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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병대 장군들이여? 육군 박정인 장군님께 배우시오~

작성자1023원등|작성시간10.12.13|조회수564 목록 댓글 2

<해병대출신들이 꼭 만나고 싶은 인물>

 

 "중요한 건 첨단무기가 아니라 군인정신 "

73년 北 DMZ도발에 무자비하게 보복했던 박정인 前백골사단장
"그렇게 두들겨 맞고도 교전규칙만 운운하다니…
군인답지 않은 장군들 많아 대응 못하면 이등병 강등을"

1973년 3월 강원도 철원 비무장지대(DMZ)에서 갑작스러운 총성이 적막을 갈랐다. 북측 GP(경계초소)에서 DMZ 표지판 보수작업을 하던 남측 3사단 백골부대원을 향해 기습사격을 가한 것이었다. 이 사격으로 백골부대 장병 2명이 중상을 입었다.

박정인(82·예비역 준장) 당시 백골부대 사단장은 즉각 북측에 사격 중지를 요청하는 한편 아군(我軍)에 대응사격 준비를 지시했다. 그러나 북한은 남측의 사격 중지 경고에도 총격을 멈추지 않았다.

박 장군은 즉각 사단 포대에 대응사격을 지시했고 105㎜와 155㎜ 곡사포가 적 진지를 향해 불을 뿜었다. 부상병을 구출하기 위한 연막탄도 작렬하며 사방에 화염이 치솟았고, 곳곳에 매설된 지뢰가 불을 뿜으며 폭발했다. DMZ 인근에 있던 적군은 혼비백산해 달아나기에 급급했다.

지난달 30일 오전 서울 중구 한 사무실에서 백골부대 사단장 출신인 박정인 장군이 북한의 연평도 포격 도발 사건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오종찬 기자 ojc1979@chosun.com
박 장군은 이날 밤 사단의 모든 차량을 동원해 헤드라이트를 켜고 DMZ 남방한계선을 향해 돌진했다. 북한군은 국군의 대대적인 반격이 시작되는 줄 알고 전군에 비상동원령을 내렸다. 일주일 뒤 귀순한 북한군 장교에 따르면 당시 북한군 30여명이 우리 군의 보복 사격으로 사망했다고 했다.

하지만 박 장군은 한 달 만에 군복을 벗었다. 상부의 허락 없이 임의로 대응사격을 했다는 이유였다. 박 장군은 사단장 이임식에서 "북진(北進)통일의 성업을 완성하지 못하고 사단장 직을 떠나게 돼 유감스럽다"며 짧게 소감을 밝혔다. 평생을 바친 군(軍)이었지만, 후회는 없다는 것이었다.

지난달 30일 서울 중구의 한 사무실에서 박 장군을 만났다. 아들과 손자까지 3대가 육사 출신인 그의 사무실 한쪽엔 '우리의 적(敵). 부정부패, 친북좌경세력, 적화통일북괴군'이란 글귀가 쓰인 액자가 걸려 있었다.

박 장군은 북한의 연평도 포격 사태를 꺼내자 대뜸 "그렇게 두들겨 맞고, 교전규칙 운운하는 것들이 군인인가"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머리는 하얗게 셌고, 180㎝에 달했던 체구는 굽었지만 목소리만은 쩌렁쩌렁 울렸다.

"부하와 민간인들이 죽어나가는데 대체 군 지휘부는 뭘 했단 말인가! 자주포가 고장 났다는데 군 검열단은 뭘 했단 것인가! 전투기는 뭘 했고, 훈련 중이었던 함대는 함포 사격을 않고 뭘 했나! 지하벙커에서 탁상공론만 하면서 어떻게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겠다는 것인가!"

박 장군은 최근 천안함 폭침과 연평도 포격 사태 등이 모두 군의 기강 해이에서 비롯됐다며 적절한 대응을 못한 장성들은 이등병으로 강등시켜야 한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박 장군은 "군 지휘부는 상부 눈치만 볼 게 아니라 자신이 모든 책임을 지고 교전 상황 때 적절하게 대응해야 한다"며 "요즘 장군 중엔 군인답지 못한 장군이 너무 많다"고 지적했다.

그는 정부의 연평도 피란민들에 대한 대응도 강도 높게 비판했다. 그는 "적 도발 시 민간인들의 비상이주대책 수립은 필수"라고 비판했다.

박 장군은 "역사의 교훈을 모르는 민족은 패망하기 마련"이라며 "중국 국민당 장제스(蔣介石)나 월남 패망은 군이 부정부패했고 정신력이 해이해졌기 때문"이라고 했다.

"'막가파' 살인집단인 북한에 대응하려면 역사안보에 대한 교육이 선행돼야 합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최첨단 무기가 아니라 투철한 군인정신과 역사에 대한 올바른 인식뿐이에요."

                    풍운의 별... 영원한 군인 `박정인'

 

 

박세직 향군회장으로부터향군 대휘장'을 받고 악수하고 있는 박정인장군                                         


 

나는 지금까지 140여 회에 걸쳐 지나온 나의 발자취를 되돌아 보았다.

일제 식민통치가 기승을 부리던 1928년, 함경남도 신흥군에서 태어난 한 소년이

두 세기 동안 살아 온 파란만장한 인생역정은 내가 봐도 소설 같다.

파란만장한 인생역정

부유한 가정에서 어려움 모르고 자란 나는 함흥학생 사건을 계기로 월남(越南)을 단행,

육사에 들어감으로써 군인으로서의 나의 운명은 이미 결정됐었다.

임관 후 6·25 참전, 중공군 포로 및 탈출,

울산특경사령관, 33사단장, 실미도 사건, 자진 사퇴, 3사단장, GP에 대북(對北) 포사격, 보직해임 등 내가 걸어 온 군인의 길은 그야말로 파란만장한 것이었다.

그러나 나는 한 번도 그 길을 후회해 본 적이 없다.

군인이 된 것을 후회하지 않았기에 포로가 됐을 때도 부끄럽거나 후회한 적이 없었다.

영하 30도를 오르내리는 압록강변의 혹한 속에서도 나는 세 번 만에 탈출에 성공,

육본으로 돌아와 다시 참전할 수 있었다.

 

그 후 연대장 시절에는 그때의 경험을 바탕으로 전군에 혹한기 훈련을

필수 교과목으로 보급시켰다.

나는 첫 번째 사단장 취임 두 달여 만에 실미도 사건이 터져

내 직속 상관과 부하들이 받게 될 징계를 내 한 몸으로 대체(代替)하려고 자진 사표를 던졌다.

 그때도 나는 나의 행동을 후회하지 않았다.

 

사단을 떠나던 날 나는 “명예는 상관에게, 공은 부하에게, 책임은 나에게.

여러 장병의 무운장구를 빈다”라는 짧은 이임사를 남겼다.

두 번째 사단장인 백골부대장 시절에는 북한군의 기습공격을 받고

북쪽에 맹포격을 퍼부었다고 해서 보직해임을 당했다.

그러나 그때도 난 나의 판단과 행동을 후회하지 않았다.

북한 공산당들은 약한 자에게는 강하지만 강한 자에게는 더없이 약하다는

사실을 분명히 보여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내가 포격을 퍼붓는 동안 그들은 단 한 발의 포도 우리 쪽에 발사하지 못했었다.

나는 대령시절 육군본부 군사처장을 역임한 데 이어 예편 후에는 전사(戰史)편찬위원장 등 군사(軍史) 분야에서 일한 덕분에 남다른 역사의식을 갖고 있다.

+‘역사의 교훈을 존중하지 않는 민족은 멸망한다’는 것이

나의 평생 지론이요 철학이 됐다.

그런 의미에서 나와 내 아들, 그리고 손자 등 3대가 군인가족을 이루고 있다는 사실을 +

나는 매우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6·25 당시 빼앗긴 국토의 절반을 내가 되찾지 못했으니 +

내 아들이 나서야 하고,

 아들이 못하면 손자가 나서야 할 것이기에 나는 3대가 군인의 길을 가도록 이끌었다.

 나는 10년 전부터 내 주변 분들에게 이색적인 연하장을 보내고 있다.

‘21세기 우리의 맹서’라는 제목의 연하장에서 나는 우리의 적(敵)을 셋으로 규정해 놓고 있다. +‘우리의 적’ 첫째는 바로 부정부패(不正腐敗)이고,

+둘째는 친북 좌경세력이며,

셋째가 적화통일 북괴군이다.

우리 사회를 병들게 하고 우리의 국력을 쇠잔(衰殘)케 하는 가장 큰 주범은 +바로 각계각층에서 벌어지고 있는 부정부패인 것이다.

+그것을 바로잡지 않고서는 우리가 21세기 영광된 조국을 후손에게 넘겨줄 수가 없을 것이다.

3代가 군인의 길 걸어

평생을 군인으로 살아온 나는 지난해 4월,

지금은 고인이 되신 대한민국 재향군인회 박세직(朴世直) 당시 회장으로부터 영광스럽게도 ‘향군 대휘장(鄕軍大徽章)’을 받았었다. 나는 그것을 태극무공훈장보다 더 값진 훈장으로 여기고 있다.

80을 넘긴 나이에도 나는 ‘실지회복(失地回) 고강수복(故疆收)’의 꿈을 버리지 않고 있다.

 그런 나는 대한민국의 영원한 군인이다.

 

박정인정군 회고록  중에서

 

 

 

 

 

 

이번에 인천의 코앞에 있는 연평도를 보란 듯이 포격하자

우리 군에게 확전하지 말라며 또 손을 들었다.

국민이 사준 각종 첨단무기 자랑만 하면 무슨소용이랴

실컷 얻어맞고 태권도 기본동작이나 해보이자는 것인가?

 

지금이라도 늦지 않다.

 

F-15와 F-16을 대거 발진시켜 천안함에 대한 보복까지 감행해 주기 바랍니다

그래야 국민은 내일부터라도 잠을 잘 수 있다.

 

당한 것에 대해서는 '확전을 방지하라'

국민의 비판이 잇따르자 다시 도발하면 "다시는 도발할 수 없을 정도로 막대한 응징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생각한다?

 

대통령에 간절히 바랍니다

 

다음에 도발하거든 청와대 지하 벙커에서 회의 하지 말고

연평도에 가서 회의를 해주기 바랍니다

 

 

 ;;

 

 

필자:북바위님

 

1973년 북진지초토화하고 김일성 보따리싸 도망가게한 백골부대장

예비역육군소장을 전역식때 부하들이 직접 달아준 5성장군계급장

 이건 진짜 예비역 육군원수맞는것 아닌가..

이런 영웅호걸장군이 이순신장군 이후에 과연 몇명이나 있는가 

분명 부하들의 가슴속에 영원히 남아있는 박정인 장군의 계급장은

분명 5성장군이며 이게 정치권력에찌들인 썩은별 4성보다는

훨씬 나은게 아닐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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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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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1129드보라 | 작성시간 10.12.13 우리나라에 이런 현역장군 5명만 있어도 대한민국이 든든할텐데....
  • 작성자1127기-택이누나♡ | 작성시간 10.12.16 이런 분들이 계셨기에 지금의 대한민국이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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