다. 유공은 판서를 지내셨으며 공의 묘는 강서(江西)에 있다. 아드님 건문(健文)은 판결사(判決事)를 수증(受贈)하셨고 손자 치남(致楠)은 통정대부, 증손 준일(俊逸)은 통정대부, 현손 시감(時鑑)은 판관을 지내셨다. 울산에 후손이 많이 산다.

 

127. 판서공(判書公) 진업(盡業) 중조 진업은 병자호란때 백천에서 충주에로 피난하셨고 능참봉을 지내셨으며 자헌대부, 이조판서에 추증되셨다. 아드님 사승(仕承)은 절충장군. 부호군, 손자 홍의(洪義)는 동지중추부사를 지내셨다. 중원군 엄정면에 후손이 산다.

 

128. 판서공(判書公) 진인(震仁) 중시조 진인은 자()는 경옥(景玉), ()는 죽사(竹史)이다,후능참봉, 호조판서를 역임하셨고 세조임금 병자년에 구미시 도산동(桃山洞)에 퇴거하시니 도산처사(桃山處士)로 불리셨다. 아드님 영성(永聲)은 이조정랑(吏曹正郞) 3세 세명(世鳴)은 이조참판, 4세 만수(万壽)는 첨정(僉正), 5세 희덕(希德)은 순안현감을 지내셨다. 구미시 선산읍 지역에 후손이 산다.

 

129. 판전공(判典公) 명택(明澤) 중조 명택은 김수로왕의 51세손이며 귀서(龜瑞)의 아드님이다. ()는 덕윤(德潤), ()는 호양제(浩養齋)이다. 고려 공민왕때 대광도첨의 판삼사부사(大匡都僉議判三司副使)를 지내셨으며 아드님 영손(榮孫)은 이조 태종때 직제학. 지제고(知制誥)를 지내셨고 대제학(大提學)을 수증(受贈)하셨다.손자(孫子) () 광욱(光旭) 은 강계부사(江界府使). 증손(曾孫) () 효동(孝東) 은 직제학(直提學).수찬(修撰) 고손(高孫) () 수문(守文) 은 집의(執義),가선대부 예조참판 겸 지 춘추관 사(嘉善大夫 禮曹參判 兼 知 春秋舘 事)지냈으며 을사사화(乙巳士禍)때 부친 휘() 효동(孝東)과 더불어 호남에 은적(隱跡) 하셨다. 경주에 후손이 많이 산다.

130. 학생(學生)광운(光雲)

 

131. 학생공(學生公) 경수(敬壽) 비인공(庇仁公) 경수(敬壽)파라고도 한다. 비인에 후손이 살고 있다.

 

132. 학생공(學生公) 규수(奎洙) 처사공 규수(奎洙)파라고도 한다. 서울에 후손이 산다.

 

133. 학생공(學生公) 낙서(洛瑞) 중조는 낙서이며 희세(希世)의 아드님이다. 후손이 상주에서 거주 한다.

 

134. 학생공(學生公) 성직(性直) 중시조는 성직이시며, 5세손 무조(武祚)는 부호군(副護軍)을 지내셨다. 한성공 성직(性直)파라고도 한다.서울에 후손이 산다.

 

135. 학생공(學生公) 세철(世喆)

 

136. 학생공(學生公) 승오(承五) 중조 승오(承五)의 묘는 충남 청양군 청양리에 있다.처사공 승오(承五)파라고도 한다.

 

137. 학생공(學生公) 응조(應祚) 중시조는 응조이며, 공주공 응조(應祚)파 라고도 한다. 공주에 후손이 많이 산다.

 

138. 학생공(學生公) 진각(盡珏) 중조는 진각이시다. 한양공 진각(盡珏)파라고도 한다.서울에 후손이 살고 있다.

 

139. 학생공(學生公) 진산(盡山) 홍산공 진산(盡山)파라고도 한다. 후손이 서울, 홍산(鴻山)에서 살며 4세손 의남(義男)은 공조참의, 5세손 신도(愼度)는 한성좌윤을 지내셨다.

 

140. 학생공(學生公) 정일(正一) 중조는 정일이시다. 덕천공(德川公) 정일(正一)파라고도 한다. 후손이 덕천에서 거주한다.

 

141. 학생공(學生公) 학성(學成) 중조는 학성이시고 고양에 후손이 산다. 처사공 학성(學成)파라고도 한다.

 

142. 학생공(學生公) ()

 

143. 학생공(學生公) 효성(孝誠)

144. 학생공(學生公) 현수(玄秀) 중시조는 현수이시며 후손이 포천에 산다. 2세는 희인(希仁), 3세는 진익(盡益), 4세는 경승(敬承), 5세는 홍문(洪文), 6세는 우상(宇相)이시다.

 

145. 학생공(學生公) 희도(希度)

 

146. 한림공(翰林公) (+) 중시조 관은 고려말에 문과에 급제하여 한림. 부사를 지내고 예조참의에 추증되었으며 아드님 성진(聖珍)은 조선초기에 승지로 지냈으며, 손자 효덕(孝德)은 진사 참봉이고, 증손 극정(克精)도 진사 참봉이며 극정의 아드님 아()의 호는 국암(菊庵)이며 사과(司果) 벼슬을 하였다.

 

147. 현감공(縣監公) 응한(應漢) 중시조 응한은 의흥현감을 지내셨다. 하동부사 현상(顯象)의 부친이며 군자감 주부 몽현(夢玹)의 조부이다. 4세손 우방(佑邦)은 임진왜란때 왜적을 토벌하시어 공을 세우셨고, 5세손 신립(信立)은 통덕랑을 지내셨다. 경주에 후손이 산다.

 

148. 휴은공(休隱公) () 중조 호()는 이다. 경상우병마절도사를 지내셨고 단종이 세조(수양대군)에게 왕위를 빼앗기자 정읍에 은퇴하셨으며 사육신의 비보를 들으시고 목매어 자결하신 충신이시다. 정읍, 능주에서 후손이 살고 있다.

 


*  참고 문헌 :  김해김씨선원대동세보, 김해김씨대동보, 가락중앙종친회가락총람

                     서울대학교규장각한국학연구원 한국학자료총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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